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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0.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23

소설


22.


 나는 그녀의 가슴을 만졌을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가늘게 보이는 그녀의 어깨는 약간 들썩거렸다. 존재라는 큰 부착물에 오점이 생겨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그 아름다움이 무서웠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미질 덕분에 비극이 시작된다. 순수한 것이 무서운 것처럼.         

      

 그녀가 오열했더라면 위로에 있어서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흐느낌에는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흐느낌이라는 건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그녀가 벌써 사라지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단 들고 나니 두려웠다. 그렇지만 흐느끼는 그녀를 위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흐느끼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울면 울게 내버려 두는 일.     

          

 ‘숲’에는 다시 라디오 헤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 씨 아저씨는 파블로 허니의 앨범을 틀었다. 파블로 허니가 ‘숲’의 공간을 헤집고 다녔다. “이 녀석은 천재야. 아마도 음악에 묻혀버릴걸”라고 김 씨 아저씨는 라디오 헤드를 들으면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앨범 속 톰 요크의 목소리는 비에 젖어들어 그녀를 울렸고 내 마음에는 슬픔으로 침잠되어 갔다.          

     

 어디에서 오는 슬픔인지, 어떤 슬픔인지 인지도 못한 채. 술을 마셨고 그녀가 울고, 톰 요크가 마음을 건드리니 슬픔이 오는 것이다. 그저 그런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슬픔 하나 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그녀의 차가운 손등을 문지르며 ‘숲’에 흐르는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Thinking About You’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를 듣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은 없었다. 테이블 위의 계란말이는 공기에 노출이 된 지 꽤 되었는데 젓가락으로 건드린 모양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시험을 하루 이틀 앞둔 학교 근처의 술집은 한산했고 잔에 따른 소주는 조금은 차가움이 빠져나가 미지근했다. 더불어 그녀의 손에서 냉기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선배는 같이 오지 않았다. 그녀만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어깨를 들썩인 채로. 침착하고 환하게 웃던 그녀에게 그 둘이 빠져나가고 나니 그녀도 인간다워 보였다. 그녀의 눈물은 그녀의 깊은 골을 따라 흘러내렸다. 시작이 어디인지 결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답답했지만 나는 그대로 있었다. 그대로 있고 싶었다. 내 속의 나는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잔혹한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 시계에서는 음악을 음장 기기에 집어넣어서 들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변변찮은 결핵의 약이 없었던 것처럼, 스무 살이 되지도 않았는데 가랑이를 벌려야 하는 잔혹한 세계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잔혹한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 들어가서 힘은 없지만 그곳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결핵이 나을 수 있는 약을 먹이고, 가랑이를 벌려 가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미미한 힘이라도 그녀의 세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마음의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앉아있던 작은 불안이 꿈틀거리며 스멀스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서 편치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종의 마음이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아 있었지만 만질 수 없는 곳에 앉아있는 새처럼 멀기만 한 존재였다.               


 닿을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을 떠올리니 부서진 재처럼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이마에 그림처럼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치워주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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