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6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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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는 직원들에게 정장을 입고 출근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객과의 만남과 마찰이 거의 없고(몇 명만 고객과 미팅을 거치면 된다) 비교적 자율적인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오너는 직원들이 정장을 입기를 바라고 있었고 직원들은 오너의 말에 불만 섞인 소리 없이 잘 따랐다. 오너는 때때로 정장이 주는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서도 곧 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옷을 좋아하는 오너는 회식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지금 남자들이 환장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자신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가 아주 초짜 시절의 디자이너였을 때, 리처드기어의 초기작품인 ‘아메리칸 지골로’를 찍을 당시 의상 팀을 맡았지. 꽤 긴장이 되었겠지. 당시 리처드기어는 신인임에도 전 세계 여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섹시가이였으니까 말이지. 실제로 이전의 정장이라는 건 고리타분하고 근엄의 상징이 되어 있었지. 아르마니는 자신이 디자인한 정장을 리처드기어에 입혀서 영화 속에 등장을 시켰던 거야. 영화 속에 등장한 리처드기어를 보고 세계의 여자들은 외쳤지. 아니! 양복도 이렇게 섹시할 수가 있다니!라고 말이지. 이후에 리처드기어와 아르마니는 사람들을, 정확히는 전 세계의 여자들을 주방에서 상영관 앞으로 불러들이는 큰 역할을 하게 된 거야. 수트라고 불리는 정장은 이후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 앞일은 모른다는 거야.”


오너의 정장에 대한 믿음은 특별했다. 정장을 잘 차려입은 사람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확실하고 목적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믿고 있었다. 직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이봐, 고마동. 자넨 정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네.”오너는 마동에게 그런 말을 종종, 그것도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직원들도 그런 말을 마동에게 자주 했다.



고. 마. 동.


이름이 우스꽝스러워 어린 시절, 이름에 관한 별명이나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이름에 관련된 기억은 없다. 마동은 초등학교가 있던 고향을 생각하면 19세기 같은 시대에 지어진 건물과 방앗간, 폐쇄되어버린 탈곡공장과 다량으로 돼지를 키우던 축사와 냄새나던 담벼락, 정리되지 않았던 길거리를 휘잉 돌아다니던 바람이 몰고 온 먼지만 떠올랐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버스나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왔던 것이 분명한 초등학교시절이었다. 긴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왔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재미있게 지냈다거나 숙제를 했다거나 마당에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한 기억은 마동의 머릿속 어느 구간에서도 제대로 기억해주지 않았다.


지금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그때에도 비슷하게 떠 있었겠지만, 마동의 머릿속의 태양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무채색의 반공포스터처럼 그저 미미하고 암울하게 재생될 뿐이었다. 대학시절 마동은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을 잘해주었지만 인간관계가 그리 폭넓은 인간은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였고 그런 모습 때문에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휴학을 하고 여름이 시작되는 5월에 입대를 했고 제대 후 졸업도 하지 않고 바로 지금의 회사에 면접을 거쳐 입사해 버렸다.


대학교 일 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하여 대구에 있는 육군 50사에 보병으로 제대를 마쳤다. 육군에서 2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이름 때문에 점호시간에 자주 불렸다. 이등병의 새벽 2시, 부사수로 초소근무를 하던 중 하늘에 뜬 달을 보면서 마동은 생각에 잠기도 말았다. 사수인 상병 5호봉은 앉아서 편안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것이 이름이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더불어 부여받은 이름도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누가 불렀다. 순찰을 도는 간부가 앞에서 마동을 불렀지만 마동은 생각의 웅덩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초소근무에 소홀했던 것이다. 이후로 마동과 사수는 징계를 받고 며칠 동안 영창을 살다왔다. 마동은 내무반에서 선임들에게 돌아가면서 맞았다. 심하게 맞은 것 같지만 마동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낯빛하나 바뀌지 않고 주먹을 묵묵히 몸으로 받아냈다. 마동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큰 신경을 쓰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었다. 마동이라는 이름보다 더 이상하고 괴상하게 불리는 이름들이 많았지만 마동이라는 이름은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유발하는 어떤 무엇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름의 어감이 타인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한 녀석이라는 결과로 변질되었고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한 묘한 법칙이 내 이름에는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마동은 생각했다.


고등학생의 시기에는 아이들이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집단주의적인 경향을 많이 보였다. 괴롭힘은 발전을 하며 전진을 거듭하지만 멈추거나 퇴보는 없다. 언어적 유희로 시작하는 괴롭힘은 기를 쓰고 앞으로 갈 뿐이다. 몸을 돌려 뒤로 돌아가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 입으로 시작하는 괴롭힘은 주먹으로 얼굴에 고통을 주고 싶어 하는 격렬함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모진 고통을 줘야 고통을 가하는 입장에서는 재미를 느끼고 만족을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것을 정당함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인원이 필요하다. 다수가 그렇게 정해놓으면 옳은 것으로 결정된다. 비논리적인 성립이 존재했다. 마동은 어쩐지 이름이 가져다주는 기이한 상실감을 일찍부터 느꼈고 그것은 마동 자신을 어디에도 편안하게 데려다주지 못했다.


마동은 군대에서 초소근무를 서며 늘 달을 쳐다보았다. 달을 보며 마동 자신의 이름에 관련된 생각을 달에게 속삭였다. 입대하기 전까지 책에서 읽은 진리라고 하는 것들이 생활에서 부딪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모를 뒤로 약간 젖히고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빛깔 좋은, 잘 익은 얼음과일이 얼음나무에서 풍족하게 열리듯 언제나 그 자리에 떠올라 마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동이 먼저 달을 배신하지 않는 이상 달은 내편이라는 것을 마동은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달이 먼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믿게 되었다. 그날따라 달은 잘 씻고 나온 선녀의 얼굴처럼 뽀얗고 매끈했으며 마동을 보며,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이 마동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달빛은 차디찼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구름을 밀어내고 본질적인 모습을 지키려 애쓰는 마동에게 냉철한 빛으로 속삭여주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스포츠선수처럼 달빛을 받으니 그동안 조소 띤 모습으로 마동을 향한 사람들의 표정과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도 함께 스쳤다. 마동은 그날 이후, 말년의 병장이 되어도 야간근무를 자초했고 새벽의 근무자들과 근무를 몰래 바꾸기까지 하면서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럴수록 내무반의 전우들과는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달은 그런 마동에게 이름 때문에 고민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어,라며 조용히 타일러 주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달은 분명히 마동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마동은 달이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달이 마동에게 그런 메시지를 던졌다는 일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봐, 고마동. 자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자네가 입고 있는 정장은 내가 오랜 시간 봐왔지만 완연히 자네와 한 몸인 듯 해.” 오너는 회식자리에서 마동을 보며 호탕한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오너는 언제나 마동에게 성을 꼭 이어 붙여서 이름을 불렀다. 오너의 말에 동의를 한다는 다른 직원들의 소리도 들렸다. 그때 테이블의 구석진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서 마동을 바라보는 여직원이 눈이 들어왔다. 포니테일의 모습이 차분하고 도도하게 보이는 여자다. 가슴의 골이 살짝 보이는 아름다운 여직원 말이다. 그녀는 마동에게 눈으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다. 아니다 무엇인가 전달하려 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여자들은 세미정장을, 대부분의 남자들 역시 정장을 입고 출근을 했다. 이상하지만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너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캐주얼한 복장으로 회사에 출근하기를 꺼려했다. 오너가 부탁하는 대로 정장을 입고(굳이 입을 필요 없이 편하게 입어도 상관없지만) 출근을 한다는 것은 직장인들끼리 나름대로 직장인세계의 멋을 알고 있다는 무언의 대화 같은 것이 존재했다. 정장은 몸매를 가려주었고 돋보이게 해 주었다. 먼저 들어와 회사를 다니며 정장을 입기 시작한 선배들이 정장은 생각 이상으로 가장 편한 옷이라고 신입직원들에게 말해주었다. 정장이라는 것은 입고 있으면 그 속에 감춰진 몸매의 생김새가 어떻든 간에 정장이 보기 싫은 몸의 모양을 흡수해 버린다.


정장이란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전부 꽤 비슷하지만 멋지게 동화시키는 묘한 역할을 했다. 물론 정장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쩌면 마른 체형보다 배가 조금 나온 남자들이 정장을 입은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한지 일 년 정도가 지나면 아랫배가 쳐지고 배가 나오고 살이 붙는다. 정장은 그런 모습을 다른 옷에 비해서 잘 감춰주었다. 정장이란 사람을 꽤 돋보이게 하여 그대로도 괜찮군,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생각 외로 교활했고 정장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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