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28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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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전 감기몸살이 맞나요? 도대체 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마동은 의자에 파묻힌 상체를 의사 쪽으로 바짝 다가간 후 대답을 기다렸다.


“검사결과는 내일은 돼야 알 수 있습니다. 마동 씨는 지금 만약 밖에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다닌다면 시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내일 결과가 나오니 내일 이야기하죠.” 의사는 등을 의자에 밀착시켰다. 의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젖혀졌다. 의사의 얼굴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미소를 갖고 있었으며 잘 유지했다.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더러 있어요. 그만큼 신경 쓸 일이 없어진다는 말이죠. 알려고 하면 말려들고 집요해지고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것대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마동은 이 의사가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분홍간호사 역시. 분홍간호사는 왜 옷을 벗었을까. 내가 단순히 그녀의 옷 벗는 모습을 상상한 것일까.


고등학생 때, 그때 이후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동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기에서 사라져 저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소멸에 가까운 사라짐을 말한다. ‘나’라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부조리’ 같았기 때문이다.


“고마동 씨, 이제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죠?” 의사는 물었고 마동은 그렇다고 했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의사의 의식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문득 의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의사는 마동이 자신의 의식을 읽으려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동은 더 이상 의사나 분홍간호사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느꼈다.


“병원에는 조용하고 아주 부드러운 빛이 흐르는 방이 있어요. 수면실입니다. 불면증으로 호소하는 환자들이 가끔씩 잠을 청하고 가곤 합니다. 지금 고마동 씨는 몹시 피곤한 몸 상태입니다. 신체는 리듬을 타야 하고 리듬 속에는 휴식이 있어요. 당신의 마음과 몸은 휴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수면실에서 한두 시간쯤 더 잠을 푹 자두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어차피 오늘 밤에는 불면으로 잠을 청하지 못할 겁니다. 검사실에서 한 시간 정도 주무셨으니 수면실에서 두 시간 정도 더 잠을 청하고 가세요. 수면실에 가서 누우면 아마 잠이 잘 오실 겁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동에게는 잠이 필요했다.


잠, 그것뿐.


지금은 단지 잠이 필요했다. 마동은 잠이 절실했다. 잠이 필요한 밤에는 잠이 달아나 조깅을 몇 시간씩 하고 밤새도록 꿈의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거의 먹지도 못했다. 의사는 분홍간호사를 부르고 마동을 수면실로 안내하게 했다.


병원비는 얼마나 나오는 것일까. 이 병원 안에 수면실이라는 방이 있기나 했을까.


하지만 이미 병원의 놀라움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마동은 검사실을 따라갈 때처럼 분홍간호사의 뒷모습을 보며 수면실로 따라갔다. 조금 전의 그 복도를 걸었다. 역시 꽤 긴 복도였다. 대기실에서는 이 복도가 완벽하게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이 복도는 대기실에서 전혀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역시 그만두었다. 생각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병원 안에서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을 해봐야 풀지 못하는 수학문제처럼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분홍간호사가 걸어가는 보폭을 줄이고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마동은 분홍간호사의 등에 부딪혔다. 푹신했다. 부드러웠다. 낯설지 않은 향이 마동에게 전해져 왔다. 꽤 한 동안 맡았을 법 한 체취였다. 마동은 분홍간호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분홍간호사는 변하지 않는 분홍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검사실의 근처에서 또 다른 문을 분홍간호사는 열었다. 기하학문형의 벽지가 붙어있는 방이 있고 내부는 마치 캡슐처럼 보였다. 누에고치의 몸속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병원에 이런 방을 만들어도 괜찮은 겁니까?”


그러자 분홍간호사는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거죠?라는 눈빛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실로 다양한 바이러스와 병에 시달리고 또 그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불면이 가져오는 생활의 불편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병원들은 그간에 다양한 노력으로 불면을 치료하려고 했습니다. 각 가정으로 돌아가고 나면 환자들은 불면을 지니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불면을 맞이하는 것이죠. 그것에서 오는 괴리가 큽니다. 제일 편안하게 쉬어야 할 곳에서 잠들지 못한다면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집안 구석구석 붙어있던 불면의 덩어리가 천장을 타고 벽면을 기어 내려와서 환자의 몸을 덮치는 것이죠.”


틈을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을 겪으면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이나 책을 읽으면 된다지만 불면은 그 일련의 행동을 싫어합니다. 그것도 무척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불면이 오면 잠의 세계로 가지 못하고 현실의 세계에서도 불면에 지배당해 어떤 활동도 못하게 되죠. 그러면 사람들은 불면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커져서 괴로워합니다.”


흠.


분홍간호사는 내가 의사에게 하는 말을 문 밖에서 전부 들었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분홍간호사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면이라는 새로운 질환은 나름의 진화를 계속해왔습니다. 불면은 환자들의 뇌가 불면에 귀속되는 순간을 노려 불면증을 점점 증식시킵니다. 도리가 없어요. 불면증을 호소하는 많은 분들이, 언제나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집과는 다른 곳이지만 이곳에서 편안함의 세계로 들어가게 도와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불면에 시달리는 분들이 잠을 편안하게 푹 잠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이라는 건 오래 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질 좋은 잠을 자는 게 중요합니다. 깊게 잠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이보다는 깊이입니다. 주위가 어두워야 해요. 자, 이리로 들어오시죠. 고마동 씨.”


방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이 낮았다. 어니 낮아졌다고 해야 하는 표현이 맞다. 마동의 키 정도로 천장이 낮아져서 마동은 약간 허리를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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