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도서관에서 2

by 교관


2.


우리는 무슨 대화를 했을까. 도대체 중학생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우리는 이성에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 둘은 메탈이나 팝은 거의 듣지 않았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이제 밥을 먹고 도서관에 들어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강력하게 쏟아지는 잠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잠은 잘 오지 않지만, 밥 먹은 후 도서관에 앉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참지 못하고 엎드려 잠을 자는 게 훨씬 낫지만 어떻게든 잠을 견디려 하면 얼굴이 못생겨진다. 안 그래도 못 생긴 얼굴 더 엉망이 된다. 그러다가 잠에 항복하고 고개를 구십 도로 꺾어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면 침이 흘러 항상 고여 있다. 책이 우글거리는 이유다.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사서다. 사서는 늘 입구에 앉아 있다. 책을 좋아한다면 정말 괜찮은 직업 같다. 외부와 단절한 채 읽고 싶은 책을 하루 종일 읽으며 또 적고 싶은 글을 적으며 도서관을 지키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본 적이 없다. 도서관에 앉아서 읽기만 했다. 어떤 날은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나는 소설을 읽었다. 그 당시 나는 이문열의 소설에 빠져 있었다.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세계는 내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젊은 날의 초상의 영훈에게 몹시 감정이 이입되었다. 가난했지만 현실의 나는 부족함 없이 지냈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각종 부조리에 허덕이고 있었다. 도서관 사서에게 읽고 싶은 소설이 어디 있는지 물으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도서관 사서 역시 소설을 좋아했다. 사서는 소설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나는 흥미를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중부도서관을 찾았고 소설을 읽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하루키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도서관 사서와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었다. 사서는 30대 여성으로 역시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었다. 적고 있는 소설도 반이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서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소설을 적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중부도서관은 이후 건물의 변화가 있었다. 야외도 좋아져서 정원처럼 변했다. 바로 옆에는 동헌이 있었다. 울산 동헌은 울산부사가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이었다. 기와 집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동헌은 1997년 유형문화유신으로 지정되었다. 동헌이 건립된 해는 놀랍게도 1681년 숙종 7년이었다. 그 당시 울산부사였던 김수오가 지었다. 이후에 그의 아들이 1695년 숙종 21년에 울산부사로 부임하면서 동헌에 일학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름이 있으면 달라 보인다. 호텔과 비행기에 이름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름이 없는 택시나 버스는 끔찍할 때가 있다. 천 년이 넘었으니 건물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1981년에 지금 가면 보는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


동헌 내부에 실제 거주하던 살림집도 자리하고 있다. 중부도서관에서 문을 열면 바로 동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래된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진가를 알아보게 된다. 중학생, 고등학생 때에는 그저 앉아서 쉬는 곳 정도였다. 중학교 때 같이 중부도서관을 다니던 친구들과는 고등학교를 가면서 헤어졌다. 도서관에서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이름은 상희. 도서관 매점에 가는데 누가 나를 불렀다. 상희였다.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여고생의 상희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얼굴이 작고 동글동글한 상희는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나를 부를 때 돌아본 상희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일진 같은 모습이었다. 살이 많이 붙어서 옷은 터질 것 같았다. 도서관인데 가방이나 책 대신에 한 손에 담뱃갑이 들려 있었다. 변하지 않았다는 상희에 말에 너는 좀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말투도 얌전함에서 벗어나 공격적이었다. 상희는 담뱃불을 빌리러 들어왔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도서관 앞으로 일진 무리가 와서 상희를 기다렸다. 상희는 가봐야 한다며 연락처를 받아 갔다. 그러나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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