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채빵

엽편소설

by 교관

줄거리 및 작품소개: 모든 것을 잃고 노숙자 생활을 하던 한 남자가 너무 배가 고파서 시장의 빵가게에서 빵 하나를 훔쳐 달아나오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진다. 그런데 빵집 주인이 나와서 남자의 주머니에 빵 하나를 더 넣어주고 들어간다. 남자는 정신없이 달려서 나오다가 주머니에서 꺼낸 야채빵을 먹으며 옛날 일을 떠올린다.



50.jpg

결혼의 실패와 더불어 사업의 계속된 무너짐과 빚더미에 거리에 나오게 되었다. 거리의 생활은 배고픔의 연속이다. 2주째부터 행색은 초라하고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씻지 못해 내 손톱은 기름때가 꼈던 아버지의 손톱보다 더 더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허기였다. 배가 고프다는 것이 인간을 이렇게 바닥에 붙어있게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몇 번이고 지나다니던 재래시장의 빵집에서 나는 저녁시간에 그 집에 들어가 빵을 하나 훔치기로 했다. 갈등이 심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무너지다니. 주인은 늙은 할아버지다. 하나만 훔칠 것이다. 달려 나오면 된다. 아무리 배가 고파 힘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 빵 하나를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냅다 빵집을 달려 나오려는데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주인장이 와서는 나를 일으켜주었다. 나의 더러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내 나머지 주머니에 빵을 하나 더 넣어주었다. 그리고 주인장은 등을 보이며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대로 뛰어나와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굉장한 허기로 다리에 힘이 빠져 풀어질 때 주머니에서 훔친 빵을 꺼내서 먹었다. 허겁지겁 먹었다. 하나 먹어서는 도저히 배가 차지 않았다.


이쪽 주머니에 넣어준 주인장의 빵을 꺼냈다. 랩으로 둘러싸인 빵이었다. 케첩이 야채와 으깨진 빵이었다. 요즘은 잘 팔지 않는 빵.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빵. 맛도 없는 빵. 나는 그 빵을 한 입 먹었을 때 더 이상 씹지 못하고 고개를 떨 굴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매달 20일이 되면 나는 아버지를 다른 날보다 더 기다렸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야채빵을 나를 위해 가지고 와서 먹였다. 투박한 빵 사이에 싸구려 햄과 케첩에 버무려진 야채가 가득 들어있던 빵.


그것은 식사 대용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용접공이었던 아버지는 점심을 굶어가며 사물함에 넣어두었다가 나를 위해 집까지 들고 왔다. 손톱에 기름때가 가득한 아버지는 손을 몇 번이고 씻은 다음 나에게 빵을 건네줬고 나는 맛있게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이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빵은 어디에도 팔지 않았고 케첩과 햄과 야채가 어우러진 빵을 먹고 있으면 행복했다. 아버지는 사이다를 한 컵 부어서 천천히 먹으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들고 온 빵에는 단순한 맛 이외의 무엇이 스며있었기에 그 빵은 참 맛있었다. 아버지의 땀 냄새와 작업복의 냄새.


중환자실에서 아버지가 겨우 일반 병실로 옮겨 왔을 때 레지던트 3년 차가 나를 불렀다. 심장에 이상이 있어 혈관에 무리가 가는 이벤트가 조만간에 일어날 것이다. 관을 삽입해야 한다, 하나에 800만 원, 일단 3개를 삽입하자. 어머니나 아내나 여동생의 동의가 아닌 나의 동의가 있어야만 수술이 이루어진다.


그때, 그때 앞뒤 보지 않고 수술해 주십시오,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빚을 끌어들여 사업한다고 들어간 돈 때문에 아버지의 관 삽입 수술에 동의를 바로 하지 못했다. 나는 이후에 그 일을 제대로 후회하지도 않았다. 질질 끄는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는 나이가 들어버렸고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어수선한 거리와 분위기, 따분한 사람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모든 걸 끝내줬으면 좋겠다고. 미래 따위는 없다. 산다는 거... 너무 힘들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앞이 보이게 되면 절망뿐이고. 미래에는 괴로운 일만 가득할 뿐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좋은 일 따위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 주인장이 넣어준 야채빵을 먹고 나는 알게 되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야채빵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라고. 그래야 10년, 15년 후의 모습을 알 수 있으니까.

keyword
이전 05화태풍이 노래를 부를 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