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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1

5장 2일째

121.

 병원 안에는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니었으며 선풍기를 여러 대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대기실에 앉아서 진료를 받으러 온 노인들의 얼굴 역시 평화로웠다. 다른 내과병원의 대기실과는 확고하게 다른 분위기를 기이한 병원은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끝에 남아도는 포르말린 냄새.

 다른 세계에 들어와 버린 느낌의 내과.

 병원의 그런 분위기가 깊은 눈동자를 가진 의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풍만한 몸과 가슴을 지닌 분홍 간호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오너는 마동을 걱정하며 병원에 갔다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어젯밤에 한꺼번에 완벽한 꿈 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한 덕분에 세세한 작업을 디자이너들이 할 동안은 마동은 특별히 할 작업이 없었다. 병원의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완구 도매점 앞에는 아직도 의자만 놓여있었고 완구점 사장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은 완구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제와 다른 흐름 속의 시간성이 완구점 안에 있는 것을 마동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달랐다. 어제와는 다른 죽은 시간의 공기가 축축하게 가득 차 있었다. 병원에 올라가기 전에 다르게 느껴졌던 완구점 내부의 시간성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완구점은 하루 만에 완벽하게 죽어버렸다. 마동은 소리를 내어서 완구점 사장을 불러보았다. 소복이 쌓인 죽어버린 시간성의 내부 공간에서 인기척이 엿보였다. “누구십니까?” 하는 소리가 완구점 안에서 들리더니 젊은 남자가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고 양손에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물건을 옮기는지 먼지가 땀에 희석되어 있었다. 젊은 남자는 완구점 사장의 아들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완구점 사장의 젊은 시절과 모습이 같아서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들은 완구점 앞 어제의 사장이 앉았던 의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몹시 마른 체형이었으며 근육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었다. 마른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 모습은 뚱뚱한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는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눈썹이 진하지 않고 연해서 남자는 말랐지만 순한 인상이 강했다. 만약 정리되지 않은 눈썹이 짙었으면 아마도 반전적인 얼굴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는 마동에게 인사를 한 다음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거래하던 거래처의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일을 하며 손을 내밀었던 곳의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조급함과 조금의 부담감이 서려 있었다. “누구신지?”


 “전 완구와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어제 위층의 병원에 가는 길에 아버님을 잠깐 만났습니다. 대화를 좀 했습니다. 좋은 분위시더군요.” 마동의 말에 남자는 조금 생각하는 듯 “그러셨군요”라고 했다. 아들의 대답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늘도 병원에 들리는 길에 아버님을 뵙고 가고 싶어서요.”


 “위층에 병원이요?” 아들은 새삼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표정이 마치 사라진 도도새의 얼굴 같았다.


 “네. 2층이 내과인데 몰랐습니까?” 마동은 이층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그렇군요”라며 아들은 고개를 들어 이층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금세 고개를 내리고 마동을 바라보았다. “2층에 병원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워낙 이 동네는 고요하게 흘러가니까요. 실은 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아들은 한참 무엇인가 생각했다. “저희 아버지는 오늘 아침에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치매가 심하셨거든요. 치매가 온 건 3년 전이었는데 퇴행성이라 병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예, 분명히 어제까진 아버지께서 이곳 이 의자에 한 시간 정도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가 제일 멀쩡하셨습니다. 하지만 멀쩡하다는 의미는 겉으로 봤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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