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32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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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부스럭.


마동은 팔을 뻗어 나뭇가지를 살짝 걷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에는 큰 생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동은 나뭇가지를 헤쳐서 움직이는 생물체를 쳐다보았다. 마동은 놀란 눈이 되었다. 그것은 아주 큰 야생 고양이었다. 비록 나이가 어린 마동이었지만 야생동물은 강도처럼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고양이는 마동의 다리만큼 큰 고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와는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부스럭 거리며 움직이는 동물은 너구리였다. 그렇지만 지금 보고 있는 너구리는 선생님이 설명해 준 너구리보다 더 큰 덩치였다. 몸의 빛깔은 대체로 옅은 갈색에 등 부분의 가운데에는 검은색의 어두운 띠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구리의 앞다리로 지나가는 띠가 잘 만들어진 문형에 가까웠다. 마치 무명화가가 솜씨 좋게 띠 모양으로 그려 놓은 듯했다.


털은 짧았다. 짧은 털은 빳빳하게 보였다. 실은 무척 부드러운지도 모른다. 너구리는 야행성이다. 하지만 천적이 많아져 버린 탓에 너구리들이 낮에도 숲 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닌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이 했다. 너구리는 육식동물에 가까운 잡식동물이다. 마동이 지금 보고 있는 너구리는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동의 눈에 비치는 너구리는 땅을 꾸준하게 팠고 주위의 나뭇가지를 치우기도 했다. 뭐랄까 그저 땅을 파보기도 했고 숲 속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이동시켰다. 마동의 눈에는 먹이를 찾는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보였다.


눈 밑에 반점이 있는 걸로 보아 너구리가 확실해 보였지만 어딘지 너구리라고 부르기에는 부조화스러운 면이 많았다. 너구리는 너구리였지만 너구리가 아니었다. 다만 너구리를 닮은 비슷한 동물이었다. 너구리는 아주 멋진 꼬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저 녀석은 꼬리가 없었다. 꼬리가 잘렸다든가 짧은 꼬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꼬리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인간의 엉덩이처럼 꼬리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너구리처럼 보이는 저 동물의 엉덩이에 말이다.


마동은 선생님에게 전해 들은 너구리에 대한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에 겁이 덜컥 나버렸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의 나뭇가지를 밟았다.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너구리가 고개를 들어서 마동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구리의 눈은 동물의 눈이 아니었다. 동물의 눈에는 흰 자위가 없다. 저 너구리의 눈은 인간의 눈처럼 흰 자위가 있고 그 속의 눈동자를 움직였다. 적의가 가득 들어차있는 매서운 눈빛이었다. 너구리를 닮은 저 녀석의 눈빛에는 인간을 보고 불안함이라든가 놀람이 아닌 적의만이 가득했다. 마치 살인 현장을 들켜버린 살인자의 눈빛 그것이었다.


마동과 너구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구리는 마동을 노려보고 마동은 놀라는 눈으로 너구리를 쳐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너구리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누렇고 냄새나는 지옥의 칼 같은 너구리의 이빨이 드러났다. 숨을 죽이고 적의에 가득한 너구리의 눈빛을 받은 마동은 그만 다리에 남아있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다리가 구부러지며 밑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인간의 다리가 풀어지는 방식에는 라면을 끓여 먹는 방법만큼 많은 방식이 있지 않다. 그 몇 가지도 되지 않는 방식 중에 제일 나약한 방법으로 마동의 다리는 풀어졌다. 그 순간 너구리가 쉐엑 하는 소리를 뿜었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괴성은 고요한 물에 파문이 퍼지듯 순식간에 숲의 풀잎사귀를 흔들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큰소리로 불렀다.


“얘들아, 얘들아!”


마동은 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냈다. 목구멍은 작은데 소리를 너무 질러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마동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눈이 아프고 목이 칼칼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친구들을 부르고 또 불렀다. 날카로운 종이가 목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심하게 소리를 질러 보기는 처음이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았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이 위험한 너구리의 존재를 알려야 했고 마을의 어른들에게도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구리에게 마동은 잡혀 먹힐 것만 같았다. 마동은 너구리가 쉐엑 하는 변질된 포식의 신음을 토해내자마자 일어나서 아이들 쪽으로 달렸다. 소변을 보러 이렇게 숲 속 깊게 들어왔는지 몰랐다.


마동은 풀숲을 헤치며 달리고 또 달렸다. 많이 달렸지만 기찻길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아이들이 누워 자고 있는 철길 위로 달려가기 위해 숲을 헤치느라 평화롭게만 보이는 풀잎에 베이기도 했다. 그런 것쯤은 지금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동은 사력을 다해서 달렸다. 칼날 같은 풀잎은 마동의 얼굴을 스치기도 했고 팔뚝을 스치기도 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팔에 피가 배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였다. 너구리를 닮은 녀석이 마동의 뒤를 쉐엑 거리며 포식자의 본능으로 쫓아왔다. 어린 마동의 눈에 들어오는 푸른 숲의 풍경이 퇴색되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던 풀과 나무의 모습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퇴색되어 버린 숲의 모습은 너무 기이하여 표현이 되지 않았다.


마동은 달리는 것은 자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달리면서 할 수 있는 놀이 말고 딱히 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동과 친구들은 서로 경쟁하며 달리는 놀이를 즐겼다. 풀이 얼굴 앞으로 다가오면 마동은 손바닥을 펼쳐서 얼굴을 가리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쉐엑 쉐엑 하는 소리가 더러운 화장실의 물청소하는 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마동은 달렸다. 달리는 것 이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뒤돌아서서 너구리와 맞붙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횃불을 들고 숲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녀서 너구리를 생포해서 통나무에 매달아 마을로 들고 온다. 동네 어른들은 신명 나게 춤을 춘다. 너구리를 포획한 것에 대해서 모두들 기뻐한다. 그런데 매달린 너구리는 조소를 띠며 어린 마동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도 이리저리 굴려가며.


마동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풀숲을 헤쳤다.


저 앞에 철길이 보인다.


기찻길이 있는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쉐엑쉐엑.


마동은 뒤로 돌아볼 틈도 없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들을 깨워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너구리를 닮은 저놈이 나 이외에 친구들을 본다면 놀라서 풀숲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가 우세하니까 우리 모두 너구리를 상대한다면 그 녀석도 도망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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