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1

소설

by 교관


1.


매일 같은 시간에 커피를 투고하러 간다. 가는 길과 시간이 매일 비슷하다. 다를 게 없다. 인생이 크게 다르고 변화무쌍할 줄 알았지만 언제나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커피를 받아서 오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물론 커피를 바로 받아서 온다면 말이다. 그 정도의 거리를 매일 같은 시간에 걷는다. 옆 건물을 통해서 1층으로 나온다. 옆 건물에 들어가면 2층이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1층으로 빠진다. 그런데 옆 건물의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문이 열리는 시간은 들쭉날쭉하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옆 건물로 들어가지만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문이 닫혀 있으면 건물을 돌아서 커피를 받으러 간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관통하나, 건물을 돌아서 가나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가는 이유는 그 통로에 피규어 파는 곳, 뽑기 매장, 노브랜드가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매일 똑같은 길을 가는데 피규어 같은 것들은 조금씩 달라져있다. 배치가 달라지기도 하고, 모형이 바뀌기도 한다. 신상이 나오면 매대 앞으로 나와 있기도 했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피규어 숍은 일찍 문을 열지 않기에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문이 열려 있으면 구경할 수 있다. 그런 길을 지나 건물을 빠져나가 카페로 가서 커피를 받아 온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커피를 받는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광량이 떨어지는 면적이 매일 다르다. 시간은 같은 시간인데 어느 날은 광량이 요만큼, 어느 날은 그림자가 이만큼, 어느 날은 햇빛이 내 몸을 전부 덮을 만큼 크다. 나는 머물러있는데 세계는 늘 변화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나는 그 당연함에서 벗어나 있다. 늘 생각하고 있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 변화하되 변함없기를 바라지만 나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건물에 들어가니 문이 열려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문이란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문을 말한다. 그 문이 열려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1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의류매장으로 이어진다. 겨울에는 잠시라도 따뜻한 건물 안을 통과하는 게 났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할 수 없이 복도 끝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복도는 길다. 극장 건물인데 큰 두 채의 건물을 연결해 놨기에 복도가 제법 길다.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에는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무슨 층에 어떤 매장이 있는지 광고가 붙어 있었다. 요즘은 마라 맛 떡볶이가 유행이다. 위에는 떡볶이 뷔페가 있다. 로제 맛 떡볶이가 인기 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마라로 바뀌었다. 복도는 길었다. 한 번도 복도로 가 본 적이 없기에 이렇게 길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건물이 끝나야 하는데 복도는 끝나지 않았다.


돌아서 가려고 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복도 끝까지 가기로 했다. 건물 두 채를 이어주는 복도라고 해도 이렇게 길지는 않을 텐데. 피곤함에 내가 먹혀 버려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일까. 인간은 매일 같은 행동, 같은 짓, 같은 곳에 간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매일 잠들어야 하고, 매일 먹어야 한다. 매일 화장실에 가야 하고, 매일 만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매일 해야 하는 이 반복적 구도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도 있지만,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는 매일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게 싫지만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날 불쑥 나에게 왔다. 그녀는 매일 같은 모습이지 않았다.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어느 날은 욕실의 물품들을 전부 깨트려 놓아서 최초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지겹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내가 다른 여자와 조금만 이야기를 해도 난리가 났다.


술을 마신 그녀는 내가 운전하는 와중에 조수석에서 옷을 다 벗기도 했고, 그 상태로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도 했다. 차가 갈리고 있는 와중에 그 같은 행동으로 나는 너무나 놀랐다. 사랑에 대한 집착은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했고 그녀를 데리러 온 그녀의 엄마에게도 욕설을 뱉었다. 미술을 했던 그녀는 온몸에 물감을 발라서 침대에 누워 뒹굴었다. 집으로 오니 난장판으로 만든 강아지처럼 칭찬해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도 씻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변화 없는 내 인생에 거침없는 변화로 감정을 드러낸 그녀가 무임승차 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바라면서도 그녀를 내쫓지 못한 건 그녀의 광기 때문이었다. 광기를 발산할 수 있는 감정이 무엇일까. 그녀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술을 얼마까지 마실 수 있나 내기를 하듯 마시더니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때에도 그녀는 속옷을 입지 않아서 젖꼭지나 몸의 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한 마디로 파격이었다.


강아지를 보면 아이처럼 변했고, 나이트클럽에 가면 문을 닫을 때까지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에너지를 전부 쏟아내고 정신을 잃으면 나에게 업혀 나왔다. 침대에 눕혀도 깨지 못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업어도 그랬을 것이다. 눈을 떴을 때 내가 눈앞에 없으면 울었다. 한 번 울면 세 시간을 울었다. 종잡을 수 없었는데, 그녀의 광기에서는 기묘하지만 빛이 났다. 그 빛이 적어도 나에게만은 찬란하게 빛났다. 여행을 가면 그녀는 나를 안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햄버거 열 개와 맥주 열 캔을 사놓고 배고프면 먹고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나에게서는 완벽한 일탈이었다. 여행은 그녀의 광기를 조금 재워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안겨 울면서 말을 하곤 했다.


버려질 걸 생각하고 왔는데 왜 너는 나를 버리지 않느냐고.

너는 안 그런 것 같은데 너무 이상한 사람인 거 알아?

왜 나를 버리지 않았어?

이제 나는 어떡하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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