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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11

5장 2일째

111.

 이명의 소리는 소용돌이처럼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로 거세게 귀 속을 파고들었다. 이명은 일정하지 않았다. 방향도 제멋대로였고 마구잡이로 들리는 소음이었다. 마동은 머리가 어지럽고 터질 것 같았다. 체내의 내장기관과 장기들이 전부 거꾸로 움직이며 괴로웠다. 순간 몸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듯 뜨겁게 타올랐다가 이내 썰물처럼 물러가더니 극심한 한기가 몰아쳤다.


 동공에 압력이 들어와 조금만 움직여도 눈동자가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형광등의 빛이 하나의 점으로 모아졌다가 갑자기 확 산란하면서 온통 눈부신 빛으로만 세상이 보였다. 마동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손가락과 발가락의 뼈마디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어떤 이가 칼을 들고 마디를 썰어대고 있는 것이다. 아픔과 고통이 너무 혹독하여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줄 톱으로 몸의 이곳저곳을 끊어내는 고통이 마동의 온몸을 급습했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러한 마동의 아픔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들은 노인대로, 학생들은 학생대로 그저 차례를 기다리며 무료한 대기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사오 사사키의 다른 곡이었다. 웅성웅성하는 일그러진 소리 속에 음악소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옆에 잠이 든 아내가 눈을 뜨고 이빨을 갈아대는 소리처럼 불길하고 기분 나쁜 잡음이 마동의 귀를 통해서 계속 전해졌다.


 마침내 이빨은 마동의 머리뼈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기이한 소음이 바늘이 되어 마동의 여러 곳을 세차게 찔렀다. 마동은 치아를 있는 힘을 다해 꽉 깨물었다. 머리를 짓이겨 놓을 만한 무시무시한 이명을 방어하기 위해 마동은 더욱 있는 힘을 다해서 치아를 깨물었다. 머리통이 심하게 조여 오고 몸이 떨렸다. 치아를 얼마나 힘 있게 깨물었는지 입안에 감각이 모조리 빠져나간 것 같았다. 마동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즉각적인 변화를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궁극적인 원인이 없다는 것이 기이할 뿐이었다. 몸의 구석구석, 마디마디가 고통으로 쥐어짜는 소리를 냈고 눈은 금방이라도 빠져나올 것처럼 아팠다. 이빨을 힘 있게 깨물고 생각을 향해 집중을 했다. 어딘가 하나의 생각을 끄집어 내와야 했다. 이명의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하나의 생각, 생각은 기억을 떠올리려 기계를 힘 있게 돌렸지만 기억의 대부분은 뿌연 막처럼 희미하거나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생의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당시 마동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거슬러 가는 방법으로 생각을 더듬었다. 하지만 병원에 실려와 정신을 잃고 며칠을 누워있었다고 들었다. 마동은 병원에 입원하기 전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과거의 시간을 돌렸다. 시간을 돌려 보지만 우주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뿌옇고 희미하고 어둡고 탁한 어떠한 배경뿐이었다. 손을 그 속에 집어넣으면 자신의 손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겁이 날만큼 무서운 배경이 보일 뿐이었다. 그때 방황하는 집 잃은 강아지처럼 하나의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물도 아니었다.


 작은 모습의 여자애다. 마동은 눈을 비빈다. 그렇다고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여자애는 아주 어린 모습은 아니었다. 그 작은 여자애의 모습이 형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다. 기억 속의 모든 것은 뿌옇고 욕이 날만큼 희미하고 불확실했다. 이명이 들리기 전에는 이런 기억은 없었다. 젠장, 마동은 그 장면을 상세하게 떠올리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섬광이 되어 정신을 집중했다. 뿌연 막에 가려진 여자애의 흐린 모습만 기억이 났다. 병원에 실려 가게 된 계기에 어린 여자애가 속해있었구나, 정도만 알 수 있는 기억이었다.


 생각이 느슨해졌을 때 육체를 죄어오던 구석구석의 고통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소파에서 무릎을 가슴에 대고 이를 꽉 깨물고 있던 마동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숙이기 이전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라곤 마동의 옆에서 떠들다가 마동이 앉아있던 소파에서 다른 소파로 가버린 학생들이 진료를 받고 나갔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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