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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쨍하던, 바짝 마른하늘이었는데 소나기가 떨어지는 겁니다. 마른하늘이었다가 갑자기 어둑어둑 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 있지 않습니까? 소나기는 으레 그런 것이니까요. 대평리에는 특히 그런 소나기가 여름에 자주 내렸습니다. 소나기를 맞으며 볼일을 보고 있으니 시원했습니다. 여름이 아니면 도저히 느껴보지 못할 시원함이죠. 몇 번인가 소나기를 맞으며 야외에서 배설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수색하는 동안 몇 날 며칠이 되었던 군복을 벗지 못합니다. 여름이니 하복복장을 해야 했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는데 살갗으로 떨어지는 소나기가 점점 따가워지는 겁니다. 우박은 아닌데 비가 굉장히 거세지는 겁니다. 비 때문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빨리 바지를 올리고 조 대원들을 찾았습니다. 찾으려고 뛰어가는데 눈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소나기라 비가 그치겠지, 했던 생각은 큰 오산이었죠. 그 비는 지금처럼 끊어질 틈을 보이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정말 지금 비 와 비슷합니다. 지금 저 밖에 나간다면 아마도 비를 맞아서 살갗이 따가울 겁니다. 몹시도.”
카페주인은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오므리고 밖의 비를 쳐다보았다. 비는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저는 조 대원들을 찾지 못하고 근처의 큰 나무 밑으로 가서 일단 비를 피했습니다.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는, 엄청난 속도감으로 떨어지는 비는, 땅의 지형을 바꾼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 내리던 소나기는 땅을 파버렸고 저는 그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떨어지는 비를 그대로 맞은 팔뚝의 살갗은 발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비가 떨어지는 속도가 대단했죠. 조 대원들도 분명 저를 찾고 있을 텐데 어쩐 일인지 대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거세게 비가 쏟아지면 지대가 약한 산속의 지형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변형이 옵니다. 그런 현상이 눈으로 보이는 겁니다. 저는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얇은 나뭇잎이나 썩은 나뭇가지는 속도감 있게 떨어지는 비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나뭇잎들이 나뭇가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비는 거칠 줄 모르고 저는 나무 밑에서 그대로 있어야 했죠. 하늘은 거뭇거뭇하더니 어둠이 금세 찾아왔고 몸은 저체온 증으로 떨리기 시작했는데 두려움으로 인해 몸은 심하게 더 벌벌 떨렸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었던 저는 그때 무섭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떨어지는 비는 아주 높은 곳, 하늘의 거대한 구멍에서 물을 마구 퍼붓는 듯했습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두려울 정도로 말이죠. 비가 눈에 떨어진다면 눈이 실명될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비를 맞아서 눈이 실명이 되는 생각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울함도 몰려왔어요. 그것을 우울함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한 없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락의 기운이 내 몸을 덮었어요. 저는 들고 있던 총을 꽉 잡고 나무 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산속은 여름이었지만 어둠이 일찍 찾아옵니다. 일단 어둠이 몰아치고 나면 산속은 그야말로 깜깜한 암흑의 세계가 됩니다.”
주인이 컴컴한 어둠에 대해서 말했을 때 마동은 그 어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어둠에 대해서.
탁하지 않고 본질적인 어둠자체가 발하는 농밀한 어둠을 마동은 익히 만나봤다. 깊고 농익은 어둠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짙고 본질적인 어둠이 세계를 뒤덮는 모습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둠은 몹시 끈적끈적했고 유난히 검은색이어서 그 실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전 그때 산속의 어둠 속에서 내 앞의 지대가 낮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환상이라든가 착각이 아니었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어요. 얕은 땅이 갈라져서 밑으로 꺼지고 폭우에 흙이 쓸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둠이 짙고 비가 거세게 쏟아져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어야 했는데, 분명 내 눈에 땅이 변형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카페주인은 조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궁극적인 공포가 카페 주인의 가슴속에 들어찼던 것이다.
“늪도 아니고 강도 아닌데 산 중턱에서 흙으로 이루어진 땅이 늪지대처럼 쓸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땅이라는 형태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변하는 형태의 땅의 모습이 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총을 파지 하지 않은 손으로 연거푸 얼굴로 떨어지는 비를 닦아내면서 나무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땅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필시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에는 내 몸으로 전해지는 현상이 확실했거든요.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심하게 떨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죠. 그 생각은 곧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이미 내 마음은 힘을 잃어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어요. 산속의 세계가 어둠에 덮여 버렸고 땅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방향성을 잃고 움직였습니다. 흐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째서 이리로 또는 저리로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일까. 빗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인데 말이죠.” 카페주인은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본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여름치고 덥지 않은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주인의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제가 착시를 일으킨 걸까요? 아니요. 그건 착시라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후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분명히 땅이 살아있는 듯 지그재그로, 마구잡이로 알 수 없게 일렁이며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말이죠.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더러운 냄새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암내 같기도 했고 달짝지근하기도 했지만 유쾌한 냄새는 아니었어요. 산속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을 불에 태우는 냄새 같기도 했고, 장작의 꺼진 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그을음이 살아있는 그 무엇을 거슬리는 냄새라고 할까요. 냄새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어요. 불쾌하고 더러운 냄새였어요. 자세하게 설명이 안 됩니다. 누린내 같은 거요. 달짝지근한 냄새는 코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아까 뉴스에서 기자가 말한 그런 냄새 말이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