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슈
독서챌린지에 참여했더니 브런치에서 이렇게 책과 굿즈를 보내주었다. 올 택배가 없는데 택배가 와서 놀랐다가 열어보니 반가운 선물이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새 책을 처음 여는 순간의 기분을 안다. 새 책을 열어서 읽을 때마다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자신만의 책이 된다는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출판업은 예나 지금이나 늘 어렵다고 한다.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독립출판사가 많아진 지금 그들의 돌파구가 어렵다. 해결방안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여의치 않다.
도서관에서 책은 빌려 읽으면 된다. 친한 친구 네 명이 한 권을 구입해서 돌려가며 읽어도 된다. 학창 시절에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우리는 돌려가면서 읽었다. 그 재미가 있다. 책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금기시되는 책을 읽는 흥분과 기쁨을 알고 있었다. 그건 짜릿한 경험이었다.
다 읽은 아이들은 꼭 안 그래도 되는데 아주머니들처럼 조용히 수군거리며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게 어쩌면 최초의 독서토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성취감이 있다. 그때 한 녀석이 사라가 강의실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담배까지 피우는 모습에 줄을 그어서 우리에게 욕을 들어 먹었다. 야, 이 자식아 돌려 읽는 책은 좀 깨끗하게 보자. 물론 욕설이 중간중간에 들어갔지만 여기서는 빼도록 하자.
요 며칠 유명 연예인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줄을 그어 가며 읽는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도마 위에 올랐다. 도대체 왜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멋대로 줄을 죽죽 그어가며 책을 읽고 그걸 자랑처럼 인터넷상에 올렸나. 사과 입장문이 바로 올라왔지만 이미 2023년에 같은 실수를 했었다. 여기서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유명하고 지금도 최고의 약품 광고 모델로 기용될 정도로 돈이 많은데 왜 책은 구입해서 읽지 않는가? 책 한두 권 정도는 구입해서 마음껏 줄을 그어가며 읽어서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 훨씬 나을 텐데. 사과문의 마지막 문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렇게 요란을 떨어서 자신을 알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일명 노이즈 마케팅. 노이즈 마케팅은 과정이 더럽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시간이 지나 그때 내가 너무 잘못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마음이 연약해서 받아준다. 그렇게 노이즈 마케팅으로 갑부에 셀럽을 유지하는 대표모델이 킴 카다시안 가족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딸들의 치부를 전부 드러내면서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다. 이런 사람들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머리가 너무 잘 돌아간다. 엘리자베스 헐리 또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자신을 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
본업이 연기자였던 이번 사태의 당사자는 유명하지만 더 이상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남편과 함께 한국을 주름잡았지만 이제 지는 노을처럼 희미하게 빛날 뿐이다. 아무리 일거리가 없다고 하나 책을 구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평소에도 독서를 많이 하는데 습관이 줄을 그으며 읽는다고 하였다. 김지호도 도서관 측에 새 책을 구입하여 반납한다고 했다. 이 일은 이제 곧 잊힐 것이다.
다른 연예인들도 자잘한 문제로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고소영은 자신의 건물 자랑으로 질타를 받았다. 다른 연예인도 비슷한 이유로 욕을 들었다. 그런 연예인에 비해 이번 일이 더 비난받고 있다. 몇 백억 하는 건물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지만 도서관의 책 정도는 우리의 손이 닿는 것이다. 거기에 더 분노하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늘 가던 동네 서점이 있었다. 동네 서점이라고 하지만 2층까지 있는 꽤 큰 규모의 서점이었다. 나는 늘 소설을 구입했다. 주인은 꽤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했고 책에 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때가 막 서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시기였다. 시내에 여러 군데 있던 서점들이 다 사라지고 거기만 남았다. 대형마트 속 서적코너도 사라지는 때였다.
한창 예스 24 같은 인터넷 서점이 나타나서 책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초기시절이었다. 지금의 인공지능 때문에 영상관련업이 위협받고 있는 요즘과 비슷했을까. 그 서점의 주인은 서점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철학 때문인지 나는 거기까지 룰루랄라 걸어가서 책을 골라 계산하고 들고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책을 구입했을 때,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도 소설을 구입하려고 서점이 갔다. 내가 구입하려는 소설이 딱 한 권이 있었다. 그런데 누가 그랬는지 책의 모서리 부분이 좀 찌그러져 있었다. 주인에게 이 소설을 구입하고 싶은데 이 책은 좀 찌그러진 것 같으니 다른 책이 없다고 물었다. 그런데 주인은 어제 들어온 책이라는 말만 했다. 아니 여기 모서리가 누군가가 그랬는지 찌그러져 있어서 깨끗한 책으로 구입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제 들어온 책이라 새 책이라는 말만 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서점의 몰락을.
책은 그런 것이다. 내가 살 책이 누군가에 의해 조금 찌그러져 있으면 기분이 안 좋다는 마음을 주인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렇게라도 팔아야 한다니. 최초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책 정도는 구매해서 읽을 수 있잖아. 자신의 책에 낙서를 하던, 밑줄을 긋던, 책을 찢던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공공의 물건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분노하고 비난을 한다. 어른이라고 해서 전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기보다 고집이 강해지고 아집이 늘어날 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