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1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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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게 보이는 저편 하늘에서 후피동물처럼 보이는 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구름은 자줏빛을 띠며 구름 밑으로 짙고 어두운 자주색을 발하는 거무티티한 빗줄기를 뿌리며 이곳으로 정중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자줏빛을 띠는 검은 구름은 지금의 세계를 바꾸려는 듯 보였다. 장롱의 뒷면처럼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을 지닌 적란운은 자각적인 영역을 확대하며 하늘을 전부 덮고 있었다. 쿠쿵 하는 천둥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고 마른번개가 한 번씩 번쩍 거릴 때마다 기분 나쁜 자줏빛구름은 방사선 같은 일렉트로닉 전리함을 만들어냈다. 이 일렉트릭 펄스는 전리전자의 발생으로 나타나는 전자펄스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그것에는 일반론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원죄적 절망이 가득했다. 마른번개가 번쩍이고 목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다의 수면 위에 올랐다가 사라졌다. 목 없는 사람들은 사념을 지닌 채 바다 위에서 거친 침묵을 내뱉으며 나타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했다. 그들의 수는 삽시간에 개미떼처럼 불어났다. 자줏빛구름은 짙고 어두운 해무를 가득 몰고 기분 나쁠 정도로 서서히 다가왔고 코를 막아야 할 만큼 심한 누린내를 동반했다.


먼바다에 떠 있던 거대한 유조선도 자줏빛 해무에 의해서 조금씩 사라졌다. 이후 유조선의 모습은 바다 위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바다 위에 사람들이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파도의 너울거림을 따라 힘겹게 들렸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자줏빛구름에서 뿌려대는 자주색 비는 어느새 완전하게 검은 비로 바뀌었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자줏빛은 암흑의 조류처럼 드러나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곧 인간이 있는 모든 세계의 하늘을 덮을 것이고 검은 비를 뿌려 댈 것이다.


바람이 불었다. 검은 누린내가 가득한 바람이 해무가 다가오는 바다에서 불어왔다. 목 없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일]

지금은 장마기간이다. 여름밤인데 조깅코스에 사람이 너무 없다. 마동은 잘됐다고 생각하며 마음껏 달리기 시작했다. 시에서 마련한 강변의 조깅코스는 시민들이 운동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은 겨울 동안 집안에서 꽁꽁 숨어 있다가 여름이 되면 도시에서 마련한 조깅코스로 전부 몰려나와서 자신의 집처럼 점령해 버린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은 여름밤, 야외의 조깅코스를 이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야외의 조깅코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이 무릎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는 나이의 남녀들이거나 반백을 넘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코스의 한쪽은 자전거가 달릴 수 있도록 빨간색의 자전거도로가 있고 다른 한쪽은 조깅을 하기에 편리하도록 녹색의 코르크바닥이 잘 닦여있었다. 그래봐야 시민들이 실컷 돈을 벌어서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너도나도 한 마디씩 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야외의 조깅코스니까 우리가 실컷 이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는 팽배했다. 그렇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조깅코스에 나와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그것이 외국과 다른 점이다.


자전거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의 속력은 아주 빨랐다. 그래서 초보들이 자전거도로에서 벗어나 조깅코스로 들어와서 자전거를 이용하다가 조깅을 하는 사람과 부딪혀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큰 소리로 자신의 입지를 우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동은 조깅을 할 때에는 타인의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장점이라고 하면 그저 달릴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누구와 같이 운동을 하는 것도 마동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달릴 때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똑바로 앞을 보고 보폭을 맞춰가며 시곗바늘처럼 달려갈 뿐이었다. 누군가 넘어져 있다 해도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타인의 삶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간섭도 하기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태양이 떠있는 낮에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웠지만 어두운 밤에 달빛을 받으며 조깅코스를 달리는 것이 꽤 매력적이고 터프하며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든 달이 떠 있는 밤에 조깅을 하는 것이 현재는 마음에 들었다.


달리면서 스치는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무형의 파티션을 만들어서 잡음을 막는다. 오직 달리는 것에 집중을 한다. 그러려면 조깅코스로 달려야 한다.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달린다면 소음이 많이 존재하기에 이런저런 소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다. 소리에 예민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소리라는 것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발사기와 흡사했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며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달릴 때는 오로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뿐이다. 음악은 하나의 운율이 되어서 머릿속에 여러 개의 기호로 배열된다. 들리는 음악을 기호로 나열하고 나뉘어서 균형을 잡아 놓고 머릿속에 넣어두면 회사에서 작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을 기호로 배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또 어떠한 특정적인 음악, 요컨대 프로그레시브나 아방가르드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호로 배열되는 것도 아니었다.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기호화가 되는 음악이 존재했고 그렇지 않은 음악도 존재했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다가오는 숙명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마동의 입장에서 그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쉽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리듬이 흡수되는 것이다.


여름밤의 공기는 후텁지근하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고 여름밤은 깊이라든가 색채가 결여되어 있어서 꼭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마동만이 그런 타성에 젖어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호한 관념의 여름밤에 마음껏 조깅을 할 수 있는 이 나라에, 그리고 이 도시에 조금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 역시 막연한 것이다.


여름의 기운이 한반도로 몰려올 때면 겨우내 스산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난 강변의 조깅코스에는 새벽까지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매일매일 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사람들이 너무 없다. 이상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없다니. 강변의 조깅코스로 우르르 나와야 할 사람들의 모습이 초췌하리만치 보이지 않았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전부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린, 점심을 먹고 난 후 5월의 오후 2시처럼 조깅코스가 텅 빈 공간 같았다. 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잘 된 거야. 마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더 편안하게 달리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동이 달리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조깅코스에 20대는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남녀들이었고 그 모습이 보기에 나쁘다거나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어떤 의식처럼 느껴졌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아마도 2, 30대는 대부분 현실에서 시간을 마음 놓고 쪼개서 운동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두 실내체육관 같은 곳을 찾는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빠른 시간에 최대한 효과를 봐야 할 것이다. 시간이나 폼을 들여 꾸준하고 밀도 있게 무엇을 생산해 내는 것에는 힘겨워했다. 음식도 빨리 나와야 하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도 빨리 인화가 되어야 한다. 빨리되지 않는 곳은 도태되어 버리고 만다. 배달은 마땅히 십 분이 넘어가면 사람들이 화를 냈고, 약속시간을 어긴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안 좋은 소리를 뱉었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해야 하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조깅 따위는 20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운동처럼 되었다. 시간을 오래 두고 따분하게 한두 시간씩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은 백 명 중에 고작 한두 명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동의 생각이었다. 모든 20대들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마동은 여기 조깅코스를 매일매일 달리고 있지만 마동을 제외하고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50대 이상의 남자들은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소화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들(라고 해봐야 아내정도)과 함께 강변의 조깅코스를 삼사십 분 정도 운동을 했다. 그들에게는 과하다 싶을 만큼 운동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짐(gym) 같은 곳에서 땀을 있는 대로 쏟아내며 지나칠 정도로 운동을 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느릿느릿, 천천히 걷거나 달렸다. 마동은 자신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하며 달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달려놓자고 늘 생각했다. 과유불급을 알고 있는 나이대의 사람들은 운동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운동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동은 역시 타인의 일이기 때문에 조깅코스에 나와서 느릿느릿 운동을 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오늘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넓은 조깅코스에 사람들이 없으니 옷을 다 벗고 공용수영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달리는 흐름을 끊어 버리는 방해자들이기는 하지만 늘 있어야 하는 무엇인가가 소거되어 버리면 일반적이지 않는 기이함이 들어버리고 만다. 마침 저 앞에 네 명의 아주머니들이 조깅코스에서 일렬로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일렬로,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면 마동은 달리는 속도를 줄여 그들을 지나쳐 빠져 나가서 다시 달려야 한다. 조깅코스에서 가끔 마주하는 일이다. 달리는 흐름이 끊어지고 아주머니 무리를 돌아서 다시 박차를 가하고 달리기까지는 묘한 불편함이 생성된다. 아주머니들은 이타적이지 않다.


마동은 언젠가 프레젠테이션을 조용히 준비하려 오전시간에 카페에 들어갔을 때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이 온 적이 있었다. 이 나라는 점점 낮아지는 출생률에 곤란함을 드러내고 정부는 사람들에게 출산장려를 억지로 권하며 마치 그에 떠밀려 출산을 한 젊은 엄마들은 벼슬을 단 모습을 지닌 엄마들이 더러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카페 안을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도 아이엄마는 미안한 구석이 없다. 커피를 쏟으면 아이엄마는 와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이가 그런 건데 이해해 줄 수 있지?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곳을 떠나는데 등 뒤로 아이엄마는 같이 온 일행에게, 등을 보이고 나가는 마동을 되레 경멸하는 목소리가 먼지 낀 시골길처럼 남았다.


조깅코스에서 한 줄로 서서 천천히 무리 지어 걸어가는 아주머니들도 그런 면에서 보면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주머니들의 평범함을 거부하는 행동들은 우리가 주위에서 많이 듣고 봐온 터였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아크로바틱 한 행동에 비하면 조깅코스에 일렬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대회의 등수에는 들지 못할 것이다. 마동에게 그런 부분은 지나치는 사소한 불편함일 뿐이다. 앞으로 과학이니 의학이니 하는 부분이 얼마나 발전을 거듭할지는 몰라도 유기체인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다. 타인의 불편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지만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니까, 하며 그저 넘어가는 것뿐이다.


말을 섞다 보면 의도하지 않는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면 그것대로 그만의 힘을 발휘해 상대방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현재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거나 매일 보도될 정도로 많아졌다. 조깅코스에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은 그저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일렬로 죽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을 피해 가려면 꾸준하게 달리던 행위를 어찌 되었던 잠시 포기하고 그 사람들을 비켜 가야 한다. 그럴 때면 무엇인가 끊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만 원짜리로 된 오백만 원의 뭉치를 손으로 흥겹게 세다가 이백삼십만 원에서 끊어져 다시 세야 하는 허탈함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어지는 한 세계가 끝나버리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서 별로였다. 아주잠깐 짜증이 나지만 그것뿐이다. 잠깐의 응어리를 참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아주머니 무리가 오늘은 반갑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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