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와 결락
참 별 거 없는데, 그 별 거 없는 게 재미있어서 보게 되는 영화다. 이런 것이 독립영화의 힘이 아닌가 싶다. 2018년 개봉인데 영화는 꼭 2000년대 초 같은 분위기다. 배경이 되는 식당이나 술집, 그리고 동네가 정감 있는 일본의 서민들 모습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도 미운 구석이 없다. 드라마적 요소인 인물 간 갈등 요소가 없다. 오직 갈등이라면 주인공 하츠미의 내면의 갈등뿐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굉장히 정적으로 흘러간다.
하츠미는 중학교 음악교사를 하며 연인과 행복하게 지냈지만, 3년 전 봄에 연인이 죽어버린 후 교사도 그만두고 작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저 하루를 보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츠미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하는데, 3년 전 죽은 연인이 그녀에게 보낸 편지였다. 고요하고 무료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 가게 주인은 부녀지간으로 하츠미가 지각을 해도 받아주는 넉살 좋은 주인들이다.
단골손님도 매일 있지만, 아버지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한 달 뒤에 가게를 폐업하기로 했다는 주인집 딸. 그리고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하츠미에게도 퇴직금을 챙겨준다.
가게에서 늘 밥을 먹던 근처 목공일을 하던 청년에게 대시를 받지만, 편지 이후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하츠미.
그리고 3년 전 중학교에서 음악을 배웠던 제자가 아티스트가 되어서 나타났지만, 같이 살고 있는 남지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같이 지내게 된다. 또 죽은 연인의 가족까지.
이 모든 관계가 갈등 없고 굴곡 없이 아주 조용하고 정적으로 흘러가는데, 보다 보면 하츠미가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나 있다.
카라타 에리카 주연의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를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물처럼 흘러가는 일상에 스며드는 게 쉽지 만은 않은 사람이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들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들이 일상에 산적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피하는 것이다. 피하거나 고개를 돌리면 편하다. 누군가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에게는 금메달을 따는 것만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하츠미처럼 마음속 한 부분이 텅 빈 공백이 들어찼을 때, 그 공백을 메꿔줄 무엇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전혀 나에게 배를 보이지 않고 적대적이던 강아지가 숨을 죽이고 매일 조금씩 다가갔을 때 언젠가는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일상의 미묘한 변화가 나를 위로해 주는 그런 일들 말이다. 하츠미는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라디오를 듣는다. 그 라디오 방송으로 인해 미소를 짓는다.
디지털이 흘러넘치는 시대에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 아날로그 같은 관계가 그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https://youtu.be/mUatv-UeZWs?si=_qV_MNOgky4o6Mp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