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주 추억

백세주가 술이더라

by 교관

백세주가 한 병 생겨 마셨다.

한 잔을 마셨는데 이렇게 맛있는 맛이라니.

백세주 하면 추억이 있다.

세기말에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야간이라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일했다.

대학교 근처라 방학이면 사람이 없어서 밤새기는 편했다.

대학교 근처에서 집까지 극과 극이라 버스 타고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오전에 일 마치고 집으로 올 때 버스 타면 어김없이 잤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리면 바로 백화점이었다.

하루는 버스에서 내렸는데 소주 판촉을 백화점 앞 광장에서 하고 있었다.

햇빛 때문에 밀사의 눈초리로 그 앞을 지나가는데 내레이터 모델 사이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손으로 차양막을 만들어 눈을 더 좁혔다.

친구였다.


소주 회사에서 일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다니.

친구는 어린 시절 나의 봉알 친구로 아기 때부터 같이 자랐다.

그러다가 중학교에서 찢어지고 고등학교도 갈리고 하면서 주말에도 겨우 만나기 어려웠다.

친구는 이성에 눈을 일찍 떴는데 그 후로는 더 만나기 어려웠다.

하긴 친구보다는 이성이 중요하지.

친구는 눈에 확 띈다.

키가 190센티미터 정도기 때문이다.

서로 휘뚜루마뚜루 지내다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소주회사에서 일하는 만큼 술을 잘 마셨다.

꼭 소주회사에서 일해서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니지만 친구는 말술이었다.

같이 술을 마셔서 친구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밤새우고 버스에서 졸다가 대역죄인 같은 몰골로 내렸는데 친구와 마주친 것이다.

햇빛을 받아 노곤해진 몸과 눈꺼풀은 성냥개비 삼만 개를 올려놓은 듯 자꾸 내려왔다.

옆에서 내레이터 모델들이 마구 판촉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추었지만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몸은 축축 늘어졌다.


친구는 곧 점심시간이니 같이 밥이나 먹자고 했다.

그리고 근처 고깃집으로 들어가서 삼겹살을 구웠다.

친구는 술 한 잔 할래?라고 하더니 소주는 좀 그러니까 백세주 한 병을 먹자고 했다.

그렇게 백세주를 주문해서 마신 게 15병을 마셨다.

내가 네 병 정도 마신 걸로 아는데 친구는 열병을 넘게 마셨다.

백세주는 달달하니 맛있어서 이게 술인지 음료인지 모르게 넘어가는데 어느 기점을 지나면 여느 술과 마찬가지로 뇌를 잠식하고 몸을 문어화 시킨다.

도대체 우리는 뭐가 즐거워서 신나게 술을 마셨을까.

친구는 그렇게 마시고도 벌떡 일어나서 다시 일하러 갔다.

고깃집 사장님이 신나서 백세주를 막 갖다 주던 게 생각난다.

그 친구는 현재 무려 세 딸내미를 두고 있다.

두 딸은 쌍둥이. 지금의 아내는 그때의 여자 친구는 아니다.

백세주를 한 잔 마시니까 그때가 떠오르네.

매거진의 이전글학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