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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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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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온 후 욕실에서 천천히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틀어서 물줄기를 하체에서부터 천천히 몸에 뿌렸다. 뇌수독룡의 진액이 묻어있는 것 같은 다리와 발을 먼저 꼼꼼하게 씻었다. 그리고 몸 구석구석을 씻었다.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나머지 부분에 비누칠을 했다. 이번이 마지막 샤워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침착하고 세세하게 샤워를 했다. 비누거품을 내어 몸을 문지르는 행위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적어도 그동안 마동에게는 그랬다.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 비누거품을 잔뜩 내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몸을 문질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어쩌면 그동안 쉼 없이 달리면서 땀을 배출시켰는지도 몰랐다. 진지한 샤워가 어울리는 것은 하루 종일 일만 하고 들어와서 비누칠을 할 때보다 한 시간을 달려 땀을 잔뜩 흘린 후 하는 샤워였다. 질적으로 충만한 샤워라고 할 수 있었다. 기이하지만 분명 그러했다.


마동은 욕실의 거울 앞에서 투명해진 자신을 뜯어보았다. 여름 햇볕에 잘 그을린 피부가 보였고 쇄골이 드러났고 발달된 가슴근육이 눈앞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몸의 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한순간에 타고나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의 균형은 몸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신체의 균형을 잡기 위해 꾸준하게 달려왔다. 얼굴을 거울 가까이 대고 성애가 끼어버린 거울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변이가 찾아오기 전의 마동의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듯 마동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더 이상 사라 발렌샤 얀시엔도 보이지 않았고 소피의 모습도, 분홍간호사의 얼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떠한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조금의 누린내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동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의 얼굴인지, 감기로 인해 변해버린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인지, 마동자신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거울 속에 있는 상이 ‘나’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니 분명 거울 저 편의 나는 변이 한 나 자신일지도 몰랐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를 이어 내 몸에 내려온 유전자의 원형질이 억압이라는 것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싶었다. 일어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 다가오는 무서움의 결정체는 사람들의 의지로 제어가 불가능한 것이다. 오로지 마동 자신만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순간 F6F헬켓 한대의 무게에 달하는 책임감이 마동의 어깨를 짓눌렀다. 거울 속의 마동은 희미해져서 인지 마동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거울 속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또렷하고 강하게 보였다.


거울 속의 사물은 회사의 사무실에 있는 사물과는 달랐다. 오너의 사무실에서 물품들이 가득 안고 있었던 관념들은 거울 속에 비치는 욕실의 모습에는 배제되어 있었다. 권태라든가 단순함 등이 싹 빠져버린 모습만 가득했다. 완벽한 모습이었다. 단지 거울에 자신의 모습만 조금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비누거품을 보고 있으니 마음의 공백이 다시 찾아왔다. 찾아온 공백의 덩어리에 상실감이 틀에 맞는 조립품처럼 들어와서 그 공백을 매웠다. 물줄기가 또르르 떨어지는 곳에는 큰 공백과 상실감이 나란히 서서 마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동은 그들과 타협점을 찾기 싫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공백은 마동의 마음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백화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가 허무의 공백에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상실감이었다. 마동은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처럼 울 수는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로 일어나서 는개를 찾아갈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울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몸속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바짝 마를 수 있도록 눈물을 짜내고 싶었다.


저녁이 되었다. 이제 정리는 거의 끝났고 집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남은 것은 는개가 알아서 할 것이다. 소피에게 디렉트 메시지를 넣었다. 소피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마동은 소피와 만나기로 하고 그녀가 도착하면 만날 수 있는 날과 장소를 연락해 달라며 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알려준 폰 번호는 는개의 번호였다. 는개가 소피에게 잘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가슴수술비도 부담되지 않게, 기분이 상하지 않게 잘 전달될 것이다. 는개에게 건네준 작은 상자 속에 모든 것을 잘 적어놨으니 그녀는 침착하게 잘 해낼 것이다. 마동은 확신했다. 하찮은 현실 속에서 는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설령 여기가 이곳이 현실의 끝이라고 해도-축복받은 것이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마동은 고개를 한 번 힘 있게 끄덕였다.


아주 진지하게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마동은 는개가 더욱 심하게 보고 싶었다. 는개의 얼굴에 눈에 아른거렸다. 후각적으로 보고 싶었다. 는개를 향한 의식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체취를 맡고 싶었고 촉각적으로 그녀를 느끼고 싶었다. 는개를 향한 의식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체취를 맡고 싶었고 촉각적으로 그녀를 느끼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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