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친구의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셨을 때 별밤과 통화가 되었는데 그게 끊어져서 너무 아까웠지만 할 수 없었다. 부모님들은 라디오에 전화를 걸어 신청곡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지 못한다. 친구의 어머니는 나에게 친구와 자고 가라고 했지만, 목소리에서 너무 표가 났다. 친구는 나를 붙잡고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불길함을 감지했다.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잠일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려면 방에서 잠든 친구의 부모님을 넘어서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가 문을 다시 열고, 다시 현관문을 열고 2층으로 나가서 다시 닫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부모님을 안 깨우고는 화장실, 그 이역만리 떨어진 곳까지 갈 수가 없다. 너무 깊게 잠들면 괜찮지만 방문이나 현관문 여는 소리는 컸다. 집으로 가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을 후회했다. 친구는 이불을 깔고 누워서 자자고 했다. 메리크리스마스이브였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라디오를 틀었다. 제일 낮은 소리로 틀었지만 조용히 하고 자라는 친구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디오를 끄니 세상이 고요했다. 친구는 눕자마자 쿨쿨 잠들었다. 친구 부모님도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나만 말똥말똥했다. 몸을 뒤척이니 이불 소리가 크게 들렸다. 집이라면 잠이 오지 않을 때 뭐라도 하면 된다.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집에는 좋아하는 가수들의 카세트테이프가 여러 개 있었다. 용돈을 모아 모아 앨범을 구입했다. 티브이를 보거나 잡지나 책을 보거나 동생과 놀거나.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꼼작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천장의 알 수 없는 무늬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천장의 무늬는 마치 살아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겨울이지만 두꺼운 이불과 펄펄 끓는 방바닥 때문에 너무 더웠다. 친구는 옆에서 땀까지 흘리며 자고 있었다. 겨울에 따뜻한 건 좋지만 덥덥하고 더운 건 정말 싫다. 라면을 먹고 난 후 양치질도 못하고 잠드는 건 더 별로다. 아니다, 어렸기에 신경을 안 썼을지도 모른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 이불 밖으로 뺐다. 그럴 때마다 서걱서걱 이불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자꾸 몸을 뒤척여 이불 소리를 내서 친구 어머니가 방을 쾅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드니 점점 무서웠다. 짹깍짹깍 시계 초침이 가는 소리만 몇 백번 들었다. 어딘가 포박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앞으로는 친구 집에서 자는 건 하기 싫었다. 첫 경험이 엉망이었다. 가장 고역은 눕자마자 바로 잠들지 못한다는 거였다. 집에서 잠드는 것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는데 벗어나면 언제나 집이 그리웠다.
그건 가난과 상관없는 것이다. 가난해서 내 방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잠을 자면 바로 잠이 들고 푹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며칠 지나면 흐지부지해진다. 그리고 또 기회가 되면 집을 떠나 어딘가에서 하룻밤 잠드는 것에 대해서 기대를 할 것이다. 왜 다짐은 오래가지 못할까. 그런데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라면을 먹을 때 물을 너무 마셨다. 짭조름한 라면은 먹을 때는 맛있지만 지나고 나면 자꾸 물이 마시고 싶다. 그러면 어김없이 시간이 지나 소변이 마렵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는데 이미 화장실에 가는 걸 잊었다. 춥고, 외투도 입어야 하고. 나중에 가지 뭐, 하는 안일한 생각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
친구 부모님이 딥에 들어오셨을 때 모든 것이 와그작 깨졌다. 소변이 마렵다. 누워있는 것이 힘들다. 다리를 오므렸다. 몸을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서걱거리는 두꺼운 솜이불의 소리가 록 음악처럼 크게 들렸다. 오므린 다리를 풀면 소변이 나올 것만 같았다. 친구를 깨웠다. 나 소변 마려워. 친구는 으으 하고 눈을 떠 나가서 누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너희 부모님을 밟을지도 모르잖아.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재미있어야 할 시간이 점점 공포로 바뀌었다. 곤란하다.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데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누워있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수 없는 이 불편함.
하지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오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방문을 살짝 연다고 열었지만 덜컹 소리가 났다. 친구 부모님이 잠든 방은 아주 어두웠다. 조마조마한 마음과 오줌이 곧 나올 것 같은 초조함이 동시에 들었다. 살금살금 친구 부모님이 잠든 모습을 자세하게 보면서 발을 디뎠다. 부엌으로 나가는 문으로 가려면 친구 부모님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어서 어디를 밟아야 할지 난감했다. 발을 살며시 들어서 디뎠는데 뭔가 밟혔다. 발을 들어야 했지만 오줌이 나올 것 같아서 그대로 밟아 버렸다. 친구 아버지의 다리였다. 아악 하며 친구 아버지가 눈을 떴다.
아, 죄송합니다, 소변이 마려워서.라고 하니 친구 아버지는 거라냐, 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으로 손짓으로 나가보라고 했다. 바지에 쌀 것 같아서 방문을 거칠게 드르륵 열고 부엌으로 나가서 현관문도 쾅 열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 부모님이 다 깨어나셨다. 젠장. 화장실에서 소변이 다 빠져나오자 갑자기 너무 추웠다. 급하게 나오느라 외투를 입지 못했다.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문을 세 번이나 열고 닫아야 친구가 잠든 방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과정에 친구 부모님을 또 깨우게 된다. 깨우지 않고 친구 방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추위가 확 몰려왔다. 어디선가 캐럴이 울려 퍼졌다. 하늘도 밤이라 그런지 캄캄한데 흐렸다. 날이 밝으면 눈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으로 갔다. 집은 십 분 정도 걸린다. 집으로 뛰어갔다. 평소에 다니던 골목길인데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외투가 없어서 몸이 덜덜 떨렸다. 대문이 잠겨 있다. 대문은 밤에만 잠근다. 안에서 열어야만 열린다. 초인종을 눌렀다. 으 춥다. 딩동딩동 몇 번을 눌렀다. 오 분 서 있는데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초인종 소리가 크게 들리진 않아도 엄마는 나올 텐데 엄마도 나오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담을 넘자. 나는 담을 넘기로 했다. 동네에 있는 집들이 대문을 잠그고 잠을 잔다고 해도 담벼락이 그리 높지 않아서 도둑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넘을 수 있다.
그러나 도둑은 이런 가난한 동네에 오지 않는다. 나는 대문 옆 담벼락에 올랐다. 담이 낮다고 해도 어린이에게는 높다. 담을 탈 수 있는 건 옥상을 뛰어다니고 동네에서 낮은 집들의 담벼락을 타고 놀아서 가능했다. 낮에는 그렇게 놀았다. 어른들 역시 그렇게 노는 것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시간에 덜덜 떨리는 몸으로, 꽁꽁 언 손으로 담벼락을 짚고 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을 모으고 입김을 불어넣은 다음 도움닫기를 하여 담벼락에 올랐다.
이제 힘을 주고 넘으면 된다. 그렇게 낑낑 거리며 오른쪽 다리를 담장 위로 올리려는데 어딘가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뭐지? 누구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다리를 잡았다. 이렇게 보니 방법대원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가슴이 방망이 질을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에 투입된 방범대원에게 나는 도둑으로 몰려 붙잡혔다. 여긴 우리 집이에요.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친구 집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다음에 뭐라고 한지도 모르겠다. 계속 눈물이 나왔고 너무 추웠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한 집 두 집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나왔다. 웅성웅성. 어린이 도둑이래. 하지만 나를 보더니 이 집 아들인데. 엄마가 나오고, 그제야 혐의가 풀렸다. 다음 날 동네에 소문이 쫙 났다. 나는 친구 집에서 자다가 새벽에 왜 집으로 왔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