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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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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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다가 총을 든 갱단에게 붙잡히면 여자는 강간당하고 먹히고 만다. 같은 사람, 예전에 이웃집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먹히는 것이다. 식량이 없는 세계에서 지내면 그렇게 된다. 타인은 그저 식량일 뿐이다. 그런 세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찾아간다. 이 위험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아버지는 곧 자신도 죽을 거라는 걸 안다. 자신이 죽는다면 이 어린 소년을 어떻게 하는 가, 아버지가 멸망한 세계에서 식량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아버지는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지만 이 지옥에서 아들을 통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영화 속 대사도 소설과 비슷하다. 아버지는 멸망한 세계에서 아들에게 줄 선물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망한 세계에서 아들과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는 건 현실에서 그토록 외면받았던 치토스나 스팸 같은 가공식품이다. 우리가 그토록 몸에 나쁘다고 하던 것들. 소년은 난생처음 콜라를 마신다. 콜라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음을 보여준다. 소년은 트림을 한다. 이 장면이 너무나 좋다.


[아주 맛있어, 아빠도 좀 마셔]


후에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대비한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자꾸 묻는다.


[우리는 안 먹을 거지? 아무리 배고파도?]


[그래, 그럼]


[우린 착한 사람인가요?]


[그래, 우리는 착한 사람이야]


마지막에 아버지는 죽는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한때 신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히면 이끼 냄새가 났다. (중략)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 직원은 그 후에 [더 로드]를 읽었다. 직원은 소설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또 추천해 달라는 말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추천해 주었다. 역시 영화로도 유명했다. 1년 뒤에 그 카페는 대략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2호점을 냈다. 2호점은 직원이 상주했다. 아주 잘생긴 남자 직원으로 초기부터 관심이 많았다. 소설은 한 번 접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접하고 나면 궁금해서 책을 펼치게 된다. 접하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부모나 형제들 중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책을 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친구들과 노는 것에 바쁘면 성인이 되어서도 죽 그 친구들과 만나게 된다.


책이 아니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널려 있기에 굳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의 원작이 대부분 소설이기에 원작을 읽으면 훨씬 재미있을 수 있다. 소설 하면 꼭 고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고전을 읽어야 하며, 그리고 고전을 읽으면 삶이 바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들에게 읽은 고전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 달라고 하면 얼버무린다. 자신의 형제가 문학전공이라 언니가 고전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다. 친형제의 말이 진리가 아닐 텐데,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말을 하면 화를 낸다.


다른 예로 이제 대학생이 되었는데,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고 너무 좋아서 하루키의 팬이 되기로 했다고 해서 나는 응원해 주었다. 그런데 하루키 팬 중에 [밤의 거미원숭이]를 읽지 않는 사람은 하루키의 팬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게 무슨 얼어 죽을 똥 같은 말일까. 하루키 소설 한 권을 읽었어도 그 소설이 너무 좋아서 팬이 도겠다고 하는데 왜 제동을 걸까. 하루키도 아니면서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을 보고 그 나라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보면 안 된다. 한 사람이 진리가 될 수는 없다. 문학을 전공한 형제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문학에 대해서 더 잘 알 수는 있지만, 그 형제가 문학의 진리는 아니지 않은가. 그 카페 2호점에 있는 직원은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카페들은 전부 사라졌다. 아직도 집에서 양치질 컵으로 그때 받은 카페의 머그컵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그런 카페를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있겠지만 내가 활동하는 범위 내에는 없다. 며칠 전에 갔던 프랜차이즈 카페는 카공족들이 전부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우리는 이야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면 옆에서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컬카페 몇 군데를 정해놓고 지치지 않고 갔던 적이 있었다. 집이 바닷가 근처이니 바닷가의 로컬카페와 직장 근처의 로컬카페가 있었다. 아침에 나오면서 바다를 보고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일을 하고 조깅을 하면서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던 내가 찾던 작은 카페들. 주인 혼자 하던 그런 로컬 카페는 자주 가면 친해지게 된다. 바닷가에는 몇 년씩 가던 카페들이 있었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3, 40분 정도 커피를 마시고 출근했던 카페가 있다. 그 카페의 주인 부부는 동물을 무척 좋아해서 카페 안에 강아지를 데리고 와도 괜찮았다. 카페는 야외도 넓고 좋다.


바로 앞 주차장에도 10대 정도 주차할 수 있고 야외 테라스가 크고 넓어서 거기서 커피를 마시기에도 좋다. 비가 오지 않는 날, 너무 춥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는 야외에서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여름에는 이른 오전이 그렇게 덥지 않았고, 겨울에도 해가 쨍쨍하면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커피 마시기에 좋다. 조선소 때문에 해외 기술자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 물론 그건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그들은 바닷가를 강아지와 산책하고 항상 그 카페로 온다. 카페에 앉아서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다. 바다가 잘 보였다. 바다는 너무 멀리서 보는 것보다, 너무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보는 바다가 좋다. 그 카페가 그랬다. 바로 앞이 바다지만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매일 폰으로 찍었다. 그리고 사진으로 출력을 해서 카페의 창가에 붙여 놨다. 그러다 보니 창가에 내가 담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사진들의 반은 시를 적어서 출력을 했다. 주인 부부는 다행히도 내가 붙여 놓은 사진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 카페를 2년 동안 이른 오전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오전에 바다 표면에 비치는 윤슬을 보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까지 죽 이어졌다. 코로나가 덮치고 조선소에서 해외 기술자들이 전부 고국으로 돌아가고, 바닷가에는 전문으로 강아지 놀이터 같은 곳이 생겼다. 바닷가에는 그 외에 들리는 몇 군의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전부 사라졌지만 사진으로 남겨놔서 그런지 기억은 생생하다. 언젠가 또 여러 카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또 하도록 하자. 여러분에게 추억이 깃든 카페는 어떤 카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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