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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55

6장 2일째 저녁

155.

 어느 날 마동은 숯불을 바라보는 것에 빠져버려서 다른 숯불의 관리를 놓쳐버렸다. 그 순간 숯불은 아우성을 일으키고 탄성과 절규를 부르짖으며 꺼져갔다. 숯불의 전도열을 이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 올 스톱이 되었고 예약된 손님들은 레스토랑 측에 불만을 토로했다. 마동은 사장과 매니저에게 각각 불려 가서 질책을 들어야 했고 불을 관리하는 사람이 새로 들어오는 대로 마동은 레스토랑에서 퇴출이었다. 프로들이 밀집한 레스토랑에서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해주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오는 길에 좋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바에서 땅콩에 맥주를 들이켰다. 마동은 이름도 모르는 꽤 비싼 맥주를 4잔이나 마셨다. 가격이 비싼 맥주를 많이 마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주는 싫었다. 라면과 가락국수를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와 함께 마시기는 싫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 패배자의 모습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이 들 때마다 헤밍웨이의 말이 떠올랐다.


 맥주를 마시는 바는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실내가 환하게 보였다. 밖에서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마동을 알아보고 들어와서 마동 옆에 앉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였다. 두 사람은 같이 맥주를 마시고 또 마셨다. 땅콩의 껍질까지 씹어 먹었는데도 땅콩의 껍질은 테이블에 쌓여갔다. 계속 맥주를 마셨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른다. 둘 다 술을 많이 마시고 두 사람은 그녀의 집에서 같이 잠을 잤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살림을 합치니 생활비가 반으로 줄었다. 두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그것이 가장 기뻤다.


 찌는 듯 무더운 방에서 에어컨이 없어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살갗을 비볐다. 몸을 타고 흐르는 끈적끈적한 것이 땀인지 다른 분비물인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꽤나 부드러웠다. 살갗의 냄새를 맡았고 피부의 감촉을 파악했다. 추운 날씨에는 헤어드라이기를 켜가며 서로의 체온을 녹였다. 무엇을 해도 괜찮았다. 그런 시기였다. 어쩌다가 우리들의 아르바이트가 없는 시간에는 그녀가 마동을 이끌고 학교에 있는 그녀가 연습하는 피아노 연습실에서 그녀는 마동에게 피아노곡을 들려주었다. 그 마저도 연습실이 비어 있어야 가능했다. 마동은 옆에서 가만히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들었다.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고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두 사람은 불판 위의 버터처럼 녹아들었다. 돈이 없어서 굉장한 행복함은 느끼지 못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불안했던 마음들이 풍요로웠다. 마동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를 만나는 것에 삐딱한 시선도, 나이가 어린 마동을 만나는 것에 대한 그녀 주위의 반응도 두 사람에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래 봐야 고작 세 살 터울이었다. 마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녀를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그녀도 마동을 무엇보다 사랑해 주었다. 그들은 소박했고 나름대로 행복했다. 마동은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고 그녀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진심’을 다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최선을 다하는 것과 진심을 하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며 진심의 경계는 어디까지 인지 마동은 알지 못했다. 진실된 것과 정직한 것에서 오는 차이를 말하라고 하는 것처럼 모호했다. 가위를 파는 사람들은 가위의 용도를 정직하게 알고 있지만 가위를 구입한 소비자는 가위를 자르는 것에만 쓰지는 않았다. 진실과 정직의 애매한 경계를 사람들은 어쩌면 알지 못한다.  


 지금은 그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혀.


 마동은 그립다는 감정을 그녀를 떠올리며 느껴 본 적이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면접을 거쳐 훈련과 난관을 헤쳐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에만 정신을 쏟았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가끔씩 가는 바에서 젊은 바텐더 아가씨와 잠을 잤다. 그 바텐더 아가씨는 마동과 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느낌과 그녀의 어법으로 알 수 있었다. 마동의 페니스는 이스터 석상과 닮았다고 했다. 그래, 맞다. 스쳐 가듯 지나간 그 바텐더 아가씨의 입을 통해서 이스터 석상이라는 말을 한 번 들었다. 그녀는 얼굴은 통통했지만 허리는 잘록했고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입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력이 묘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난처하다. 바텐더 아가씨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잠자리에서는 고집스럽고 어린아이 같다고만 했다.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남자 친구는 칭얼대기만 한다고 침대 위에서 마동의 가슴에 볼을 대고 말을 하곤 했다.


 남자들은 침대에서 여자들에게 대체로 배려가 없는 모양이었다. 배려가 없는 남자는 여자에게 불만을 자아내게 한다. 마동의 가슴 밑바닥에 메마르게 웅크리고 있던 작은 그리움은 아마도 마동이 잃어버린 기억에서 파생되어 오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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