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빅토리녹스 잭나이프다. 가방에 넣고 다닌 지 15년이 넘었다. 들고 다니면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차키를 꽂은 채로 문을 잠그고 나와서 차문을 딸 때도 쓰이고, 특히 새벽에 불한당을 만났을 때 잭 나이프를 꺼내서 쓱 보여주는 것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저 과일이나 깎아먹고 또 과일이나 잘라먹는다. 이 잭나이프를 보면 자동적으로 맥가이버가 떠오르고, 당연한 것처럼 맥가이버 음악이 떠오르고, 배한성의 목소리도 떠오른다. 맥가이버 음악은 본격적인 음악이 나오기 직전까지가 정말 좋다, 일단 한 번 볼까.
맥가이버가 산길을 뛰어다니며 솔방울을 주워 드럼통에 넣고 적들을 피해 몸을 숨긴다. “물기에 젖지 않은 솔방울은 불에 탔을 때 튀어 오르는 성질이 있지.”라며 맥가이버는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드럼통에서 마찰을 일으켜 불을 붙인다.
그리고 솔방울들이 타면서 총 쏘는 소리를 낸다. 적들이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우왕좌왕할 때 맥가이버는 그곳을 빠져나온다. 맥가이버는 물리학 박사다. 피닉스 제단 소속의 첩보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첩보활동을 하는데 물리학의 지식이 매 번 빛을 발한다.
주머니에서 언제나 잭나이프가 나와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피닉스 재단 자체가 물리학도 출신의 나이 많은 높은 권력자들이 만든 단체이다. 맥가이버는 첩보활동 이외에 생화학무기를 연구하는 곳에서 홀로 탈출하기도 한다. 물론 그때도 그를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은 빅토리녹스의 잭나이프다.
맥가이버는 007과 닮은 구석이 많지만, 007이 즉흥적이고 좀 더 로맨티시스트에 가깝다면 맥가이버는 역시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물론 여성에게 접근할 때도 은근 과학적이다. 사람들은 빅토리녹스의 잭나이프를 가장 많이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빅토리녹스의 손톱깎이다.
일단 비싸지 않다. 무광에 아주 견고하게 생겼는데 예쁘기까지 하다. 이렇게 탁 펼치면 이런 모양이 된다. 이 빅토리 녹스 손톱깎이는 선물로 주기에도 좋다. 받는 사람도 뜻밖의 선물이라 기분이 좋다. 나는 항시 세네 개씩 사놓고 갑작스레 뭔가를 줘야 할 일이 생기면 빅토리녹스 손톱깎이를 선물로 준다.
손톱깎이 중에 이렇게 견고하고 럭셔리하기까지 보이는 물품은 빅토리녹스만 한 게 없다. 여자 친구나 아내에게 이벤트로 뜬금없이 선물을 할 때, 빅토리녹스 손톱깎이를 작은 편지와 함께 핸드백에 살며시 넣어두면 그날 하루는 맛있는 바다거북 수프와 송로버섯이 들어간 기린 스네이크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빅토리녹스 손톱깎이는 프래그머티즘적 물품 중에 단연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