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7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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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이런 날에 최 부장은 왜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마동의 시선은 모니터에 두고 있었고 귀는 최원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머리는 지끈거려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손가락 끝으로 모아서 관자를 눌러가며 애썼다.


“그래서 뭐랄까, 처음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살을 좀 빼기로 결심했지. 난 말이야 자네는 잘 몰랐겠지만 일이 끝나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요 몇 달 동안 계속해 왔다네. 그런데 나에게는 헬스장 운동이 맞지 않나 봐. 조금의 차도도 보이지 않았어. 트레이너들도 나에게 붙어서 꽤 열심히 가르쳐 주었는데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네. 이상한 일이지. 먹는 양도 조절하고 매일매일 한 시간씩 들여 운동을 했는데 말이네.” 최원해는 자신의 성기 밑의 털을 다시 생각하는 듯 말을 끊었다.


“헬스클럽에서 내린 결론은 나에게는 오직 유산소운동만이 살을 뺄 수 있는 길이라더군. 트레이너가 조깅을 권하더란 말이지. 자기네 헬스클럽에는 트랙이 없어서 안 되니 야외에서 조깅을 하거나 조금 더 괜찮은 헬스클럽을 권해주더군. 요즘처럼 회원하나하나가 아쉬운 때에 다른 헬스장을 권해주다니 아마도 트레이너 눈에는 내게서 전혀 진척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나 봐. 헬스클럽 사장이 알면 트레이너에게 한 소리를 할 텐데도 나에게 다른 곳을 권유한 것을 보면 말이네. 내가 봐도 3개월 이상을 매일매일, 꼬박꼬박 강도를 높였지만 전혀 발전이 없었네. 희한하지 않은가?”라며 최원해는 자신의 운동하는 장면이 떠올랐는지 잠시 혼자 키득 거렸다. 그런데 감기 때문인지 최원해 부장이 말하는 소리가 이명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울림.


윙윙거리는 잡음.


최원해의 목소리가 제대로 귀를 통해서 뇌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물속에서 물 밖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이건 단순히 최원해의 말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소리라는 공명이 귀안으로 분별력 있게 자리 잡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도 감기기운 때문일까.


마동은 오른손의 검지를 귀안으로 밀어 넣어서 흔들어 보았다. 최원해는 그런 마동의 움직임을 낱낱이 뜯어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뭐 물론 나 혼자서도 조깅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구. 하지만 내 옆에 자네처럼 이렇듯 오랫동안 조깅을 해온 사람이 있어서 약간의 도움을 받자는 것뿐이야. 솔직히 밤에 마누라를 만족시켜 줄 의무와 나의 욕심을 채우고픈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네. 내가 살을 좀 빼고 조깅을 꾸준하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내가 자네를 위해 중매를 하나 주선해 주지. 그동안 자네를 죽 지켜봐 왔네만 여자를 만나는 것 같지가 않더군. 매일 트위터를 하는 건 알지만 트위터로 여자 친구와 대화를 하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 말이지.”


마동은 최원해가 자신이 트위터를 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을 하려 했지만 이명과 머리가 아파서 관두었다.


“가까이 지내는 이와 트위터 같은 수단으로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라는 것쯤은 나도 알지. 어떤가? 내 제안이? 마누라 회사에 아주 괜찮은 아가씨가 있는데 자네라면 좋아할 거 같아서 말이야. 정말 참하고 좋은 아가씨들이 있네.”


최원해가 하는 말이 점점 희박하게 들렸다. 소리가 작아졌다. 이상했다. 최원해의 말이 짜부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왜 이렇게 들리는 걸까.


단순히 듣고 싶지 않은 소리라서 목소리가 공명으로 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윙윙거리며 여러 마디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가 싶더니 목소리로 나온 말이 서로 부딪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영화 속 다른 행성의 존재가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더니 최원해가 말하는 소리가 뭉쳐졌다가 작아지는 것이다. 마동은 최원해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늘 안에 허락을 받아낼 기세여서 최원해의 말투에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머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표류자처럼 목적지도 없이 헤매고 있었다. 마동은 어쩔 수 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원해는 ‘그래, 역시 여자가 있어야 해’ 하는 눈빛을 띠며 자신의 자리로 슬리퍼를 끌며 돌아갔다. 최원해는 돌아가면서 고개를 돌려 마동에게 미소를 날렸다. 엔드 오브 데이즈에 나오는 악마의 미소 같았다.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만 마동 역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꿈의 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마동에게 주어진 일 중에서 전반적으로 차지한다. 마동은 수석디자이너이고 뇌파를 채취하는 작업도 도맡아 했다. 꿈이 재탄생하는 리모델링은 그렇게 난해한 일도 아니지만 쉬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회사의 업무가 많아지면서 일이 하나, 둘 씩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입사원서를 냈지만 어떠한 자격증도 필요 없고 자격도 뚜렷하지 않아서 입사가 쉬울 것 같았지만 만만치 않았다. 입사하여도 업무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거나 능률이 떨어지면 따로 교육을 받고 석 달 동안 모의작업을 통해서 투입여부를 결정지었고, 그것마저도 가망이 없으면 퇴사를 했다. 그것이 입사서류에 명시되어 있는 항목이다.


각 부서에서 할당된 교육을 받지만 특히 뇌파를 채취하는 훈련을 받는 부서는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실전에 투입이 되었다. 입사가 확정된 이들은 계약서에 그러한 규칙을 문서로 받아서 동의를 했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움직이는 조직에 잘 따르고 있었다. 여기에 남아있는 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인정받은 이후로는 아주 자유롭게 일을 하면 된다. 입사 지원을 원하는 이들은 매년 늘어났지만 신입사원을 다른 회사들보다 채용하는 빈도가 낮았다. 회사는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과 편의성을 최대한 보장을 해 주었고 나이순이나 입사한 순으로 진급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회사에 남아서 일을 하는 직원들은 모두 꽤 일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평등하게 진급의 기회가 주어졌고, 진급의 견인차역할을 하는 것은 아이디어 공모였다. 아이디어 공모는 매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며 일 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메일을 통해서 오너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문서로 작성하거나 그래픽으로 스케치를 해서 보내면 된다. 오너는 메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을 하고 있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마동을 비롯한 팀장들을 불러 검토를 거쳤다.


점심식사 시간에는 회사에서 마련한 식당에서 호텔조리장 출신의 요리사가 매일 다른 식단으로 메뉴를 정하여 직원들에게 대접한다. 회사 내에는 수면캡슐이 있어서 피곤하면 30분 정도 잠을 자고 나올 수 있었고 수면실에서 한 시간 이상 잠이 들면 자동으로 캡슐은 깨워주는 시스템으로 프로그램되어있었다. 일 년에 큰 휴가는 두 번이 있었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휴가는 최고 20일까지 낼 수 있었다. 여직원들은 임신을 하더라도 일할 수 있었고 만삭으로 걷는 것이 힘겹게 되면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면 되었다. 남자직원들도 부인이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를 3달 정도 낼 수 있었고 월급은 제대로 나왔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조건에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와서 그쪽과 첫 계약으로 거액을 거머쥔 직원이 정보를 빼내어 회사를 나간 일이 몇 해 전에 있었다. 그때 오너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자본은 인간을 변이 시키고 인간성을 변질시켰다. 그런 식으로 인재를 빼내간 타사는 대부분 음성적인 꿈 리모델링에 착수했고 그들은 정부의 추적에 발각되어 회사가 매각되거나 영업이 정지되거나, 아예 영업이 취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고객의 뇌파에서 꺼내지 말아야 할 멀쩡한 꿈을 뽑아내어 고객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고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꿈 리모델링 회사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개개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개발한 불법 프로그램이 삽입된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비교적 저지대의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지만 그 고객들 대부분이 타인의 말살을 위해서 꿈의 리모델링을 원했다.


마동이 다니는 회사는 프로그램화되어 이뤄지는 모든 일들이 허브를 통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시작해서 직원들 개개인에게 허브에서 정해진 작업분량이 구분되어 맡겨졌다. 직원들은 개개인의 데스크 앞에 있는 컴퓨터만으로 할당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회사는 점심시간을 엄숙하게 지켰다. 점심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허브에서 각자 도맡아서 하던 작업을 정지시키고 점심시간에는 작업에 관한 프로그램은 차단이 된다. 점심시간이 오면 개인 소셜네트워크를 제외하고 중단되기에 직원들은 책상에서 곧바로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건물의 맞은편 작은 카페를 개조한 식당으로 전적으로 회사의 직원들만을 위해서 마련되었다. 오직 식사와 티타임을 위한 공간이었다. 점심밥을 해결하는데 개인적인 시간과 비용을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은 질 좋은 스테이크가 나왔다. 근내지방이 덜하며 육즙이 좋은 숙성의 맛이 가득한 소고기로 점심을 채우는 것이다. 어느 날은 보리밥과 조기구이, 애호박이 들어간 된장찌개와 손으로 갓 만들어낸 신선한 두부와 초간장이 곁들여 나오기도 한다. 집에서 좀처럼 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나온다. 또 다른 날에는 고르곤 졸라가 스며든 피자가 나오기도 했다. 디저트도 좋았다. 회사의 식당은 카페 같은 분위기가 있어 분위기도 괜찮았다. 직원들은 좋아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실내의 조도가 낮았고 오너는 식당의 인테리어를 전문가들에게 맡겨져 카페 같은 분위기가 나올 수 있도록 공사를 했다. 덕분에 직원들은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며 회사 밖에서 점심과 커피를 줄서가며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식사가 끝나면 바리스타가 서 있는 커피부스로 가서 마시고 싶은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면 된다.


어떤 날은 더치로 추출한 예가쳬프나 만델링, 수프리모를 마실 수 있었다. 식단은 철저하게 칼로리와 열량과 나트륨을 체크하고 계산하여 요리했다. 일반적인 식당에서의 음식처럼 적당히 양념을 넣어서 요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단체로 먹는 요리는 양과 시간이 중요했다.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직원들은 사비를 들여서 먹고 싶은 찌개를 사 먹는 경우도 있었다. 일과시간의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하면 된다. 그 시간에 작업을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었고 회사에서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체의 움직임이 다른 일에 비해서 비교적 액티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음식을 배에 채우고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남자 직원들은 배가 나오고 비만이 오기 십상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변이를 했다. 회사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남자들은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도 타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동은 일일이 간섭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다른 이들의 비만한 모습에 뚱뚱하군, 불만이야,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지금 마동은 남들의 암세포보다 감기기운이 더욱 골치 아프고 신경이 쓰였다. 마동 또한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마동은 무거운 머리를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오늘 돌입해야 할 프로젝트 이전의 고객에게 받아놓은 꿈을 마동은 컴퓨터로 불러서 남은 부분을 마저 작업했다. 여러 개의 레이어로 분리하여 상황에 맞는 오브젝트 별 꿈으로 세분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작업한 세밀화 작업 분은 마동의 바로 한 단계 밑의 디자이너들에게 나뉘어 라인과 오버래핑, 스크린 등의 디테일한 작업을 거쳐 나중에 마동의 체크 단계를 거친다. 오너가 브리핑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려면 이전에 맡은 리모델링 작업의 할당량을 끝내야 한다. 그렇게 디자이너들 각각의 작업이 끝난 파일을 받아서 꿈의 단면을 자른 사이드를 3D로 천천히 돌려가며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마침내 이전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리모델링 작업의 마지막 시뮬레이션이 윤곽을 드러냈다. 마동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전, 이전의 작업을 마치기 위해 자신의 컴퓨터에 허브와 연결한 최적화 이노센트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바탕화면에 펼쳤다. 마동의 데스크에는 세 개의 스크린이 있고 그 스크린에는 각각의 꿈의 단면도와 레이어가 네 개씩 컴퓨터 화면에 펼쳐져 있었다. 사무실에는 독자적인 파티션이 있어서 작업하는 동안에 다른 직원들이 함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고객들의 꿈의 작업은 보안이 중요했고 무엇보다 회사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꿈의 리모델링은 소중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마동은 의자에 앉아서 디자인들에 의해 작업된 꿈의 레이어를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침에 조금밖에 먹지 않은 머핀이 속에서 체한 듯했다. 속이 아주 거북했고 욱욱하며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빈혈이 있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어지러웠다. 작업 때문에 정신과상담을 받는 일도 무기한 미뤘는데 점심시간에 가까운 내과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리모델링의 작업은 순수하게 꿈의 덧칠로는 어림없는 작업이다. 아프다거나 신경 쓸 일이 많으면 그 작업은 당연하지만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프로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어서 모두들 자신의 신변주위에 신경을 많이 쓰이는 일을 꾸미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회사에서도 회식이 왕왕 있었지만 다음날 중요한 작업이 많은 날이면 회식을 간소화하거나 술을 마시는 장소는 되도록 피했다.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서 커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직원들은 기억의 왜곡에 대해서도 방전되지 않게 훈련을 하고 트레이닝을 꾸준하게 거쳐야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병이 걸리거나 큰 사고를 당해 입원하는 경우가 생기면 머리의 촉은 아무래도 그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한 개인이 속한 가족의 경조사를 당하게 되면 매시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리모델링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업의 일선에 투입된 직원들은 특히 더 그랬다.


그래서 훈련을 꾸준히 받지만 신변의 변화가 가져오는 부분이 작업하는데 영향을 미치거나, 작업자 자신의 기억을 왜곡시켜서 잘못된 기억의 한 부분을 토대로 고객의 꿈을 작업하게 된다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을 떠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윗선에서 내려오는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아니기에 신체와 마음의 안정이 늘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것이 마동이 일하는 회사의 조화와 균형인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고객은 자신의 꿈을 아주 디스토피아적으로 작업하기를 바라지만 디자이너들 중에 이제 연애를 시작했거나, 아이가 태어났거나 집을 장만하거나, 행복에 겨워지면 작업자의 작업방식이 고객의 요구와는 달리 행복 인자가 많은 작업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대로 낭패인 것이다. 고요한 호수의 수면처럼 편차가 크지 않게 마음과 육체의 평화적 유보가 무엇보다 마동이 속한 집단의 작업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이다. 직원 개인의 귀결은 회사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직원 하나하나의 안녕이 보장되는 게 중요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과 교육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마동은 일선에서 작업하기에 딱 들어맞는 인간이었다.


마동은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웠지만 이전의 작업을 다 마쳤다. 마지막으로 체크사항을 점검했다. 그러는 동안 점심시간이 그럭저럭 되었다. 시간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앞으로 꾸준히 간다. 시간은 파괴적이다. 꾸준하기 때문에 무섭다. 시간에 이길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인간만이 꾸준히 나아가는 시간에 역행할 수 있는 힘을 지니지만 실체의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의미적으로 꿈의 리모델링은 그 시간이라는 개념에 반하는 것으로 뇌파의 망가진 꿈을 건드려 과거를 디스토리션(Distorition)하는 것이다. 마동이 수석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입사해서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동 자신이 이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데 있었다. 지루해하지 않고 출발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마동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 가며 리스크를 점검해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왔다. 꿈의 크기와 자본의 함수관계에 상관없이 들어온 꿈의 작업을 마동은 심도 있게 작업을 했다. 지난 작업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곧바로 수용하고 바로잡았고 오류가 바로잡히자마자 새로운 작업에 매달렸다. 때로는 복잡한 리모델링 작업을 맡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려운 물리학을 파헤치듯 그 작업에 몰두하는 정신력과 집중력이 생겨났다.


고객의 요구와 회사의 강령과 자신의 욕구사이에서 마동 자신의 모습을 희미하게 하며 작업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동은 그 방식이 좋았다. 자신을 한없이 낮춰서 상대를 존중해 준다. 작업할 때만은 그런 자세를 취했다.


마동은 오늘 출근하여 일하는 시간을 다른 날에 비해 집중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것을 아까워했다. 흘러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만사에 ‘절대’가 개입하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절대로 마동 앞에 다시 오지 않는다.


젠장,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게 감기 때문이다.


몸속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이 가동되어서 계속 메탄가스를 위로 올려 보내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최원해가 참치인간의 마른 미소를 보이며 회사 밖으로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마동은 사양했다. 내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최원해의 말을 잘랐다. 최원해 역시 그다지 실망하는 얼굴표정은 아니었다. 그 표정은 오랜 시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과의 대면과 만남에서 나오는 속물적인 표정이었다. 호의가 거절당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뚜렷하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연륜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것이다.


최원해는 ‘그럼 그렇게 하지, 나 혼자서 밥을 먹도록 하겠네, 괜히 따라오면 내 주머니의 돈만 빠져나가거든’라는 의미를, 표정의 정교한 일그러짐으로 전달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인간미라고는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직원 중 누군가가 최원해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것을 마동은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한 직원이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 직원이 어떠한 이유로 최원해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직에 최원해 같은 인간은 반드시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마동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가까운 내과로 갔다.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내일부터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열기를 뿜어냈고 광채는 온 세상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자연스레 얼굴의 표정이 무너졌고 눈이 작아졌다. 그늘이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차광막을 만들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서 걸었다. 그늘을 따라서 시적시적 내과를 찾아 걸었다. 걸을수록 걸음걸이에는 힘이 들어갔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감기가 뜨거운 열기에 더 기승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이런 감기는 겨울에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한 여름의 감기바이러스는 마동을 무척 귀찮게 했다. 십분 이상 걸었더니 숨이 차고 한기 때문에 몸도 떨리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땀이라고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마동은 길거리에 보이는 내과에 들어갔는데 이 여름에 세상의 환자들이 다 모인 듯했다. 내과의 로비에는 이미 길 잃은 강아지들처럼 사람들이 그곳에 가득 들어차서 기침을 하거나 멍한 눈빛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 그리고 회사원도 보였다. 대부분 냉방병으로 내과를 찾았다. 대로변에 있는 병원은 전부 사람이 많아서 점심시간 안에 진료를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와서 이희노 정형외과와 그 건물에 붙어 있는 1층의 약국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마동이 학창 시절에 가끔 지나다니던 곳으로 작은 내과병원이 하나 있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하고 있는지 가 보기로 했다. 골목은 아직 옛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대의 발전이 이곳 골목까지 마수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이것 봐, 이곳에 땅을 파고 길을 닦고 건물을 올리면 말이지, 당신과 당신 후세는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정부가 내민 문민정책이라는 손길에 여기 골목의 상가 주민들은 콧방귀를 뀌며 그 손을 뿌리쳤을 것이다. 마동은 오래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골목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골목은 허름한 만두집을 필두로 해서 옆으로 해물탕 식당이 보였고 국밥집, 분식집, 식사를 할 수 있는 밥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소규모에다 식당의 벽은 낡아서 덧칠해 놓은 페인트 자국이 4세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청 테이프를 발라놓은 모습도 보였다. 에어컨은 설치해 뒀지만 가동하지 않는지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있었고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로변의 모든 상가나 카페는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거나 들어갔다가 그냥 나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여기 이곳은 그에 비해 초라했다. 마치 같은 몸이지만 기능을 잃어버린 신체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우물 저 밑바닥의 세계 같았다.


만두집에는 손님이 한 테이블 있었다. 엄마와 딸의 모습인데 딸이 이제 9살 정도 돼 보였다. 그 또래에 비해 왜소했다. 반팔티셔츠 밖으로 애처롭고 부러질 듯 가느다란 팔뚝을 겨우 움직여 만두를 집어 먹고 있었다. 아이는 더운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엄마는 아이의 땀을 연신 닦아 주었다. 닦아주는 엄마도 땀이 얼굴에 배어있었고 아이는 엄마에게 만두를 먹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영화나 드라마 그런 곳에서.


접시 위 만두는 모녀사이에서 어색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만두는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모녀는 그 바람을 무시하는 듯 아이만 천천히 만두를 씹어 먹고 있었다. 아이는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만두를 먹었다. 마동의 눈에 그들은 그렇게 유복하게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골목의 가난한 만두집에서 가난한 모녀가 초라한 만두를 먹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마동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땐 마동의 친구들이나 다른 집 역시 썩 잘 사는 가구는 없었다. 어머니가 말이 없어지기 전이지만 고등학교 사고 이후 마동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가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이 가끔씩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마저 마동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도 애써 짜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동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을지도 모른다. 저 만두집에 앉아서 만두를 먹는 모녀처럼.


동네의 쓰러져가는 풍경과 무서울 정도로 차갑던 숲의 모습은 생생했지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은 어찌 된 일인지 없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뿌옇게 먼지 낀 도로처럼 희미하지만 그 손은 어머니의 손은 아닌 것 같았다. 너구리의 모습도 드문드문 떠올랐다. 사방이 숲이라서 너구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영화 속 줄거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처럼 너구리는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가 심각하지 않게 사라지곤 했다. 아버지는 마동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죽었다. 마동은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가을날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가 일하는 경운기 수리 점에 가는 길이었다. 경운기는 요즘도 시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작업농기계다. 털털거리는 큰소리와 함께 기동력이 좋고 힘이 좋아서 어느 언덕이나 올라갈 수 있고 얕은 개울물도 건너는데 문제가 없는 불도저 같았다.


아버지는 수리를 끝낸 경운기에 가끔 마동을 태우고 시운전을 하곤 했다. 그날도 마동은 아버지와 함께 경운기의 시운전을 할 요량으로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몇 마리 없는 돼지축사를 지나서 가는데 어디선가 이탈된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평소에 듣던 경운기의 엔진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쾌하지 않았고 어둡고 비밀스럽지 않게 위압적이고 굉장한 소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맹수가 누린내 나는 이를 드러내고 내지르는 공포가 섞인 소리였다. 무서웠다. 마동은 어렸지만 대번에 그것은 두려운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가방을 동여매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축사를 돌아서 가니 힘없는 시멘트벽을 타고 올라가려는 경운기의 끔찍한 모습이 보였고, 경운기와 벽 사이에는 마동의 아버지가 끼어 있었다. 경운기의 바퀴는 아버지의 얼굴을 사정없이 갈아서 얼굴 가죽이 다 벗겨질 지경이었고 아버지의 팔은 뒤로 꺾인 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마동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동자는 그동안 마동이 보지 못했던 연약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의 깊은 눈빛으로 마동에게 다가오지 마라, 아빠는 괜찮을 거란다, 끝나지 않아, 끝나지 않는 세계 속에서 넌 힘겹지만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해, 걱정하지 마, 언제나 함께 있으마, 너를 응원하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린 마동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아버지는 그런 눈빛으로 마동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장 파열로 10시간 만에 죽어 버렸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마동은 그날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떠한 기억에서 잘못된 부분이나 부풀리는 날조 없이 그날 이후 마동은 줄곧 그 잔인한 기억은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아버지의 고통에 찬 얼굴과 편안한 눈빛.


대립된 모순이 마동의 머릿속에서 칼날처럼 반짝였다. 눈빛은 마지막에 마동을 향하고 있었고 어린 마동은 얼굴 가죽이 벗겨져 나가 죽음으로 향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불러 올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아버지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울지 않았다. 평정을 유지한 채 생활한 것으로 기억할 뿐이다. 그 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늘 짙은 안갯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은 기억에 대해서 만두모녀를 보며 떠올리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기억을 할 필요가 없다. 기억을 한다고 해서 지금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운 날이다. 몹시 무더운 여름의 날이었다. 만두모녀가 이제 만두를 반 정도 먹었고 그 모습을 서서 보다가 마동은 만두집을 지나쳤다. 그 골목을 돌아서니 모퉁이에 장난감 도매점이 보이고 2층에 ‘라사마내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병원은 이전하지도 않고 증축도 개축도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 한 곳에서 견디고 있었다. 1층의 장난감 도매점도 무척 오래되었는데 문을 열어 놓고 아직 장사를 하고 있었다. 도매점 안에 오래된 장난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지만 이제 그런 장난감을 찾는 아이들은 제비처럼 줄어들었다. 장난감은 예전에 대량으로 생산되어 초등학교 근처의 문방구에 소매 급으로 팔려나가서 많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가져다주었지만 요즘은 떨어지는 디테일과 환경공해를 유발하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로 만든 플라스틱제품을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가끔씩 고아원이나 단체가 있는 시설에 싼 가격에 도매로 팔려나가서 그 명맥만 유지할 것이다. 주인은 입구의 그늘에 앉아서 어딘가에 쫓기는 표정으로 신문을 들추고 있었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앞으로 갔다. 앞을 지나쳐야 라사마내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도매점 주인은 77살은 넘어 보였다. 87살이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나이를 가늠하기 애매해진다. 60살은 넘었지만 100살은 안 돼 보였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얼굴에 굵고 진한 검버섯이 지도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누군가 우악스럽게 다 쥐어뜯었는지 윗부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정하게 보였다. 신문을 확인하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하얀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도매점 주인이 앉아있는 의자 옆에는 얼음이 들어있는 물병이 보였다.


“실례합니다”라는 마동의 소리에 돋보기를 콧등 밑으로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뜬 완구도매점 주인은 마동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 쫓기는 표정이거나 무엇을 찾는 얼굴을 했다. 손님이거나 새로운 물건을 주문하려는 업체 사람인가 싶어서 주인의 눈빛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이층에 아직도 병원이 하나요?” 마동은 자신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찢어진 종이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 같은 소리처럼 들려서 조금 놀랐다. 완구도매점 주인은 돋보기 너머로 마동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탄탄하게 잡힌 몸매가 옷 안에 감춰있다는 것을 아는 듯 완구 도매점주인은 감탄의 눈빛으로 바뀌더니 나도 한때는 하며 회상의 눈빛으로 다시 탈바꿈되었다. 그렇지만 주인이 정말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마동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다. 주인의 눈빛은 꽤 많은 의미를 지닌 눈빛이었다. 마치 호기심 많은 10세 소년의 눈빛처럼 보였다.


"왜? 어쩐 일인가? 사무적인 일인가? 구청의 조사원인가? 조사원이라면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가서 더 이상 볼일은 없을 텐데……." 여전한 눈빛으로 마동의 몸을 훑어보았다.


“아닙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혹시 진료를 하지 않거나 사람이 많으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힘겨울 정도입니다.” 마동은 사실대로 완구점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다. 완구도매점주인은 턱을 약간 앞으로 내밀며 “쯧쯧, 어쩌다가 그리됐나, 아주 튼튼하고 건강하게 보이네만. 올라가 보게. 진료는 하고 있다네. 예전의 원장은 죽고 그 아들이 대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작은 내과지만 병원은 하고 있다네. 아마 간호사도 한 명일 걸세(공허한 곳을 보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네. 간호사가 몇 명인지는 말이네. 진료는 하고 있네만 많은 환자들은 오지 않아. 예전부터 오던 단골들이 찾아오거나 단골의 가족들이 알음알음 올뿐이지. 사람들은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내과의원이나 허름한 식당은 찾지 않는다네. 아는 사람만 겨우 찾아오지. 하지만 아들도 솜씨가 좋다네. 어지간한 건 다 고쳐주지. 그래서 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더 좋아한다네.”


완구도매점 주인은 자신이 이 병원의 원장과 친했다는 듯 원장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이야기를 했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완구도매점 주인도 자신의 도매점 안을 뒤로 돌아서 바라보았다. 완구도매점 주인의 머리카락이 없는 뒤통수는 자아가 빠져나가버린 동물바이러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어떤 의미가 사라져 보였다.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얼음물 한 모금을 마셨다. 날은 무더웠고 완구도매점 주인의 목덜미는 땀이 흐르고 마르고를 반복해서 끈적끈적함이 역력했다. 그럴 때마다 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소용없는 부채질을 했다. 마동은 그런 무더위 속에서도 땀이 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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