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에세이
하루키는 쪼개기를 좋아한다. 그런 것 같다. 문학적 잔인함으로 사람을 이쪽저쪽으로 쪼개 놓기를 즐긴다. 묘하게도 쪼개진 주인공이 이쪽저쪽으로 나뉜 세계를 유영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우리 또한 하루키의 쪼개기를 즐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은 평범한 이쪽 세계보다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저쪽 세계를 택한다. 어둠의 저편에서도 아사히 에리는 저쪽 세계에 갇혀 잠만 자게 된다. 그간 아사히 에리에게 가해졌던 친절한 폭력은 그녀를 저쪽 세계에서 잠만 자게 한다. 알파빌은 어떠한가. 알파빌은 엄연히 이쪽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곳에서는 섹스는 가능한데 사랑은 소거된 저쪽 세계인 것이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도 스미레는 저쪽 세계로 가 버리고 만다. 자신이 쓴 글을 남겨둔 채 이해할 수 없이 이쪽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뮤 역시 이쪽 세계의 놀이기구 위에서 자신의 방을 들여다봤을 때 욕망의 또 다른 저쪽 세계의 뮤 자신을 본다. 그 후 뮤는 이쪽 세계에서 욕망이 사라져 버리고 머리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만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무라 녀석은 저쪽 세계로 들어가 저쪽 세계에 살고 있는 아직은 소녀인 사에키 상을 만나 사랑을 한다. 어쩌면 이 모든 시초가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 숲의 나오코와 미도리가 아닐까, 하고 혼자서 생각해본다. 나오코는 저쪽 세계의 사람이고 미도리는 이쪽 세계의 사람이다. 끝없이 흐르는 붉은 피 같은 존재 나오코는 그 세계로 들어가 버리고 와타나베 녀석은 나오코를 따라 그 세계로 들어가려 하지만 푸르른 녹음 같은 미도리를 보며 이쪽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이 '쪼개기'란 말이 다른 곳에 사용되고 있다. '쪼개기 알바'나 '쪼개기 노동자' 같은 곳에 사용되고 있었다. 전문직종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두, 세건 씩 하면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루키의 문학적 잔인함인 쪼개기가 흥미로운 것은 우리 인간의 자아가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친구가 쟤만 나오면 달라진다든가, 운전대만 잡으면 이상해진다던가, 아이가 짜증 나게 하면 매를 든다던가, 돈의 문제에만 들어가면 변해버리는 사람들을 그동안 우리는 많이 봐왔다.
우천염전 이 여행 에세이도 다른 여행 에세이에서 쪼개졌다. 먼 북소리와도 다르고, 하루키의 여행법이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도 다르다. 이 책 속에는 하루키와 하루키를 따라나선 사진가와 함께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풍경은 하루키 만의 유쾌함과 아름다운 직유가 가득하다.
아토스에 있는 수도원의 섬으로 가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그 섬에는 여자는 없다. 오로지 남자 수행자들과 순례를 하는 남자 여행객들 뿐이다. 심지어 고기도 먹지 않는데 살이 통통하게 찐 고양이들 전부도 수놈이 아닌가 할 정도다.
비가 내려 혹독하게 젖을 대로 젖은 몸을 이끌고 행군을 계속한다. 그러다 보면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대접받는 ‘우조’라는 것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나도 한 번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밀려든다. 하루키는 그곳에서 깊고 넓은 바다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바다’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미의 핵심으로 돌진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우천염전,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을 읽는 착각이 든다. 군데군데 소설적 암시적인 문장이 가득하다. 저 정도로 바다를 느끼려면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바닷가에 살고 있고 매일 바다를 보지만 바다에 대해서 이토록 깊게 바다를 대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고생을(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톱이 빠질 것 같다고 했다) 하며 걸어서 도착한 또 다른 수도원에서는 다른 수도원처럼 양과 질의 차이만 있을 뿐 또 우조를 내어 준다. 우조는 따뜻하게 위 속으로 들어가고, 하루키와 일행은 ‘그래, 이거야.’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쯤 되면 정말 우조를 마셔보고 싶다.
여하튼 토속주라는 것은 그 지역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맛이 좋아지는 법이다. 그리고 하루키는 그리스를 나와서 터키로 간다. 지금은 터키인들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와있는 터키인들의 대부분의 모습을 하루키는 유쾌하게 말하고 있다.
주문을 받으면 생선의 배를 가른 후 양쪽으로 벌려 구워준다. 생선구이 전문점이기 때문에 생선 요리 외에 다른 메뉴는 없다. 맛있을 것 같아 들어가 봤더니 정말 맛있었다. 뭐랄까. 쓸데없는 맛을 가미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다. 토마토 샐러드와 빵을 함께 먹었다. 가장 비싼 다랑어 맛과 비슷한 생선을 주문했더니 살이 튼실하고 길이가 30센티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생선이 한 사람 앞에 한 마리씩 나와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다. 반 이상을 남겼다. 마실 것을 시키고도 둘이 합해 800엔 정도였다. 터키에서 이 정도면 매우 비싼 가격이다. 유럽은 어디를 가나 그렇지만 아무리 해안 근처 마을이라도 생선 요리는 고기 요리에 비해 좀 더 비싸다. 잘 보면 주변에 앉아 있는 서민 아저씨들은(물론 이런 곳의 손님은 모두 남자들뿐이다. 종업원도 남자) 모두 150엔 정도의 전갱이 비슷한 것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맛있어 보였다.
사진과 함께 하는 여행 집이라 위에 말한 저 재미있는 내용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겨있다. 하루키의 쪼개기로 다가갔던 우천염전을 다시 꺼내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