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 비 2

소설

by 교관


2.


고양이 굴비는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햇살이 창으로 내려오면 잠시 해가 닿는 부분에 앉아서 해를 쬔다. 고양이 종류는 모른다. 강변에서 젤리 비를 맞고 덜덜 떨고 있는 걸 상자에 넣어서 데리고 왔다. 젤리 비를 피부에 맞아서 동물병원에는 데리고 가지 않았다. 집에 두고 후에 죽으면 묻어줄 요량이었는데 굴비는 아직 씩씩하게 살아있다.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 사료도 사지 않았다. 내가 먹는 음식을 조금 떼서 줄 뿐이었다.


개도 한 마리 있다. 역시 젤리 비를 맞았고, 주인에게 버려졌다. 개에게는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고양이는 이름이 막 떠올라 지어지는데 개는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고양이는 물수제비 같은 느긋한 면모가 있어서 이름이 바로바로 떠오르는데 개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이 먹지 않는 아이 같아서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개는 젤리 비를 맞아서 아픈 것보다 주인에게 버림받아서 굶주려 아파하는 걸 데리고 왔다. 개도 젤리 비의 징후가 아직 안 보인다.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변하거나 피부가 젤리화 되지 않았다. 개는 푸들과 흔히 발바리라 불리는 개의 교배종이다. 나는 개와 굴비 덕분에 말이라는 걸 하고 산다.


젤리 비가 처음 내리던 날 그녀는 나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눈이 회백색으로 변한 그녀가 내가 잠이 들면 문 너머에서 나를 몇 시간이고 본다. 매일 그런 꿈에서 깨어난다. 처음 젤리 비를 맞고 병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실험쥐처럼 이것저것 주사를 맞고 바늘에 찔렸다.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봐야 했다. 살려달라는 말을 하던 그녀가 제발 죽여 달라고 했다.


굴비가 와서 내 얼굴을 핥았다. 개가 내 다리 위에 얼굴을 올리고 잠을 자고 있다. 문득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일어나서 굴비와 개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 그게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 대신 내가 죽어야 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매일을 보냈다. 세상의 공포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혼자라는 생각, 고독하고 외로움에 짓눌리는 무게가 너무 힘이 들어 칼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바그너의 음악을 크게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젤리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길 바랐다. 야옹, 하는 굴비의 소리가 들렸다. 밥을 챙겨 줘야 한다. 건멸치와 유당이 제거된 우유와 물을 준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단백질 덩어리를 조금 잘라주고 개에도 비슷한 식사와 함께 돼지고기를 삶아서 주고 있다. 개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개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면 그녀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정치인들은 양극화가 되어 젤리 비를 피할 수 있는 도시의 돔 형성화에 열을 올려 선거권을 쟁탈하려고 했다. 젤리 비의 원인보다는 회피하여 당장 표를 얻는 것에 급급했다. 휴대전화 재난 알림이 떴다. 젤리 비를 피해 들어간 한 종교시설에서 교주에 의해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해오다가 젤리 비를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교주의 신묘한 힘을 믿는다며 모두가 젤리 비가 내릴 때 그대로 맞고 처참하게 죽었으니 그 일대에 가지 말라는 뉴스가 떴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종교시설 광장에서 젤리 비를 맞고 그대로 젤리화 되어서 반은 하체가 젤리처럼 녹아서 지하로, 땡으로 흘렀다. 이에 정부는 산에 위치한 종교시설을 점검한다고 했다. 젤리 비가 내린 후에는 땅이 빨리 마르지 않았다.


라는 소설을 쓰며 세계관 형성에 혼자서 신나고 있는데, 옆에서 먼저 쓰던 거 마저 적으라고 한다. 맞다 먼저 쓰던 게 있었다.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젤리 비만큼 스펙터클 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점점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어느 날 엔진오일이 다 됐다는 불이 들어와 점검하러 가니 엔진오일을 간지가 일 년이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동안 문자를 받고 와서 케어를 받았는데 그럼 그건?라고 하니 정비소에서 뭔가를 두드리더니 그런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문자 창을 열어보니 정비소에서 문자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분명히 5월까지 문자가 와서 이곳에서 정비를 받았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그러면서 정보가 하나씩 사라져서 식당에 들어가려고 큐알코드를 찍으려고 해도 오류가 떠서 결국 밥을 먹지 못하고, 편의점에도 들어가려 하지만 이제 전부 큐알코드를 찍어야 하는데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팔로워들에게 메시지를 넣어도 답이 없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와서 나의 신용카드(개인적으로 저는 카드가 하나도 없습니다만)가 전부 정지되었으니 사용이 불가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매거진의 이전글젤리 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