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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3

5장 2일째

123.

 이렇게 심한 비 비린내와 시멘트 냄새가 뒤섞여 나다니.


 이전에는 맡아보지 못한 격한 냄새였다. 어렴풋하게 아버지와 지냈던 어린 시절의 비 내리는 풍경을 떠올렸다. 소나기가 쏟아져 땅바닥에 닿으면 그 순간 흙냄새가 온 세상에 가득했던 기억이 났다. 기억이라는 것은 제멋대로다. 오래전 일을 기억할 때마다 좀 더 확대되는 부분이 있거나 더욱 축소되는 경향으로 나뉘었다. 기억은 현재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부분적인 사실만 떠올리게 하고 그 속에 상상으로 덧입혀진 가설을 집어넣게 된다.


 사람들이 기억을 ‘펙트‘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어떤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래전 그때 소나기가 쏟아지면 미꾸리를 잡던 아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입을 벌려 받아먹곤 했다. 미꾸리를 잡는 것은 뒷전이고 땀과 빗물이 범벅이 된 몸을 개울에 담그고 서로에게 물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놀이는 해가 저무는 저녁까지 지속되었다. 그때의 하늘에서 한여름에 떨어지는 소나기는 비린내가 없었다. 순수한 비의 냄새만 간직하고 있었다. 공해나 시멘트의 냄새가 비에 딸려 나지 않았던 순수한 비의 냄새. 아이들과 물놀이가 끝이 나면 어디로 갔는지 집이 어딘지 엄마의 얼굴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오로지 비 냄새의 기억.


 웅 웅. 웅성웅성.


 이명이 귓전을 또 때렸다. 9살짜리의 여자아이가 파리채로 힘껏 휘두르듯 이명이 불어 닥쳤다. 모든 소리가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가 한꺼번에 분산되면서 이명이 크게 울렸다. 웅웅. 우 웅 우 웅. 뱃고동 같은 소리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듯 이명이 마동의 귀와 머리를 아프게 했다. 소리가 사람을 아프게 한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금은방의 처마 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옷 다 젖었다-존 나게 내리네-갑자기 비는 씨바-


 -기상청이라는 곳에서-일하는 사람들의 말을 안 믿지만-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어떡하지-조금 있다가-그녀를-만나야 하는데-좆같아-


 마동은 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마 밑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의식에 희미하게 닿을 수 있었고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급작스럽게 내리는 비에 욕을 내뱉고 있었다. 마동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서 자신의 무의식이 사람들의 의식에 닿아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 계기는 확실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었다. 그녀를 만난 후 이 모든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면 오래전 고등학교 사건이 났던 그때,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때 그 골목길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가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을 품었다. 그 이후로 마동은 설명할 수 없지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분홍 간호사가 말한 카를 융이 살아 있다면 마동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상담을 받고 싶었다. 만약 융에게 마동이 상담을 받는다면 융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 잘 왔소, 하며 마동을 반기고 정말 좋아하지 않았을까. 마동은 이명을 피하기 위해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렸다. 비 비린내와 시멘트 비린내가 콧속으로 엄격한 파도처럼 파고들었다. 마동은 도로를 뛰어가는 도중에도 웅성웅성하며 사람들의 이명이 들렸다. 말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잡음 같은 이명은 머리를 쪼아댔다. 코를 막고 한쪽 귀를 막고 마동은 빗속을 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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