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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시험이 다가오면 중부 도서관을 찾기도 했다.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현재는 울산 중부 도서관 자리는 시립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미술관은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그 옆의 부지는 울산 초등학교였는데, 울산초교는 1907년에 울산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2007년에 100주년이었다. 근데 2014년에 107년을 맞이하고 와그작 무너트리고 사라졌다. 시립 미술관 건립 때문이라고 했는데, 지나다니다 보면 초교 부지는 주차장이고 그 앞이 미술관이다. 원래 더 크게 지으려다가 그냥 주차장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100년이 넘은 학교를 왜? 같은 생각만 든다. 유럽이나 해외는 오래된 전통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우리나라는 전부 허물고 없애버린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참 별로다.
중부 도서관도 몇 번 탈바꿈을 하고 사라졌다. 도서관은 음악 감상실에서 20분 정도 떨어졌다. 중학교 때 음악을 듣다가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도서관을 혼자서 간 적은 몇 번 없다. 음악 감상실에 있다가 도서관에 같이 가는 친구들과 약속 시간이 되면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물론 공부 때문이다. 도서관에 같이 가는 친구는 두 명이었고 둘 다 공부를 잘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어떻게 어울리게 됐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한 녀석은 운동도 잘하고 체격도 좋았다. 저 녀석은 왜 얼굴도 잘 생겼는데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걸까.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 만의 분위기가 있다. 한 테이블에 여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다. 거기에는 여자만 없고 회사원, 대학생, 고시생, 고등학생, 중학생 다양했다. 모두가 다른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맞은편에는 친구 두 명이 앉아서 공부를 했다. 고요한데 책장이 넘어가는 그 소리가 좋았다. 유일하게 스륵하고 책장 넘기는 허용이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책 속에 있는 내용을 머릿속으로 옮기는 게 공부라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그래서 공부는 못 했고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과목이 미술 정도로 함축되었다. 내가 중학생 때에 미술을 잘해봐야 큰 관심이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성적이 미술은 끼워 주지도 않았다.
어떤 과목이든지 외워서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뿐이었다. 특히 영어 선생님은 억양만 중요시했다. 칠판에 영어를 죽 적어 놓고 억양 표시를 해서 몇 번이고 따라 적게 만들었다. 숙제도 문장에 억양 표시를 해 오는 것이었다. 이 작은 나라 한국도 사투리가 있고 억양이 다른데 영어는 더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억양을 내 마음대로 표시해 갔다가 들고 다니는 드럼 채에 난도질당했다. 씩씩 거리며 나를 때리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나는 그 뒤로 영어는 손절이었다. 성적은 잘 나오고 싶은데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다. 그저 외워야 하니까. 머리가 나빠서 외우는 건 정말 꽝이었다.
그래도 공부를 할 거라고 친구들과 중부도서관을 찾았다. 공부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속에는 진실이 가득하다. 물론 거짓일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트를 작성할 수도 있지만, 그 행위만은 진실인 것이다.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공부를 하고 책에 집중하고 있다. 모두가 집중을 하는 모습은 약간은 기괴하게 보였다. 사람은 하체가 없어서 살아갈 수 있다. 다리가 잘리거나 허리 밑으로 잘려 나가도 사람은 산다. 그러나 목이 잘리면 곧 죽음이다. 목이란 인간의 몸 중에서 얼마나 허술한가.
뼈 하나와 피부와 약간의 근육 정도로 몸통에 붙어 있는 유일한 약간 신체 부위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목은 잘 드는 칼로 자르면 쉽게 떨어진다. 도서관에서 전부 고개를 숙이고 뒷 목을 드러내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무엇인가로부터 목이 잘려나가 그대로 죽어버린 사건이 발생한다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왼손으로 뒷목을 한 번 쓱 만졌다.
도서관에서 소리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앉고 일어날 때 의자를 끄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리고 아주 가끔 코 고는 소리도 있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테이블에 앉는 순간 모두가 평등해진다. 도서관이 가진 힘이다. 나이를 떠나 체격을 떠나 하는 일이나 직장을 떠나 도서관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가 비슷하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니까 어딘가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도서관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전화를 했다. 거기에는 커피와 음료 자판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끄럽지 않았다.
우리 세 명은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 서로 눈이 맞을 때가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모두가 한 마음이 된다. 그럴 땐 나와서 매점으로 갔다. 매점에는 컵라면과 국수를 팔았고 도넛도 팔았다. 매점은 도서관 건물을 나서서 야외에 따로 있었다. 매점 안에서는 항상 멸치국물 같은 냄새가 났다. 맛있는 냄새였다. 사람들이 컵라면에 물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거나 국수를 받으려고 대기를 했다. 컵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도서관에서 먹으면 더 맛있었다. 친구가 밥을 싸들고 와서 밥까지 말아먹었다. 컵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서 우리는 야외의 벤치로 갔다. 햇살이 내려왔지만 등나무를 뚫지는 못했다. 거기에 앉아서 먹는 맛은 꿀 맛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