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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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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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일을 마치고 가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 들고 온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글을 적는 시간이 무척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였다. 카페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으로 카페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약간 벗어난 도로가에 있었다. 비교적 카페가 있기에는 어색한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접근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무엇보다 커피 맛에 우리는 매료되었다. 그 카페를 가기 전에는 강 건너편에 있는 중심가에 있는 카페를 애용했다. 일을 마치면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다. 강 건너 강북에는 소문난 음식점이 가득했다. 그 사이사이에 카페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소문난 식당에는 가지 않고 그 옆집으로 들어갔다. 소문난 집 옆에 있는 식당도 맛있다. 밥을 먹고 유자 케이크가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유자 케이크는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을 때 커피와 함께 식사 겸 먹었다. 카페는 아늑하고 분위기가 차분한 카페였다. 벽면에는 큰 그림이 있어서 그 그림을 보는 게 언젠가부터 낯설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그림에 이야기를 붙이기도 했다. 그림은 여자가 책을 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녀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책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녀는 조금만 슬퍼도, 조금만 화가 나도, 조금만 기뻐도, 비 맞은 강아지를 봐도 눈물을 흘립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여러 가지입니다. 책 속의 낯선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낯선 만남 속에서 낯선 모습의 자신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녀는 눈물을 흘립니다. 언젠가 그녀의 눈물을 맛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나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눈을 살며시 감았습니다. 이내 까무룩 잠이 들어버리는 듯했습니다. 그녀의 머릿결은 어설프고 희미하게 들어오는 차창 밖의 달빛에도 윤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연심 품으로 파고들며 언제나 이렇게 있고 싶어요. 당신에게선 당신만의 향이 나요, 당신만의.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그날은 희미한 달빛이 이상하게도 차창을 통해 고집스럽게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안았습니다. 깨지면 안 되는 도자기를 건드리듯 말이죠. 예민한 그녀인데 나의 손가락 끝이 등에 닿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리곤 그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불편하게 앉아서 불편한 자세로 불편한 꿈을 꾸고 있는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맛보았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달았습니다. 단맛이라는 건 설탕이나 과즙 따위의 단 맛이 아니었습니다. 잠든 그녀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진정으로 흘리는 눈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분명 단맛이었습니다. 눈물을 맛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살며시 미소가 일었습니다. 그녀도 잠에 취해 있지만 그리 싫은 기색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그럴 때 간지러운 거 알아요? 그 간지러움이 기분을 즐겁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녀의 볼은 어느새 발그레해집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 카페는 아늑한 분위기라 한 번 앉으면 일어나기 싫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밖으로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그 바람이 카페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난방의 제약도 없어서 패딩을 벗고 반팔만 입고 있어도 전혀 춥지 않았다. 유자청이 올라간 조각 케이크는 언뜻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했다. 다른 케이크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조금 딱딱했지만 그게 마치 빵으로 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았다. 그 단단하지만 맛있는 조각 케이크 때문에 그 카페에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새로운 카페를 알게 되었다. 커피 맛이 우리에게 잘 맞았다. 커피는 머그컵에 담겨 나왔다. 보통은 받침대가 있는 커피 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걸 선호했지만 머그컵이라도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 머그컵이라도 커피가 맛있어서 일을 마치면 우리는 마법에 홀린 것처럼 그 카페로 들어갔다. 고되게 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그 카페의 구석 자리에 앉아서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 들어가면 한 시간 반 정도는 있었다. 더 오래 있지는 않았다. 구석진 자리는 우리의 자리가 되었다. 바 형태로 벽면에 바 테이블이 있고 의자가 나란히 두 개가 있는데 그곳에는 누구도 앉지 않았다. 카페에 가면 그 구석진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어느 날 카페에 가니 우리가 앉는 자리의 옆 벽면에 책장이 들어섰고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주인은 우리를 보며 책장을 넣기로 했다고 말해주었다. 책장도 책도, 카페의 따뜻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카페는 짙은 브라운 계통의 컬러가 가득했고 겨울이라 따뜻하게 느껴지는 색감이었다.


원래는 미싱 기구를 판매하던 곳이었는데 기분 좋은 카페로 바뀌었다. 1년을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다. 어느 날 카페의 로고가 박힌 머그컵을 선물로 받았다. 우리 때문에 카페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구석에 둔 책장 덕분에 오전부터 와서 책을 좀 보며 커피를 마시고 가는 손님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를 읽고 있었다. 카페에는 주인 말고 직원이 있었다. 직원이 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더 로드]는 영화로도 나왔다. 비고 모탠슨과 코디 스밋 맥피가 아버지와 아들로 나온다. [더 로드] 속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휑하고 삭막하고 바람만 있는 곳에서 살아간다. 그 세계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식량고갈로 인육을 먹는 사람을 피해 다니는 것과 신발을 구해야 하는 것. 무엇보다 먹을 걸 구해야 하는 일이다. 식량이 소멸해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는 건 본능의 최우선 감각을 심각하게 건드리는 일이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커트 같은 것을 몰고 오로지 식량을 찾아서 어디든 헤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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