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2

소설

by 교관


2.


그렇게 말을 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그녀가 버려질까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이 뭔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녀를 버릴 생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의 행복은 분명하게 알지만 그녀가 나의 행복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거절당하는 게 너무 무서운 것이다. 그녀의 망상은 그것에서 출발했다. 그녀의 어머니 장례식장을 내가 지켰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확실히 그녀의 부재는 매일 아침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녀가 박살 낸 변기에 앉아서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매일 이 변기에서 싸지른 변은 얼마나 될까.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그녀가 물었던 걸 생각한다. 나 같은 인간 하나하나가 매일 아침에 대변을 본다. 아파트 한 동에서 나오는 양은 얼마 큼일까. 이 도시에서 나오는 양은? 만약 매일 해야 하는 처리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인간들은 어떻게 변할까. 과연 지금처럼 이성을 유지하며 질서를 지키며 지낼 수 있을까. 처리하지 못한 변이 흘러넘치는 집과 거리에서 인간들은 이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세상에 도래하면 그녀 같이 광기를 지닌 사람이 이성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인간의 삶이라는 건 종이 한 끗 차이다. 그녀에게 나는 어쩌면 변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머물렀다가 찌꺼기를 배설하고 가버리는,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 복도를 걷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진공관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 어떤 소리도, 소음도 들리지 않으니 이상했다. 우우웅 하는 공명도 없었다. 그저 무의 상태다. 소리가 사라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그 생각이 드니 나는 진짜 무서웠다. 아직도 복도를 걷고 있다. 복도가 이렇게 길 리가 없는데, 길어도 너무 길다.


너무 긴 복도. 어렴풋하나 긴 복도를 걸었던 적이 떠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잘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서 몇 발자국 가보니 복도의 한 지점에 문이 닫혀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없던 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없었던 문이었다. 도대체 문이라는 게 언제 생겼을까. 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구실을 한다. 만약 문이 없다면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문제가 된다. 발로 차서 부서질 문이라도 있으면 안심이 된다. 작은 열쇠하나 채워두기만 해도 밖으로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다. 집과 자동차에는 문이 있어야 한다. 닫아 놓으면 안심이 되는 문, 열어 놓으면 호기심이 생기는 문. 문하나 사이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기도 한다. 문이란 그런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나의 방호 막 같은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 때문에 욕실 문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그녀의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았다.


틈이 있을 정도로 열려있지만 더 이상 열리지 않는 이상한 문이었다. 그런 문을 나에게 열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착각이었다. 틈이 벌어진 정도, 딱 그 정도 열려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문은 단단하고 견고해서 웬만하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문을 열려고 고생했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전날보다 틈이 좀 더 벌어졌고, 그 틈은 매일 조금씩 더 벌어졌다. 문을 두드렸고 노력했고 결국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뒤로 그녀는 자주 나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물론 그녀의 문이 수월하게 열리지는 않았지만 열리긴 열렸다. 이 복도에 없던 문이 생겼고 굳게 닫혀있어서 할 수 없이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복도는 계속 이어졌다. 복도는 그냥 복. 도. 그 자체였다. 이 긴 복도. 언젠가 긴 복도를 걸었던 기억. 복도를 걷고 있으니 초등학교 때 복도가 생각난다. 초등학생 때 초등학교의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무로 된 복도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복도는 왁스칠을 매일 해서 반질반질했다. 복도는 너무 길어서 청소를 할 때면 자기 교실 앞의 복도만 칠했다. 아무리 달려도 복도의 끝에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때 복도는 그랬다. 복도에는 아이들의 솜씨를 뽐내는 그림이 걸려있다. 그 그림 속에 내가 그린 그림도 있다. 3학년에 나는 미술대회에 나갔다. 거기서 동상을 받았다. 3위라고 하는데 금상, 은상을 돋보이게 하는 게 동상 같았다. 그림은 내가 훨씬 잘 그렸는데 내가 동상이었다. 3위라는 말이다. 선생님도 나에게 조용하게 그랬다. 그림은 네 그림이 제일 좋아. 그러나 어릴 때에는 왜 그렇게 순위가 정해지는지 몰랐다. 복도에 걸린 내 그림을 보고 아이들이 1, 2등 그림보다 칭찬을 더 했다. 나의 그림 밑에는 아이들이 놓아둔 색종이로 접은 꽃과 학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1, 2등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짝지가 샤프를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샤프를 늘 빌려 필기를 했다. 내가 가진 샤프는 문방구에서 팔지 않는다. 미국 사는 친척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물로 보내주었다. 반 아이들은 서로 한 번씩 빌려 달라고 했다. 그중에 짝지가 빌려달라고 할 때가 제일 좋았다. 짝지는 우리 반에서 제일 예뻤다. 하지만 내가 다른 여자 아이와 놀고 있으면 화를 냈고 다시는 그 여자애와 말도 못 하게 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칭찬을 받고 인기가 오르자 나는 따돌림을 받았다. 특히 짝지까지 나를 따돌리는 건 슬픈 일이었다. 나를 따돌리는 중심에 1, 2등과 함께 짝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슬픔보다 더 한 무엇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복도에 우르르 나와서 쉬는 시간을 보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복도는 더욱 붐볐다. 향수를 모르는 아이들만의 비린내가 비 냄새와 섞여서 날 법도 한데 비 오는 날 복도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당번이 되어 아이들이 전부 빠져나간 휑한 복도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끝에서 보면 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 복도에서 영혼을 보았다. 연기처럼 복도에 둥둥 떠다녔다. 다른 당번은 집으로 가고 나 혼자 남아 있어서 무서워야 했지만, 나는 무섭지 않았다. 영혼이 있는 쪽으로 갔다. 너는 진짜 영혼이야? 그러나 영혼은 나의 말을 듣지 못하는 거 같았다. 영혼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 학교를 다녔던 사람일까. 영혼은 복도를 둥둥 떠다니며 걸려 있는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린 그림 앞에서 한참 있었다. 그리고 눈물도 흘렸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어떻게든 영혼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눈앞에서 희미해지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 뒤로 영혼을 보지 못했다. 소녀의 영혼은 어딘가에서 꼭 본 사람 같았다. 꿈을 꾸면 소녀의 영혼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잊었다. 어쩌면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그때의 소녀가 다시 태어나서 왔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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