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실
날이 흐렸다. 곧 겨울이 물러날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쌀쌀하다. 겨울은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 물러나길 싫어하는 것만 같다. 한 겨울의 냉기는 빠졌지만 쌀쌀한, 그런 흐린 날이다. 내 곁에 머물러줘요, 말을 했지만. 공일오비 노래가 들렸다. 이 오래된 노래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생각 없이 발길을 돌렸다. 수많은 아픔만을 남긴 채, 떠나간 그대를 잊을 수는 없어요. 노래 가사는 특별할 것 없는데 음 때문인지 특별하게 들렸다.
요즘에 이런 노래는 인기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도 노래는 여전히 좋다. 예전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걷다 보니 제일 레코드 가게 앞까지 왔다. 제일 레코드 가게 앞은 늘 음악이 흘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다. 제일 레코드 가게에 음악이 나오지 않는 건 치킨 집에 닭이 없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제일 레코드 가게 맞은편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맞은편은 백화점 앞 광장이다. 근래에도 스레드에 현재의 모습과 30년 전의 모습을 올린 적이 있었다. 추억이 많은 곳으로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광장이라고 하지만 크지 않다. 하지만 다운타운 안에서 그 정도로 큰 광장도 없었다. 그 앞은 만남의 장소였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그 광장을 택했다. 그래서 평일의 저녁과 주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냥 사람 구경만 해도 재미있었다. 생김새도 다 다르지, 입은 옷 스타일도 다 다르지,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톤이나 음색도 달라서 구경하면 재미있었다.
인간이란 참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인간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 노래를 듣기도 좋아한다. 노래에 담긴 사연에 빠져들기도 한다. 눈물도 흘린다. 참 인간이란 알 수 없다. 인간만큼 궁금하며 재미있고 무서우면서 이상하고 기괴한 존재가 있을까. 사람이 많으면 별로인데 사람이 없으면 더 별로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존재다. 과장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으면 맞은편 제일 레코드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게 된다.
싸늘한 밤바람 속에 그대 그리워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또다시 끊어버리는 여린 가슴을 그댄 이젠 알 수 있나요. 제일 레코드 가게는 항상 몇 년 지난 음악을 틀었다. 흐린 날에 듣기에 텅 빈 거리에서 만큼 듣기 좋은 노래가 없다. 자주 광장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때마다 나오는 음악은 달랐다. 주인의 취향 같은 건 없었다. 클래식이 나올 때가 있고, 팝이 나올 때가 있었다. 가요가 나올 때도 있고 헤비메탈이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유행하는 노래가 나오지는 않았다.
주인의 취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확고한 취향이었다. 특히 메탈이 나올 때에는 가까이에서 듣곤 했다. 판테라나 바쏘리 같은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과격하고 시끄러운 건 틀지 않았다. 하지만 스키드 로우 두 번째 앨범은 굉장한 메탈인데 그건 틀었다. 슬레이브 투 더 그라인더 앨범 속에는 블루지한 메탈인 인 더 다켄드 룸도 있고, 멍키 비즈니스 같은 엄청난 헤비 한 메탈도 있다. 메탈을 좋아하는 녀석과 약속을 하면 제일 레코드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안쪽 한 편에서는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 생일이면 레코드 앨범을 구입해서 선물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메탈을 좋아해서 그런지 모두가 기뻐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가서 알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엘피판은 그리 좋은 선물이 못 된다는 걸. 하지만 내 주위에는 기묘하게도 메탈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친구와 만나서 가는 곳은 음악 감상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 감상실은 놀이터 같은 곳이 되었다. 주말을 음악 감상실에서 보내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그곳은 울산 라디오 디제이가 시간표에 맞춰 음악 감상실에서도 디제이를 했다.
주말에는 학 학교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들이 무대에서 노래솜씨를 뽐냈다. 축제가 많아진 요즘은 각종 축제 무대를 초대된 프로 가수들이 공연을 하지만 그때는 각 학교에서 끼 많은 아이들이 매주 일요일에 음악 감상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인기가 대단했다. 음악 감상실 안 무대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아이들은 무대를 활용할 줄 알았다. 입장료만 내면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시내 중심가 3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올라가서 문을 열면 카운터가 나오고 계산을 하면 티켓을 줬는데 음료를 하나 사 마실 수 있었다. 콜라, 사이다, 커피 정도. 로비에도 테이블이 가득해서 수다를 떨 수 있었다.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면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가 한 방향으로 있고 앞에는 작은 무대와 디제이 실이 유리 막 안으로 보이고 왼 편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큰 화면으로 뮤직 비디오를 본다. 디제이 박스 안에서 전문 디제이가 신청곡을 받고 사연을 읽고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라디오와 똑같다. 다른 점은 좀 더 마이너하고 팝스타 뒤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접할 수 없는 팝스타들의 가십을 들을 수 있었다. 팝스타들 이야기에 우리는 늘 굶주려 있었다. 디제이들도 어딘가에서 주워 들었던 가십을 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공중파 라디오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요컨대 엑슬로즈는 호텔에 자신을 보러 온 팬들에게 짜증을 내며 2층에서 로비 1층으로 의자를 집어던졌다더라, 그래서 팬들과 싸우고 난리가 아니었다더라.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이야기와 음악은 우리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음악 감상실에 자주 갔다. 혼자가 되면 의자에 푹 기대앉아서 이것저것 낙서를 할 수 있었다. 생각도 쓰고, 기록도 하고, 소설도 적었다. 아무튼 열심히 적었다. 아무 곳에서나 어떤 것이든 적었다. 머리가 나쁘니까 적어 놓지 않으면 금방 까먹고 만다. 음악 감상실의 큰 스크린으로 존 세카다의 이프 유 고, 조지 마이클과 엘튼 존의 돈 렛 더 선 고 다운 온 미도 봤다.
조지 마이클과 엘튼 존의 뮤직비디오는 그때에도 최고였는데 요즘에도 최고다. 이 엄청난 인파와 두 스타의 노래는 황홀경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에는 조지 마이클이 살아 있었고 지금은 죽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많은 팝스타들이 죽었다. 마이클 잭슨도, 휘트니 휴스턴도, 프린스도, 데미스 루소스도, 마리아 프레드릭슨도, 돌로레스도. 루 리드도 당시에는 팔팔하게 살아서 노래를 불렀다. 비록 이역만리 떨어져 있지만 노래를 듣고 있으면 괜스레 신났다.
음악 감상실에서 몇 시간 실컷 있다가 나오니 날이 흐려 있었다. 오후다. 곧 어두워진다. 겨울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흐리고 쌀쌀해서 그런지 눈이라도 내릴 것만 같다. 집으로 오는데 공일오비 노래가 들렸다. 내 곁에 머물러 줘요, 말을 했지만. 레코드 가게가 다 사라진 지금 어딘가에서 공일오비의 노래가 흐른다. 나는 노래가 흐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https://youtu.be/4xhoZKk16Q4?si=4IFfX_cGCa31Ou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