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지만 나쁘지 않은 냄새가 있었지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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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으면 아이들은 언제나 집 밖으로 뛰쳐나와서 놀았다. 옷을 매일 빨아야 할 정도였다. 도랑을 건너면 길을 따라 골목이 곳곳에 나왔다. 한 골목의 끝에는 문방구도 있고, 오락실도 있고 끝에는 목욕탕도 있었다. 동네에서 갈 수 있는 목욕탕은 두 군데였다. 큰길 너머 교회 근처에 있는 목욕탕이 있고, 도랑 위로 가면 나오는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은 자주 가는 곳이 아니면 낯설어서 목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낯섦은 군대 가기 진적까지 이어졌다. 요즘은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지만 이전에는 처음 가보는 목욕탕에서 왕왕 목욕을 했다. 처음 가는 목욕탕에서는 이상하지만 때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탕에 앉아서 눈으로 목욕탕 모습을 구경하고 목욕탕 분위기를 머리에 입력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동안에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주말마다 가는 목욕탕이 있었고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혼자서 목욕탕에 다녔다. 목욕탕 안에도 특유의 냄새가 존재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서 냄새가 났다. 기름으로 물을 데우기 전에 땔감으로 목욕탕 물을 데우던 목욕탕은 땔감을 태우는 냄새, 뭔가가 쪄지는 냄새가 뜨거운 물과 함께 났다. 그 냄새가 처음에는 거슬리는데 자꾸 맡고 싶은 냄새였다. 그래서 뜨거움을 참고 참으며 뜨거운 물이 나오는 꼭지 옆에 주먹을 쥐고 앉아서 냄새를 맡곤 했다.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자꾸 맡게 되었다. 도랑에는 당연하지만 도랑의 냄새가 났다. 그러나 도랑이 메워지고 냄새도, 재미도 사라졌다. 도랑이 있었을 때 도랑에서 자주 놀았다. 도랑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공터에서 주로 놀게 되었다. 공터에는 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공터에서 구슬 따먹기도 했고, 오징어 땅콩도 했다. 오징어 땅콩을 할 때에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공격하는 애들과 방어하는 애들이 창과 방패가 되어 피를 튀겼다. 한쪽 발로 깨금발 뛰며 오징어 밖에서 붙을 때에는 잘못하다가 넘어져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살벌했다. 옷이 찢어지기고 했고, 여자 애들도 끼었지만 봐주지 않아서 울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공터에는 산 위로 올라가는 골목도 있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산으로 연결된다. 양팔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산동네라고 해서 산에 오르기 전에 또 작은 공터가 나온다. 그 공터에도 여러 집이 있다. 고작 몇 걸음 차이가 나는데 산동네 아이들과 밑 동네 아이들은 서로 견제했다. 공기가 달라서일까? 윗동네는 윗동네만의 냄새가 있었다. 산 바로 밑에 있어서 그런지 고립된 냄새와 선에서 나는 상쾌한 냄새가 공전했다. 산은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뒷산 정도의 산이며 그 안에는 무덤이 있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 무덤 옆에 방송국이 들어섰다. 산은 담력시험장이었다. 산의 중턱에 있는 밭에서는 겨울이 되면 쥐불놀이를 했다. 분유통에 못으로 구멍을 잔뜩 내서 신문지와 나무 조각을 넣고 불을 붙여 뱅뱅 돌렸다. 쥐불놀이는 무섭지만 짜릿했다. 밤에 멀리서 보면 도깨비불 같았다. 뱅뱅 돌리면 돌아가면서 주위에 일어나는 난기류 때문에 깡통 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른다. 그때 쥐불놀이만의 냄새가 있다. 타는 냄새지만 뭔가 답답함을 날려버리는 냄새였다. 자칫 돌리던 쇠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그것 때문에 힘껏 돌리면서도 조마조마했다.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든다. 요즘은 쥐불놀이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 할 수 없다. 아마 정월대보름에 여러 곳에서 행사를 할 것이다. 쥐불놀이 깡통은 수월하게 만들 수 있지만 쥐불놀이를 할 장소가 마뜩잖다. 아무 곳에서 돌라다가는 신고가 들어와서 뭔가 제재를 당할 것이다. 그래도 인공지능으로 보는 화면 속 쥐불놀이보다 직접 손으로 들고 붕붕 돌리는 쥐불놀이가 좋지 않을까. 아이들도 즐거워할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들은 식겁할지도 모른다. 이런 걸 왜 우리 애한테! 하면서 덤벼들지도 모른다. 방송국이 들어선 산 중턱에 무덤가가 있다. 무덤가라고 해도 무덤이 두세 군데 정도 있을 뿐이다. 무덤가에서 포대를 타고 놀았다. 포대를 타고 놀면 풀물이 바지에 온통 배겨 냄새 때문에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과 마주 보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옆 마을로 통하게 된다. 골목이 구불구불 마치 미로 같다. 뛰어다니며 노는 재미가 있는 골목이다. 그 골목에 언젠가 한 번 이야기한 형이 아버지와 살고 있다. 그래서 그 형 집에 가면 꼭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 골목은 옆 동네로 이어지는 골목이고 텃세가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골목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지 않지만 숨바꼭질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까. 두근거림과 흥분을 동시에 가지게 만드는 놀이다. 숨바꼭질을 자주 하기 때문에 평소에 골목 어느 구석이 숨기에 적당한가 점찍어 놓기도 했다. 저곳에 몸을 숨기면 들키지 않겠구나. 술래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골목 어딘가 몸을 웅크리고 겨우 숨어 있는 곳에서도 냄새가 났다. 그늘의 냄새, 바닥의 돌 사이로 피어난 잡초 냄새, 뒷집에서 나는 두부 굽는 냄새, 오래된 벽돌 냄새가 섞여 있다. 시간이 훌쩍 지나 나는 지금 그 냄새를 쫓아 숨바꼭질했던 그때를 추억한다. 술래가 되면 오히려 낫다. 한 명이라도 잡으면 되니까. 술래가 되면 처음 소풍 간 곳에서 보물찾기 하는 것과는 다르다. 술래보다는 숨어있는 자가 되면 두근두근 거린다. 술래는 잡아낸 아이들과 함께 숨어있는 자를 찾으러 다닌다. 안 그래도 되는데 술래가 다가오면 숨까지 참는다. 저기 한 번 가봐, 같은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냄새마저 부풀어 오른다. 추억 속 냄새는 전부 좋다. 안 좋은 화약 냄새가 좋아서 화약을 계속 터트렸고, 골목의 냄새를 맡으려 쪼그려 앉아서 숨바꼭질을 했다. 요즘은 어떤 냄새가 좋은 냄새일까. 아니 안 좋은 냄새지만 자꾸 맡고 싶은 냄새가 뭘까. 시간이 지나 요즘을 떠올리면 어떤 냄새가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을까. 안 좋은 냄새지만 좋은 냄새가 있다. 요즘은 자동차도 매연을 뿜어내지 않는다. 길거리에 혼자 다니는 개도 없다. 쓰레기통도 사라졌다. 거리는 깨끗해졌고 강 역시 맑아졌다. 더러운 냄새 따위는 나지 않는다. 이젠 위에서 말한 그런 냄새가 소멸했다. 싫지만 나쁘지 않는 냄새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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