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기 이곳? 이곳은 나만의 세계지. 마치 서쪽숲 같은 곳이라네.”
“서쪽숲이요?”
“그래, 서쪽숲. 오래전엔 서쪽숲을 찾아서 무진장 앞으로 나아갔지. 하지만 서쪽숲은 어디에도 없더군. 실망이 컸지. 시간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되었다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작은 세계, 서쪽숲이라고 말이야. 이제 이런 구닥다리를 찾는 아이들은 없지만 뭐 괜찮네. 장사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조금은 앞일에 대해서 알 수 있으니 말이네. 자식들도 다 컸고 말이야. 호 시절엔 일만 했지.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살만하다네. 삶이란 절대 끝이 나지 않아. 그 끝이 없는 세계 속에 소세계가 소멸되고 재탄생되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네. 태양과 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진짜 세계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네.”
주인은 손바닥을 하늘 위로 보이며 어서 올라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딘가로 오르는 일이 이렇게도 힘겹게 느껴지다니 마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단은 친절했다. 계단 옆에 손으로 잡을 수 있게 계단손잡이를 만들어 놨다. 마동은 그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손잡이는 철제구조물로 되어 있어서 꽤 뜨거웠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어떠한 높은 건물이라도 도달할 수 있었다.
마동은 계단을 좋아한다.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창을 통해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평온했다. 계단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마동은 늘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계단에 앉아서 맞고 있으면 이것이 자연에게 동화되는 기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마동이 모든 계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에는 춥기 때문에 계단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사색 따위를 할 수 없었다.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추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묘한 계절 속의 계단이 마동이 정말 좋아하는 계단이었다.
6층과 7층 사이, 또는 11층과 10층 사이의 계단에는 아파트의 꼬마들이 앉아서 크레파스로 하얀 도화지를 더럽히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계단에 앉아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귀엽기만 하다. 여자아이가 붉은 크레파스로 악마의 뿔을 그리고 남자아이는 여자의 치마를 그렸다. 마동은 옆으로 가서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계단이 같이 앉아서 바라보았다. 주말의 오전이라 아파트 계단에는 각 집집마다 풍겨 나는 음식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언제부터 계단을 좋아했던 걸까.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계단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자라서일까.
계단에 앉아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니 그림 속에서 뿔 달린 것이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악마였다. 마동은 좀 더 집중해서 그림을 보았다. 그랬더니 뿔 달린 악마가 도화지 밖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세계의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아주 불길한 모습이었다. 뿔 달린 악마는 진실을 외면한 채 도화지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다. 뿔 달린 악마는 철탑모양을 하고 있었다. 뿔은 철탑의 꼭대기 부분의 철탑 피뢰침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른 채 서로 소꿉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동은 아이들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고 뿔 달린 악마 같은 철탑은 도화지에서 급격하게 빠져나와서 아이들을 덮치려 했다. 악마는 영락없는 철탑의 모습이었다. 마동은 자신의 심장을 칼로 찌르며 철탑에게 달려들었다.
여기까지 하던 생각을 떨쳐버리려 머리를 흔들며 병원입구까지 올라왔다. 계단은 생각 외로 높았다. 그러고 보니 병원이라는 곳에는 고등학교 때 이후 지금까지 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병문안이나 다른 볼 일 때문에 들린 적은 있었지만 마동 자신의 문제로 내과를 찾아보긴 그야말로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요즘은 병원 내에서도 포르말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기실에 몇 명의 환자가 앉아 있었다. 건물 밑에서 봤을 땐 전혀 환자가 없어 보였지만 그건 마동의 편견이었다. 모시옷을 입은 할머니 한 사람과 반팔의 하늘색 남방을 입고 여름용 치노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 한 사람 그리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두 명, 직장인으로 보이는 촌스러운 유니폼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것은 20대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대부분 기침을 많이 했으며 역시 그 모습은 한눈에도 냉방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사람들은 여름에 겨울감기가 걸리고 겨울에는 감기보다 지독한 독감이라는 강한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었다. 감기 바이러스는 일단 한 번 인체에 침투를 하면 한 번에 빠져나간다거나 소멸하지 않았다. 뉴스전문채널에서 몇 년에 걸쳐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우리 모두가 알만한 유명한 배우가 가상 프로그래밍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다큐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경기가 어려워지고 경제부흥을 일으켰던 세대들은 회사에서 대부분 퇴직을 하여 자영업이라는 새로운 업종에 뛰어들었지만 경영부진과 사기 등에 휘말려 살길이 막막한 시대에 들어왔다. 그들은 단가를 맞추고 생활을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섭취하면 위험한 화학물질로 음식의 첨가물을 만들었고 정부는 적정량이라는 애매한 기준치를 두어 허가를 해주었다. 첨가물은 식당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적당한 양이라는 것을 지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결국 그들도 다른 곳에서 그들처럼 화학첨가물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했다. 돌고 돌았다. 단가를 낮추고 그에 맞게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그들은 대륙의 외곽 지역이나 동남아 나라의 해안근교의 오래되고 질 나쁜 식재료를 사들여서 식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정보가 부족한 일반인들은 그렇게 돌고 도는 음식을 팔고 사 먹었다.
그 사람들의 2세가 자라서 똑같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어가며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아토피를 안고 태어나거나 환경에 의해서 아토피가 극심하게 몸에 퍼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화면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가렵지만 긁지 못한다. 아이에겐 고통스러운 일이다. 긁지 못해 울어버린다. 그 통계는 매년 늘어가는 추세다. 아토피 바이러스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인체의 빈틈을 파고들어 유전자로 하여금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인체에 내려 보낸다.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바이러스는 점점 불어나기 시작한다. 아토피라는 새로운 변이체는 시간과 더불어 세력을 확장시키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더니 생활이라고 하는 부분을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손가락으로 번진 아토피는 피부의 껍질을 하얗게 변색시키고 허물을 만들어내서 시종일관 가려웠고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올랐다. 여름에 일광욕을 잘못한 사람들의 피부처럼 허물이 제멋대로 벗겨졌다.
아토피가 심한 학생들은 사람들을 회피했고 시선이 무서워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아토피는 각각의 인체에서 서로 다르게 변형질로 자라서 아토피의 확실한 치료법이나 약의 개발이 어려웠다. 유전형질로 물려받은 열성인자들이 떠안고 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유전자는 인간을 이동매체로 하여 끝없이 이어져 가면서 그 크기와 강도를 확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소피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는 정부가 국민들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 소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뉴스전문채널에서 야심 차게 준비해서 정부에게 타격을 가하는 방송을 제작했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사람들은 아토피를 몸에 지니고 있지만 피자집으로 향했다. 다큐멘터리의 진행을 맡았던 유명 배우는 이후로 비중 있는 역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끝내는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아토피처럼 감기바이러스도 마찬가지였다. 면역체계가 약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냉방병의 노출도 심했다. 이 병원에는 대로변의 병원들처럼 환자가 너무 많지 않아서 마동은 안심했다. 캐시카운터로 가니 간호사가 정말 한 명만 있었다. 그런데 간호사의 복장이 평소 병원에서 보던 그런 간호사 복장과는 많이 달랐다. 오버스럽다고 해야 할까. 간호사는 분홍색의 원피스 복장을 하고 있었고 단추가 많이 달려 있었다. 간호사복은 그녀의 육체에 타이트하게 들러붙어서 섬세하고 야릇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요즘은 간호사들이 하지 않는 간호모도 하고 있었다. 마치 제5 원소에서 비행선의 승무원을 떠올리게 했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죠?”
간호사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경쾌한 파장이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간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훈련받지 않은, 세심함은 좀 덜하지만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미소였다. 마주 대하면 안심이 안 되는 미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디선가 교육기간 중에 대부분 훈련을 받는다. 본인의 얼굴을 가리고 상대방에서 세심함을 전달하려고 하는 미소를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 짓는 미소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분홍간호사복장의 간호사가 지닌 미소는 업무에 극심하게 시달리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소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정말 환자가 몇 명 되지 않아서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처음 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
목소리 또한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분홍색의 매니큐어가 정갈하게 칠해진 긴 손가락으로 마동 앞에 있는 키보드를 손짓하며 마동에게 의료보험을 적용시켜야 하니 주민등록 번호의 앞부분을 기입하라고 했다. 분홍색이 칠해진 손톱이 몇 번 마동의 눈앞에서 휘이익 움직이는가 싶더니 홀로그램으로 스크린이 나타났다. 홀로그램 안에 커서가 깜박이며 마동의 기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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