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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57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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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전시장 안은 따뜻했고 오래된 시간의 냄새와 사라져 버린 노인들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냄새가 나쁘다거나 싫은 것은 아니었다. 냄새는 따뜻했고 깊은 그리움 같았다. 사진 속에 담긴 피사체는 전부 마을 노인들의 모습이었다. 주름진 손으로 기도하거나, 시커먼 기름 낀 손으로 그물을 손질하거나 뒷짐을 지고 강아지와 함께 거니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 사진들을 꼼꼼하게 꼿꼿한 자세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머리가 짧았으면 그림자를 상실한 그녀와 정말 똑같았다. 아니다, 그림자가 없는 여자가 그녀와 닮은 것이다. 그녀의 눈은 사진을 보고 있지만 사진을 보고 있지 않았다. 사진 속의 사람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민을 해결하고 있는 모습일까.

그녀는 고민의 단어들을 사진에 빗대어 하나하나 열거한 다음에 다시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동자의 떨림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눈은 참 맑았다. 눈동자 속엔 잡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취방에 그녀의 모습을 놔두고 소녀의 모습인 그녀로 되돌아가 눈밭을 밟고 사진을 구경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사진 속의 노인들은 시간이 멈춘 채 그대로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했다. 마을회관에서 사진 전시를 해서 그런지 노랫가락이나 음악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적이 지배했고 그녀와 나의 발걸음 소리가 드문드문 들릴 뿐이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그녀의 오드콜로뉴의 향이 뒤에 남았다. 나는 그녀가 남기고 간 냄새를 손으로 부여잡으며 따라갔다. 미동하지 않는 따뜻한 담요처럼 등에 살짝 걸린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언젠가 그녀의 옆에서 걸을 수 있을까. 지금은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시간은 따뜻했다. 이 정도만으로 나는 만족했다.

“어떤 사진이 좋아?” 그녀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까만색이었다.

“난 저 뒷짐 진 할머니의 사진이 좋아.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그냥 뒷모습의 할머니 사진이 좋아. 걸음걸이에 힘겨움이 잔뜩 묻어있는 사진 같아 보여. 노인이라서 힘든 걸까. 여자여서 힘든 걸까?” 그녀는 그 사진 앞으로 가서 시선을 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스파게티도 먹어본 적이 없고, 아메리카노에 티라미수 케이크 한 조각도 먹어보지 못하고 늙어서 할머니가 된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서글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떠나는 것일까? 멀어지는 것일까?”라고 그녀가 자분자분 말했다. 슈퍼 할아버지에게 나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들었다. 여전히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떠난다거나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싫은데요. 나무 같잖아요. 와서 사랑만 잔뜩 주고 떠나버리는 새를 기다리기만 하는…….”

내 말에 그녀는 미소를 다시 한번 만들고는 손바닥으로 내 볼을 한번 쓰다듬었다. 손바닥이 차가워져 있었다. 내내 잡고 있을 때는 따뜻한 것 같았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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