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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15

5장 2일째

115.

 도로를 지나 어제의 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가로등의 그늘 밑에 의자를 두고 이쪽에서 저쪽 도로의 주차공간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는 고인돌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을 다시 목격했다. 오늘 보니 고인돌보다 '이스터 석상'을 닮았다. 고인돌에서 이스터 석상이라 부르기로 마동은 생각했다. 그는 하루 만에 좀 더 얼굴이 석탄처럼 까맣게 그을려있었다. 그런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 감시자의 눈으로 주차공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스터 석상의 턱 역시 얼굴에서 비정상적으로 커 보였고 마동을 제외하고는 턱을 신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동은 잠시 그늘에 기대어 이스터 석상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젊은 사람이었다. 이스터 석상은 20대 중반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보다 턱은 더 커진 것 같았다. 얼굴도 어제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보였으며 팔, 다리는 몸에 비해 더 말랐다. 여름이라 얇은 긴팔을 입고 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나 긴팔 안의 피부색도 얼굴만큼 검게 그을려 있을 법했다. 이스터 석상도 땀은 흘리지 않았다. 이스터 석상은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는 것도(무더운 여름날에 따가운 태양 밑에서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아니고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었다. 안경 속의 눈은 주차공간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었고 입으로 꾸준하게 무엇인가 외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스터 석상의 턱 위의 입술이 기하학적으로 꾸물꾸물 주문을 외우거나 단어를 암기할 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스터 석상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감을 다 열어 놓고 뇌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스터 석상은 무엇을 끊임없이 외우고 있는 것일까.


 마동은 그늘로 몸을 옮겨가며 이스터 석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마동은 한참을 서서 이스터 석상을 보니 그에게서는 독특한 하나의 행동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의 주차요원(아주머니들이거나 나이가 많은 남자)은 차주가 차를 뺀 다음 신호를 보내면 그곳으로 달려가서 주차 티켓을 받아 들고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계산했지만 이스터 석상은 차주의 신호를 받으면 달려가서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바로 요금이 얼마라고 이야기를 하고 주차요금을 받았다. 이스터 석상이 의자에 앉아서 무엇을 외우느라 입을 오물거린 것은 이스터 석상이 맡은 구역 안의 주차시간을 전부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주가 차를 뺀다는 신호를 보내면 달려가서 그들을 기다리지 않게 하고 바로 요금을 받을 수 있었다. 마동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터 석상은 타인과 어울리지는 않고 남극점의 완벽한 빙하 속에 갇혀버린 듯 보였지만 자신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다. 이스터 석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독립된 존재감이라 여기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부여받은 시간을 떠안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스터 석상의 주위에는 사람들끼리 모여 무더위에도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로 인상을 찌푸리며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상대방이 듣지 않아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주차되어있는 자동차에 쌓여만 갔다.


 쌓인 그들의 이야기는 타인이 운전을 해서 다른 곳으로 싣고 가 버린다. 자동차는 누군가의 가족 이야기, 누군가를 욕하는 이야기 또는 누군가가 뱉어놓은 고민을 잔뜩 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스터 석상은 그 속에 섞이지 않고 빙하 속 얼어붙은 곰처럼 자신만의 세계와 이 세계를 오고 가며 견뎌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을 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의 주차시간을 외워가며 이스터 석상은 독자적인 존재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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