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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53

6장 2일째 저녁

153.

 “그렇다면 내일 이 시간쯤에 한 번 더 오시오. 장군이를 산책시킬 건데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이오.”


 이렇게 큰 개들은 산책시키기 힘들다. 앞서 두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에게 끌려가는 주인에게서도 그 모습을 봤지만 장군이가 힘 있게 앞으로 달려 나간다면 아마 주인은 휘청휘청하며 딸려 갈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마동은 자신을 불러들인 의식의 주인을 찾아보았다.


 나를 부른 의식을 지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그 사람도 나처럼 변이를 일으키고 있기에 나를 알아본 것일까.


 마동을 이곳으로 부른 의식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레이트데인 장군이와 장군이 주인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내일 별일이 없다면 이곳으로 조깅을 하러 올 겁니다. 들리겠습니다.”


 -반드시 내일 오도록 하다-


 진공관을 흐르는 듯 기이하고 이질적인 의식이 다시 한번 들렸다. 장군이의 주인과 이야기하는 동안 자의식으로 마동에게 의식을 전했고 곧 사라졌다. 문체도 깨지고 소리도 완전하게 사람이 내는 소리와는 달랐다. 이질적인 의식의 소리는 또렷하게 마동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동에게 다가온 이질적인 의식의 소리는 시작도 끝도 없었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빈 공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전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동은 장군이의 주인에게 내일 조깅을 하면서 이곳에 들리겠다고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켜준 다음 그곳을 벗어났다.


 마동은 카페를 벗어나 해변의 조깅코스로 다시 올라왔다. 카페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마동의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장군이가 마동을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꼬리는 살아서 따로 움직이는 도마뱀 같았다. 장군이는 묘한 눈빛으로 마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동은 고개를 뒤로 돌린 채 장군이의 눈빛을 응시했다. 한참을 그 눈빛을 쳐다보았다. 동물 같지 않는 눈빛.


 장군이와 1분 정도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일렁이던 어떤 작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은 마동의 것이 아니다. 곧이어 자주 꾸던 꿈속의 그곳이 나타나더니 손을 잡고 병원을 거닐던 어린 시절 마동의 모습도 희미하게 나타났다.


 이 작고 미미한 마음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마동은 작은 마음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동의 마음속에 누군가의 그리움이 숨어 있었다. 분명 마동이 지니고 있는, 마동의 그리움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마동은 자신에게 자문했다.


 나에게 그리움이라는 것이 생존해 있었을까.


 마동은 그동안 그리움 따위의 감정은 물기를 바짝 말린 수건처럼 완전하게 건조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마동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마음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동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 마동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지나간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감정일 뿐이다. 추억을 재생하는 감정은 삶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마동의 입장이었다. 특히, 마동은 자신이 하는 일에 타인이 이루지 못한 고장 난 꿈의 집약을 채취하고 갉고 닦아서 완전한 하나의 꿈을 만들어 리모델링하는 것이 직업이다.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지나간 감정에 젖어있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다. 회사에 입사하기 이전부터 마동은 그런 주의였다. 감정의 결여를 언제부터 받아들였는지, 그동안 그리움이라는 작은 떨림도 없이 잘 도 지내왔다구, 어떻게 지금껏 생활해왔냐고 자문했다. 질문은 여러 개였지만 질문에 맞는 답은 늘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마음이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마동은 그리운 감정을 결여시킨 채 지금껏 지내왔다. 그것이 마동이 선택한 하나의 방법론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론이 존재한다. 자본론, 실존론, 종교론 등등. 사라진 대 수학자와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론’이 세상사에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념은 오히려 레닌이 만들어낸 마케팅 같은 것이다. 마케팅은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들의 의식을 파고들어서 선동을 하기도 하고 작은 기업을 대번에 공룡기업으로 만들기도 한다. 대중이란 꽤 단순해서 하나의 반복적인 마케팅을 계속 주입시키면 그것이 ‘앎’이자 ‘옳음’으로 받아들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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