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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흐리고 어둠이 늘어진 하늘 속에 마른번개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한 번씩 내리쳤다. 저 먼 곳의 하늘에서 유난히 검은 구름이 몰려있는 곳이 보였다. 검은 구름은 자줏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것에는 비가 내릴 모양이었다. 보험회사들이 밀집된 곳으로 검은 구름은 그 지역위에서 곧 거센 비라도 뿌릴 것처럼 거뭇거뭇하게 하늘에 떠 있었다. 염분을 실은 더운 바닷바람이 마동의 볼에 닿았다. 간간하고 짭조름한 내음이 작은 마을의 거리에 불었다. 거리에 붙어있는 가로등의 몸체는 페인트칠이 벗겨져 벗겨진 틈 속으로 염분이 지속적으로 날아와 상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마을에는 개들의 모습조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도로 위로 트럭이 지나가며 굉음을 냈다. 버스를 타고 이 마을에 왔을 때에는 느껴보지 못한 풍경이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먼 과거로의 여행에서 찾은 마을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치는 건물의 벽에 마동은 손을 대어 보았다. 건물은 세월을 지내 온 힘겨운 담벼락의 촉감을 마동의 손에 전해 주었다. 마을에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마을사람들도 없었다. 가끔씩 부둣가나 마당이 다 보이는 집에 앉아서 그물을 손질하는 나이 든 노인들만 보였다. 마동은 어촌마을의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깊게 파인 주름은 물고랑 같아서 빗물이 닿으면 바닥으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그 물고랑을 타고 얼굴을 돌아다닐 만큼 주름이 깊었다. 노인은 인상을 구기고 있었지만 그것은 주름이 만들어낸 하나의 순수한 완성품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인상을 쓰고 있는지 웃음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동은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둑한 하늘은 잿빛의 구름덩어리를 한층 더 긁어모았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비가 거세게 쏟아질 것 같았다. 주름 깊은 얼굴의 노인은 주름진 손을 움직여 일정한 패턴으로 끊임없이 그물을 손질했다. 저 그물은 바다로 나아가서 던져지고 물고기를 잡아 올려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 손질을 하는 노인들의 깊은 주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기를 못 건져 올리더라도 구물은 똑같이 손질해야 한다. 그것이 어부에게 주어진 과제다. 인간은 누구나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운명이다. 그 과제가 그물손질이든 무엇이든 간에.
마동은 오래된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건물 앞으로 왔다.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서 발로 차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건물의 외형에는 여전히 극장의 간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다시 따분한 조정경기를 하는 영화를 보러 올라갔다. 오직 마지막 5분을 보기 위해, 5분 등장하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건물의 계단은 여전히 더러웠고 여전한 냄새가 있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마동은 누린내를 맡은 이후로 다른 냄새를 맡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더러운 계단의 냄새는 반가웠다. 계단은 여전했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어딘가 모난 구석이 많이 느껴졌고 일탈된 계단의 모습으로 마동에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런 슬픈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았다.
계단을 타고 극장이 있는 곳으로 올라왔을 때 극장은 흔적이 없었다. 극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공허하고 텅 빈 실내의 공간만이 극장이 있었던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극장의 바닥에 고대 화석의 늑골처럼 변해버린 오래된 영화포스터가 굴러다닐 뿐이었다. 벽에 붙은 너덜하고 퇴색된 포스터만이 이곳이 극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뻥 뚫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세월의 염분을 잔뜩 머금고 건물 안으로 날아 들어와 차곡차곡 쌓였다. 마동은 이미 오래되어서 무슨 영화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는 바닥에 널브러진 포스터를 손으로 건드렸다. 종이는 건드리자마자 모래알갱이가 되어 흩어졌다. 류 형사가 사진으로 보여준 그 시체가 떠올랐다.
낯선 매점의 더위에 지친 아주머니가 앉아있던 자리도 공허한 빈 공간이 대신하고 있었다.
태초에 그러했던 것처럼.
푹신하지만 불편하던 소파도, 낡은 테이블도, 테이블 위의 오래된 바둑판도 사라지고 없었다.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푹신하지만 불편한 소파는 마동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마동은 그 불편하고 낡은 소파가 마음에 들었다. 소파는 마동 저 깊은 마음의 연약하고 오래된 부분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소파에 앉아 볼 기회는 없다. 앞으로 그런 소파를 생산하는 공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푹신하지만 불편한 소파는 지구상의 그 어떤 공장에서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마동은 오래된 건물의 극장이 있던 공간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염분은 바람을 타고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마동의 볼에 닿았다. 저 멀리 먹구름사이의 자줏빛 검은 구름은 그 형체가 더 커졌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바람은 비를 몰고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