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당일
160.
그녀의 축축한 세계에 마동이 들어간 후로 그녀의 빗소리 같은 신음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동은 숨이 찼다. 그런 마동에 비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신음을 뱉어낼 뿐이었다. 뱉어낸 신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혼란도 분명히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그녀도 마동을 만나서 낯선 곳에서 교접을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동을 선택했다. 그 생각이 드니 마동은 안심이 되었다. 또 다른 감정을 느끼면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보송한 이불처럼 그녀의 피부는 부드러웠다. 비에 젖지도 않았고 땀도 흘리지 않았다. 땀에 절어 끈적끈적하고 비에 젖어 축축한 마동의 몸과는 비교가 되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면도날이 되어 밤공기를 가르고 대기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마동은 그녀를 안고 있는 상태로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마동이 전혀 생각지 못한 세계가 있었다. 사람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이토록 신비스러운 일인가 할 정도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속에는 마동이 알지 못하는 모습이 스며들어 있었다. 몇십 배 확대되는 마이크로 렌즈를 장착한 고화질 카메라로 담은 수십만 개 파리 눈알의 아름다운 색채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속에는 여러 가지 색과 빛의 조합이 보였다. 언뜻 알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스치기도 했다. 마동은 그 얼굴이 잠깐 보인 것에 몸을 떨었다.
그녀가 왜 갑자기 떠오른 것일까.
동시에 어둠도 보였다. 깊고 단단하고 축축한 어둠이다. 어둠은 한 번 빨려 들어가면 바로 앞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어둠이었다. 어떤 이물질도 가미되어 있지 않는 진정으로 순수한 어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는 희미한 녹색을 지니기도 했다가 옅은 회색의 빛을 발하기도 했고 갈색을 띠기도 했다. 색은 어딘가에 존속된 색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마동은 미스터리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그 속으로, 그 안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몸으로 이동해온 흥분이 나른함으로 옮겨가려 했다. 몸의 질량이 사라져 공중으로 부유하여 둥둥 따라다니다가 바람에 날려 가버릴 것 같았다.
현기증이 심하게 났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여러 차례 허공을 갈랐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마동의 몸을 이미 다 적셨다. 머리가 비에 젖어 얼굴에 전부 들러붙어서 볼품없었다. 비는 벤치를 적시고 대나무를 적시고 가로등을 적셨다. 조깅코스의 모든 것을 비는 다 적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옷과 몸은 전혀 비에 젖지 않았다. 그녀에게 비는 주어진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떠한 과학적 견해와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마동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느꼈다.
조깅을 하다가 지금 만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와 교접을 한다는 자체가 논리나 명제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축축한 눈 속에 마동은 빠져들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깊이를 알아내려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깊숙이 점점 들어갔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리고 마동의 몸을 끌어당겼다. 마동은 몸에 안긴 채 허리를 계속 흔들며 신음소리를 대기에 보냈다. 그녀의 축축한 양손은 마동의 딱딱하게 굳은 몸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마동은 오래된 곳에 묵혀두었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아 하아.
“사라, 당신은 누구입니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두 손으로 마동의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은 너무나 부드러웠고 두 달 된 고양이의 털처럼 보드라웠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다정하지 않았고 타협을 배제한 냉기가 손바닥에 감돌고 있었다.
“난 어떤 누구도 아니에요. 동시에 그 누구도 될 수 있어요. 당신일 수도 있고 나 일수도 있어요.”
섹스를 하면서 달콤한 속삭임을 떠난 대화를 한다는 것이 낯선 곳에서 이른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그 시점에 보이는 세상처럼 무엇인가 명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