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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2

5장 2일째

122.

 “네, 실은 아버지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에게만 조용히 말을 하시던 분인데 이상하군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를 하여 요양원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꽤 미루고 있었거든요. 전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곳의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이곳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영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곳을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바로 없애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서쪽 숲’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론 저에게만 말이죠. 아마 그것이 아버지께서 가고 싶은 최종 목적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동은 어제 완구점 사장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저도 어제 아버님께서 서쪽 숲에 대해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못 뵙고 가게 되어서 안타깝군요.”


 아들의 눈에 잠시 빛이 총명하게 비치는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마지막 완구점 사장의 얼굴을 생각했다.


 “오늘 아침부터 아버지는 어쩌면 진정한 서쪽 숲으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늘 그곳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이죠.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서쪽 숲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몇 번 들어본 게 고작입니다. 저의 아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저의 누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3년 전부터는 모든 이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셨는데.” 아들은 마동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당신도 나처럼 동시적인 성질을 느끼고 있어서 안심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의 눈빛이 부드러웠다.


 몇 마디를 나눈 후 아들은 마동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완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처분할 일만 남았다는 말을 남기고 아들은 사라졌다. 완구점 안은 낮이었지만 어두웠다. 형광등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곳을 벗어났다. 해장국집을 거쳐 만두가게를 지나 대로변으로 나왔다. 태양의 열기는 냉철했고 마동의 몸을 바로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인자함이나 상냥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양의 열기가 이토록 괴롭다고, 올해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다.


 괴. 롭. 다.


 정말 괴로웠다.


 그렇게 사랑하는 태양빛이 미웠다. 같은 이유로 태양을 사랑했었는데 그 이유로 태양이 싫어졌다. 마동은 대로변에서 이스터 석상을 또 보았다. 금은방이 대로변에 일렬로 죽 붙어있었다. 금은방의 처마 밑 그늘에서 마동은 잠시 섰다. 그곳에서 이스터 석상을 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스터 석상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독립적인 세계관이 보였기에 마동은 이스터 석상을 볼 때마다 그를 유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스터 석상은 타인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았다. 이스터 석상의 뚜렷한 존재양식으로 자신의 하루를 고스란히 보내고 있었다.


 이스터 석상의 무의식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어떤 범위를 넘어섰기에 자신만의 방식을 현실과 접목해서 왕립 하고 있는 것일까.


 마동은 이스터 석상과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전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람의 목소리가 궁금했고 생각도 궁금했다.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길거리를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초라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근접할 수 없는 독자성이 쉽게 이스터 석상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스터 석상에게 가서 엉뚱한 말을 걸어보기에는 마동의 몸은 너무 힘들었다.


 햇빛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감기 기운이 마동을 덮어 버렸고 짓누르고 있었다. 아스콘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그 열기가 뼈마디까지, 뼈 속을 관통하고 얼굴로 확 올라왔다. 주저앉고 싶었다. 여름의 감기가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금은방 밑으로 늘어진 그림자의 세력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온 세상에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곧 세계를 호령하던 태양의 빛이 전부 사라졌다. 새로운 잿빛의 기운이 땅바닥에 감돌더니 하늘은 먹구름을 동반했다. 불처럼 이글거리던 태양은 먹구름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고 먹구름은 심술궂은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듯 소낙비를 떨어지게 했다. 우두두둑 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곧 쏴아 하는 경쾌한 소리로 바뀌었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고 1분 정도 후텁지근한 기운이 땅에서 대기로 화악 올라왔다. 마동은 비가 떨어지고 태양이 힘을 잃었을 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메마른 아스콘과 바짝 마른 시멘트 바닥에 소나기가 쏟아지니 비 비린내와 시멘트 특유의 냄새가 섞여 콧속으로 심하게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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