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
다음 날 리사는 거스턴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늘 그렇듯이 편의점에서 거스턴으로 가는 도중에 15분 동안 나만의 젖은 어둠 속 청록색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잘 모르지만 리사를 조금 보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돈을 아껴 중고 노트북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볼펜으로 글을 쓰는 건 손목이나 손에 무리를 가한다. 리사가 많이 아픈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스턴에 나오지 않은지 3일째 되는 날 나는 리사의 집도 모르고 일하는 미용실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리사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서 미용실이라는 미용실은 다 찾아다녔다. 잠자는 시간을 빼버렸다. 낮에는 리사를 찾아다녔고 밤에는 거스턴에서 잡일을 했고 새벽에는 편의점에서 밤을 새웠다. 눈앞이 가물가물 거리고 도시락도 맛이 없어졌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전단지를 돌리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도시의 사람들을 봤다. 모두가 즐거웠다. 누구도 고민은 없어 보였다. 그런 아름다운 붕어들이 도시의 밤거리를 유영한다. 리사는 볼펜을 남겨두고 떠났다. 전화번호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레이도, 크리스틴 누나도 사장도 리사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거스턴에서는 리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반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음성 메시지를 몇십 통, 몇 백 통이나 남겼다. 네이버 뉴스 사회 부분을 매일 검색했고 이 도시에서 누군가 죽었는지, 호텔 같은 장례식장에 들러 누가 죽었는지 확인했다. 그게 내가 리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고작이었다. 나는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금붕어처럼 말이다.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이 도시다.
그녀가 사라진 지 한 달째 되던 날, 편의점 사장이 통보를 해왔다. 예견된 통보였다. 편의점이 많아지고 손님은 줄어서 12시간 단축 영업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사장은 장애를 둔 어린 아들 치료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이 도시로 온 것이다. 줄어드는 손님과 늘어나는 편의점. 마치 폰 속에 번호는 늘어나는데 연락할 사람은 줄어드는 것과 흡사했다. 그 사이에서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장을 이해한다. 사장 역시 겨우 끈을 붙잡고 있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져도 그 끈을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새벽 2시에 이곳에 사는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의 아주머니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보통 이런 시간에 아주머니들은 편의점에 오지 않는다. 촌스러운데 촌스럽지 않은 얼굴의 아주머니였다. 사투리를 썼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동생네 집에 왔다가 사정이 좋지 않아 거기서 잘 수 없어서 고향으로 가려고 나왔다가 낭패를 당했단다. 아주머니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경찰서로 모실까 하다가 과거가 있는 나는 경찰서에 연루되기 싫어 아주머니를 파라솔에 앉게 했다. 곧 가을이다.
장어구이를 집었다. 나도 한 번도 못 먹어 본 음식이다. 장어구이는 만 오천 원이나 한다. 도시락은 장어구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장어구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어묵탕도 데워서 먼저 내주었다.
“장어구이는 그냥 드시지 말구요, 생강 초절임을 곁들여서 드세요, 방울토마토도 있으니까 같이 드세요. 여기 어묵 국물도 같이 드시면서, 도시락 데워지면 가지고 올 테니까 밥에 올려 천천히 드세요.”
아주머니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면 됐다. 초절임 3,500원, 방울토마토 2,000원, 어묵 2,000원, 도시락 4,500원. 내 며칠 밥값이 날아갔다.
“도시락 이거 이렇게 보여도 데우면 불고기가 음식점 맛과 비슷하게 나요.”
아주머니는 배가 고팠는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매일 이런 음식으로 총각은 끼니를 때워?”
“이것도 못 먹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는 많아요. 저는 몇 시간 유통기한이 지난 거 먹어요. 그럼 공짜로 먹을 수 있거든요. 탈 나지도 않고, 배도 부르고 맛도 좋고.”
파라솔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청록색의 밤하늘이었다. 일 년 중에 가장 좋은 날의 새벽이다. 편의점 음식으로 이렇게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담배를 하나 달라고 했다.
“총각도 피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니에요, 근무 중에는 안 피워요.”
아주머니는 이렇게 복잡하고 큰 도시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집에도 못 가고 굶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여기는 도시니까요. 저 아니라도 누군가는 아주머니에게 이거보다 나은 밥을 제공했을 겁니다."
“총각은 편의점 음식 말고 뭐가 먹고 싶어?”
아주머니가 묻기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음 제육볶음이요."
“그건 편의점에 없어?”
“아마 있겠지만 여기는 없어요.”
“그게 왜 먹고 싶어?”
“근래에 누가 만들어 주는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편의점 음식만 2년 넘게 먹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기름기가 들어가서 위가 놀랐나 봐요. 화장실에 뛰어가는 바람에 다 먹지도 못했거든요. 그게 갑자기 먹고 싶어요. 그 사람이 만들어준 제육볶음이요.”
아주머니는 나중에 보답이라도 할 겸 동생 네에 오게 되면 제육볶음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저 어차피 이번 달에 편의점 일도 끝이에요. 괜찮아요.”
“총각은 이제 뭐 먹고살 거야? 생각한 거라도 있어?”
“어떻게든 살겠죠. 이렇게 큰 도시에서 뭐 일할 거 없겠어요. 편의점에 일하러 오기 전 일하는 곳에 어항이 있거든요. 붕어들을 보면 밥 안 주면 죽죠, 물 온도 안 맞으면 죽죠, 스트레스받으면 죽죠, 금붕어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도 물과 최소한의 먹이만 있으면 그 좁은 어항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거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