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58

소설

by 교관
다운로드.png


58.


“넌 어떤 사진이 좋아?”

“전 사진을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진은 사진 같아요. 그때 그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게 사진 아닐까 하는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사진은 그냥 사진이에요. 의미나 기법이나 반응은 잘 알 수가 없어요. 사진 속의 피사체는 소멸하더라도 사진은 버리지 않는 이상 영원하니까. 덕분에 우리는 앉아서 오래전에 찍어 놓은 건축 사진을 보면서 역사 속의 건축물을 알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영원한 것은 또 의미가 없어요. 영원한 건 가짜 꽃, 조화잖아요. 그래서 영원한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 같아요.”

잠시 틈을 두었다.

“또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은 빨리 소멸하니 그 생각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아름다운 것은 나에게서 전부 빨리 떠나가요.”

나는 말했다.

“넌 책을 좀 적당히 읽는 게 좋겠어”라며 그 미소로, 그 손바닥으로 다시 한번 내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차가웠다. 그녀가 손을 내리려 할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차가워진 손바닥을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다.

“저기……”

“응?”

““실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말할지 몰라서 말이예요.”

그녀는 내 말에 호기심 많은 고양이처럼 고개를 살짝 젖히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손으로 머리카락도 살짝 넘겼다.

“당신은 얼마 전부터 하나씩 무엇인가를 버리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름을 내다 버리고, 당신의 민증 번호를 내다 버리고, 주소를 버리고, 전화를 버리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와서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서 당신은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버리려 하고 있어요.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살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것을 버리려 하고 있어요. 몸속에서 그것을 버리고 나면 껍데기만 남겠죠. 물론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자꾸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안 좋은 예감은 꼭 들어맞잖아요. 당신은 마치 당신이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듯 보여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나는 바지에 오줌을 싼 아이처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내 말에 그녀가 대답하지 않았다. 내 볼을 어루만져 주지도 않았다. 미소도 짓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다. 불안이라는 벌레가 심장을 헤집고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꾸물꾸물, 꿀렁꿀렁 다니며 나를 구토로 인도한다. 나는 입술을 조금 물어뜯었다. 아랫니와 윗니를 이용해서 자꾸 입술을 물어뜯었다. 피가 났다. 피 맛이 구토를 잠재웠다.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따뜻한 빛의 통로를 따라서 수많은 먼지가 이리저리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발길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사진 작품이 걸려있는 곳에서 저 사진 작품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이 먼 곳,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와서 하나씩 버리고 가는 모양새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없이 조금씩 이동했다. 내가 옆으로 따라가서 같이 섰을 때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내 입술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손수건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중에 버리라는 말에 나는 더욱 불안했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