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크리스마스이브가 제일 재미있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요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전혀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크리스마스를 소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 크리스마스가 재미있었다거나 행복했다거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요즘보다 더 나을 거라는 기대가 만들어진 추억을 소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크리스마스이브를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더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친구나 애인과 함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크리스마스를 친구나 애인과 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족과 보낸다.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더라도 크리스마스 하루는 가족과 보내기 위해 다 모인다.
동북아시아에서도 우리나라만 공휴일이다. 일본도, 북한도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즐겁다기보다 힘들어한다. 특히 연인과 보내야 하는 이브에 예약이 쉽지 않고, 예약을 하지 못하면 크리스마스이브가 지옥 같은 날이 되기도 한다. 시내나 백화점, 고급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걸어가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이브는 즐겁다. 크리스마스이브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혼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 대부분은 sns을 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옆에 누가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매년 일어나지 않는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크리스마스이브는 전부 즐거워야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건 대체로 어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후의 크리스마스이브는 내가 바라는 대로 보내기를 원한다. 남녀가 속으로 다 그렇다. 그 속의 계획이 다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없기에 혼자서 보내는 사람들보다 같이 보내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를 기억하는데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행복했었다, 로 끝맺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재미있게 보냈을 때가 언제일까 물어보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환상과 같다. 기억에 백 퍼센트 의존하니까 확대되거나 축소된 경험이 많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즐거워야 하니까 대부분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축소보다는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학교 시절 5학년 때 처음으로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친구의 집에서 하루 잠을 자는 건 그렇게 좋았다. 그 시절에는 친구와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매일 붙어 다니고 같이 놀아도 지칠 줄 모르고 재미있었다. 그 뒤로 가끔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면서 보냈다. 몇 번 자보고 느낀 건, 친구의 집에서 하루 자는 건 좋으면서 별로였다. 밤새 놀 거라는 기대와 함께 불편했다. 당시 우리 모두는 가난했다. 친구도 같은 동네에 살았다. 화장실이 전부 마당에 있었다.
가끔 서울 사는 이모 댁에 가면 신기했다. 고급아파트였다. 화장실이 당연하지만 집 안에 있었다. 겨울에 추울 걱정이 없었다. 마당에 화장실이 있으면 겨울에 낭패다. 외투를 입고 볼일을 보러 가야 한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좌식이 아닌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 받아들이고 지냈다. 친구는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다세대주택은 1,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한 층에 다섯 가구가 산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마당에 있고 계단을 오르면 2층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두 군데가 붙어 있다. 친구의 집 구조는 이상했다. 방 두 칸에 부엌이 있는 구조다. 거실이라든가 현관이 따로 없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 앞에서부터 집들이 죽 붙어 있다. 친구의 집은 마지막 집인데 현관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나오고 부엌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간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서면 다른 방어 있는데 그 방이 친구의 방이다. 친구는 친형과 함께 그 방을 사용했다. 그래서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보낼 때는 친구의 집에 부모님과 형이 없었을 때만 가능했다. 친구의 부모님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왕왕 집을 비웠다. 친구의 형도 그럴 때마다 어딘가에 가서 친구와 밤을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의 집이 비게 되었다. 그래서 과자도 사고 라면도 끓여 먹으면서 보낼 계획이었다.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우리는 삼총사로 늘 붙어 다녔는데 같이 밤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은 [별밤]에 전화를 걸어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듣는 것이다. 사연을 별밤을 통해 세상에 뿌리고 싶었다. 당시 별밤은 지역방송이었다. 주말에는 서울에서 하는 별밤이 전곡을 탔을지 모르겠지만 평일에는 지방방송이었다. 만약 서울 별밤이라면 전화통화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별밤은 가능했다. 우리는 이전에도 엽서로 사연을 보내거나 전화를 몇 번 걸었던 경험이 있었다. 물론 신청곡이 방송을 타지는 않았다. 또 다른 친구와 나는 국민학생이었지만 팝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고 해서 팝을 신청하기로 했다. 티브이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잔뜩 나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별밤이 시작하기 전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친구가 라면을 끓이면 아주 맛있다. 꼬들꼬들하면서 짭조름하게 끓이는 재주가 있다. 그렇게 10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명이 모여 신청곡을 고르는 재미에 빠져 있는 나이였다. 좀 더 나이가 있었다면 이런 재미는 느끼지 못하고 술과 다른 재미를 찾았을 것이다. 9시부터 전화를 걸었다. 크리스마스이브라 경쟁이 치열했다. 요즘으로 치면 눈이 오면 모텔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계속 신호음만 갔다. 전화기에 세 명의 머리가 달라붙었다. 그때 [여보세요] 하며 작가와 통화가 되었다. 우리는 정말 기뻤다. 그 순간, 하필 친구의 부모님이 집으로 오신 것이다. 친구는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우리는 마땅히 집으로 와야 했지만 늦은 시간이었고(사실 이 부분은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십 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같이 갔던 친구는 재빠르게 집으로 갔다. 나는 집으로 갈 타이밍을 놓쳤다. 친구가 자꾸 자고 가라고 하고, 돌아오신 친구 부모님도 이왕 온 거 자고 가라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들과 좀 달랐다. 쉽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기가 꺼려지는 스타일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밖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술집을 하기도 했고, 식당을 하기도 했는데 식당은 밥보다는 주로 술을 같이 마실 수 있는 안주를 전문으로 했다. 그 식당은 막노동을 하는 아저씨들이 주로 단골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 친구 어머니는 친구의 형은 자주 불러 맛있는 음식을 해 먹였지만 친구는 형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친구 어머니는 형제 중 형에게는 투자를 아낌없이 했지만 친구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들의 친구들 역시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다른 집 어머니들처럼 살갑게 다가오거나 우리가 다가갈 수 없었다.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는 무척 젊어 보였지만 친구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보지는 않았다. 친구와 형은 같은 방을 사용하기에 마찰도 심했다. 주로 형에게 친구는 많이 맞았다. 한 번은 동네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구 얻어터졌다. 나의 아버지가 퇴근하고 오다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렸을 정도였다. 얼굴이 터져 피가 나고 엉망진창인데도 하루만 지나면 친구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형만 좋아하는 어머니의 편애도 친구는 그러려니 했다. 그 정도면 친구가 가출을 하고도 남을 법한데 그냥저냥 넘어가는 스타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