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설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김수용 감독의 안개로 영화가 되었다.
https://youtu.be/GppVzuwaK-Y
무진은 그런 곳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과 같았다.
영화 속에서는 여귀라는 말 대신 마녀라고 했다. 김승옥의 안개 이후 그 어떤 소설가도 안개를 이렇게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 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그런 곳이 무진이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제약회사에서 이름뿐인 전무인 윤희중이 상상하는 약은 그런 것이다. 자신의 힘없음과 무지와 그것을 알려주는 문장이 이어진다. 윤은 사실 시골에서 상경하여 성공의 가도에 올라있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 말은 60년대의 윤은 작금의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은 것, 그건 상쾌한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윤희중이라는 이름 대신 윤기중으로 나온다.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을 쫓아 보려고 행했던 수음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거나 그것들에 관련된 어떤 행위들이었었다.
윤은 무진에서의 처지가 그랬다. 무진은 그를 책임과 무책임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처지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어머니와 친구들이 죽어가는 전장의 사이에서 윤은 고뇌에 휩싸여 그저 할 수 있는 건 담배를 피우고 수음을 하는 것뿐. 이런 무진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윤이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과거의 윤과 현재의 윤이 무진이라는 곳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보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오늘 이른 아침,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역구내를 빠져나올 때 내가 본 한 미친 여자가 그 어두운 기억들을 홱 잡아 끌어당겨서 내 앞에 던져 주었다. 그 미친 여자는 나일론의 치마저고리를 맵시 있게 입고 있었고 팔에는 시절에 맞추어 고른 듯했다. 그 여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쉬임 없이 굴리고 있는 눈동자와 그 여자를 에워싸고 서서 선하품을 하며 그 여자를 놀려 대고 있는 구두닦이 아이들 때문이었다.
결혼하셨다구요. 자넨? 전 아직, 참 좋은 데로 장가드셨다고들 하더군요.
형님하고 형님 동기 중에서 조 형 하고요. 조라니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애 말인가?
소설 속 ‘조’가 영화에는 조한수로 나온다. 두 사람은 세무서장이 된 조의 집으로 간다. 거기서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하인숙, 얼굴은 노리 기리 했다. 병약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좀 높은 콧날과 두꺼운 입술이 병약하다는 인상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하인숙을 연기한 배우는 윤정희다. 아주 어린 모습의 윤정희로 당시로는 볼 수 없는 예쁜 얼굴의 배우였다. 무진기행은 3번 영화가 되었다. 67년도에, 76년도, 87년도에 한 번씩 만들어졌다. 윤정희는 두 번 하인숙으로 열연했다.
김승옥의 유머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하 선생의 좋은 점과 하 선생의 나쁜 점을 말하며 모두가 푸하하 하며 웃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노래 한 곡을 부르게 한다. 윤희중, 극 중 윤기중이 하 선생의 노래를 듣고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트로트도 아닌 가극도 아닌 것처럼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대사에서 잘 와닿지 않는다면 영화를 보면 윤정희가 노래를 그렇게 소설의 문체를 그대로 연기를 하고 있다.
윤과 하 선생이 밤의 무진을 걸어가면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여기서도 김승옥의 유머가 나온다. 소설과 다른 점이 있는데 하 선생이 무진은 밤에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때 윤은 다행이라고 한다. 왜 다행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하 선생이 말하니 윤은 왜 그런 것이냐고 묻는다.
사실은 멋이 없는 고장이니까요. 제 대답이 맞았나요?라고 하 선생이 말하니 소설에서는 윤이 거의라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80점이라고 하고, 어머 100점이 아니구요?라고 하 선생이 말하니, 윤이 백 점짜리 대답은 이런 것입니다. 아이구 여기도 지구의 일부분입니까,라고 한다. 이런 부분은 김승옥의 위트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왜 김승옥이라고 하냐면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도 김승옥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인숙과 윤희중의 유명한 대사 개구리울음소리를 하늘에 뜬 수많은 별에 빗대어하는 대사들이 죽 이어진다. 대사지만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멋진 문체가 죽 이어진다.
내일 아침 걸레로 닦아 내면 될 방의 어느 곳에 털어 버리는 담뱃재는 마치 윤희중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설은 3장 ‘바다로 뻗은 긴 죽방’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한 번쯤 필사를 해 본 무진기행, 무진기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반나절을 주절주절해도 모자랄 것 같다. 만약 김승옥이 절필을 하지 않고 김수용 감독이 계속 김승옥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면 어땠을까.
무진기행이 나오고 3년 뒤 영화로 나온 ‘안개’다. 김수용 감독은 문예 감독으로 김수용 감독 이전에는 대체로 일본 문학이나 일본 영화, 또는 프랑스 영화를 한국식으로 바꾼 영화들뿐이었다. 맨발의 청춘도 그랬다. 60년대는 한국의 영화 르네상스였기에 흑백영화지만 보면 대체로 재미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학창 시절 사진부를 하면서 한국 흑백영화를 많이 본 편이었다. 오발탄부터 최은희의 상록수, 이조 여인 잔혹사(이 영화에는 김지미, 윤정희, 남정임, 황정순이 다 나옴)까지, 그럴 때마다 나는 늘 특이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영화들을 보면 그래픽이 없기에 구성이 탄탄하고 배우들이 귀신이 들린 듯 연기를 한다. 그래서 오래된 영화지만 재미있다.
김수용 감독은 문예영화의 거장으로 이광수의 소설 ‘유정’부터 김동리의 소설, 현진건의 소설까지, 많은 한국 문학의 문체를 영화적인 문채로 옮겨다 놓은 정말 멋진 감독이다. 문예영화다 보니까 소설을 헤치지 않고 소설의 대사가 거의 대부분 영화에 쓰이고 있다. 마치 빨강 머리 앤의 소설과 만화의 대사가 거의 똑같듯이.
이 영화의 재미있는 일화는 시나리오를 김승옥이 직접 썼는데 그때 김수용 감독이 김승옥에게 붙어서 제발 어렵게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김수용 감독 역시 20년대 생으로 2000년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활동이 없다. 무진기행의 신성일도 삶이 끝났고 김수용 감독도 이제 지난날보다 남은 날이 짧을 것이다. 그리고 김승옥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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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이 등장했을 때 모국어의 폭발로 그야말로 문학계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누나 작가들에게 끌려가서 엄청 귀여움을 받았다고 해요. 박경리 같은 선배 누나들은 김승옥이 그렇게 좋았나 봅니다. 막 목에 팔을 걸고(까지는 아니겠지만) 끌고 가서 술을 마시고. 하지만 남자 작가들에게는 벼락과 같은 일이었어요. 김훈,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역시 경향신문 문화부 편집국장까지 했는데 1대 문인이지 않습니까. 그 당시 꼬꼬마 김훈에게 주전자에 술을 받아오라 시켜서 매일 밤마다 문인들을 모아 놓고 했던 이야기가 김승옥이라는 괴물의 글을 읽어 봤냐? 이제 우리의 밥줄은 다 끊겼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충격으로 절필을 선언했을 때 이어령 박사가 붙잡아서 호텔에 던져 놓고 글을 계속 쓰게 했는데 그때 쓴 소설이 ‘서울의 달빛’이었는데 그걸 죽, 끝까지 썼다면 서울의 달빛 0장에서 1장, 2장, 3장으로 이어졌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만 다 던져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서울의 달빛 0장만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풍이 와서 몸이 좋지 않은데 그래도 가끔 인터넷을 보면 할아버지 김승옥을 보러 많은 젊은이들이 가기도 하고 잘 만나주기도 한다고 해요. 이만희 감독 영화는 여로도 본 것 같고, 만추도 보고 삼포 가는 길도 봤는데 기억은 가물가물해요 모두. 삼포 가는 길에 설원이 나오는 것 같은데 설원이 펼쳐지면 늘 젊은 날의 초상에서 영훈이 역을 했던 정보석이 배종옥이 있던 술집으로 가기 전의 설원을 덜덜 떨며 걷던 장면이 오버랩되네요- 나와 P의 대화 중
무진기행은 아름다운 문체의 시와 시가 이어진문장이다.
현재의 아내는 과거의 엄마.
현재의 인숙은 과거의 자신.
현재의 무진과 과거의 무진.
동경하던 서울과 벗어나고픈 서울.
책임의 서울과 무책임의 무진.
치욕스럽던 과거와 치욕마저 잊고 지낸 현재.
쓸쓸함을 말할 수 있었던 과거와 부끄러움만 지닌 현재.
현재의 아내의 남편의 자리에 들어가는 윤.
개 두 마리의 교미는 사이렌 소리 속에 창부와 교미를 하는 상상하는 자신이 결국 인숙과 몸을 섞는 관계로 이어지고 현재의 윤은 과거의 자신과 몸을 섞음으로 그 치욕을 치욕으로 덮으려 한다.
과거의 윤에게 쓸쓸함이란 시간의 지루함, 느끼는 허전함,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다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생활을 쓸쓸하다,라고 느낄 수 있었다. 윤에게 사랑은 쓸쓸함과도 같다. 사랑을 하게 되면 쓸쓸해진다. 너무 흔한 말이라 할 수 없는 말 사랑, 하지만 간단히 말해버리고 마는 윤.
어머니의 묘를 찾은 윤은 비를 흠뻑 맞는다. 비가 나를 효자로 만들어 주었다. 자기 멸시가 가득한 문장이다. 바지까지 걷어 올리며 묘를 정리하고 있지만 자기 멸시에서 오는 부정. 비가 쏟아져 나는 울고 있음을 대신 떠넘긴다.
죽은 이 여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체를 보며 정욕을 느낀 자신이 치욕스럽고 경멸스럽다.
인숙과 맞잡은 손. 우리가 잡고 있는 손바닥과 손바닥의 틈으로 희미한 바람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바람은 두 사람의 사랑, 쓸쓸함, 부끄러움, 연민, 자기애 또는 자기모멸이었으리라. 두 사람은 바쁘게 서두를 것이고 상처가 났어도 아프지 않고 상처가 없는데 아플 것이다.
무진은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안으로 들어와서 봐야만 보이는 세계.
그곳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동시에 교접하는 무서운 세계.
짧게 쓰지 못하는 병에 걸렸는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