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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0

5장 2일째

120.

 마동은 분홍 간호사의 정체가 궁금했다.


 “대학교 때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아주 열심히 들었어요.” 분홍 미소를 띠며 마동에게 말했다.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대번에 마음의 마음을 읽었다.


 이것도 초능력인가.


 분명 여자들은 남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무의식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의 상태를 거의 정확하게 알아채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마동은 혼란스러웠다. 이 병원에 오기 전에 들린 내과에서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었다. 읽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마동의 머릿속으로 뒤섞여 들어와서 마동은 어지러웠다. 뇌파의 주파수 탓인지, 마동 자신이 진짜로 변이하고 있는 것인지, 만약 변이 하고 있다면 어떠한 변이가 일어나는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분홍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내 몸 안으로,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새로운 무의식의 발로라는 말인가.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방향이나 크기로 변이 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대부분 변이를 합니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대부분의 인간은 변이를 거치죠. 의식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신체적으로 말이에요. 다만 본인이 무의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1차원, 의식의 세계가 2차원이라면 무의식의 세계는 3차원 그 이상의 세계가 되겠죠. 그 세계에서는 눈앞에 있는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기도 할 것이며 상대방의 의식을 투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1차원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3차원 이상의 존재와도 교신이나 소통이 가능하구요.” 여전히 분홍 미소를 띠며 말했다. 분홍 간호사는 대학교 때 정신분석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마동은 말했다. “빙고, 그렇습니다. 바로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죠. 이웃을 사랑하는 의식에 자신을 사랑하는 의식을 투사하는 겁니다.” 분홍 간호사는 여전한 미소로 여전히 길고 살이 붙은 손가락으로 여전하게 풍만한 가슴을 움직이며 마동을 바라보았다. 분홍 미소를 지으며.


 “실재와 의식의 세계가 많이 다르다는 건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이 느낀 바지만" 마동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의식의 세계였다면 여기부터는 무의식의 세계가 고마동 씨에게 나타날지도 모르겠군요.” 분홍 간호사는 긴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분홍 미소.


 “간호사님은 그걸 알고 계십니까?” 마동의 질문에 분홍 간호사는 말이 없었다. 앞으로도 말이 없을 것이라는 걸 마동은 알고 있다. 분홍 간호사에게 일반 약국에서 처방받을 처방전과 함께 병원에서 지은 약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서 계속 이야기만 했는데 언제 약을 지었을까. 조제실은 병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모호함으로 가득한 병원이다. 약국에서 약을 지어서 먹기 싫으면 병원 약은 꼭 드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분홍 간호사는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마동은 기이한 약을 받아 들고 할 이야기가 더 있었지만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계산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여름이라는 무더운 계절의 열기가 느껴졌다. 더불어 몸살의 증상이 병원밖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마동이 나오자마자 몸에 들러붙었다. 기이한 의사와 기이한 간호사가 있는 기이한 병원 내에서는 도저히 여름이라는 계절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마동에게 쾌적한 공기가 병원 내부에 가득했다. 포르말린 냄새와 함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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