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그러는 도중에 아내가 돌아왔다. 병문안 갈 때 병원 밑에 있는 빵집에 들러 빵을 잔뜩 사들고 갔다, 아직 그때 까지는 친구의 아내가 제빵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내가 빵을 사들고 가도 친구는 아파서 먹지 못하니까 아내와 아이들 먹으라고 들고 갔다. 그러나 친구가 멀쩡한 모습으로 빵을 여러 개 먹어 버렸다. 아내에게도 빵을 권했다. 친구의 아내는 빵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오히려 친구의 아내가 아픈 사람 같았다. 간호하느라 힘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눈치챌 수 있었다. 친구와 아내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 서로가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었고 아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전부 눈으로 보였다. 친구 아내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하려고 했지만 친구가 나를 빨리 돌려보냈다.
[그때 사고가 왜 났는지 아세요? 남편이 운전을 하고 있었어요. 그 동호회에서 출사 갈 때 한 대의 차를 남편이 운전을 했어요. 옆에는 여자 회원이 탔거든요. 그 여자 회원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회원이었죠. 남편이 없고 4살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였어요. 뭐랄까 딸을 키우는 엄마의 모습에 반했는지 어땠는지 자주 나 몰래 연락을 하는 거 같더라고요. 출사를 끝내고 오면서 여자 회원의 다리를 만지다가 사고가 난 거예요. 남편은 쳐다보기만 했다고 하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죠. 경찰 조사에서도 벌써 나온 사실이구요. 하지만 나에게만은 그렇게 말하기 싫었겠죠. 창피하겠죠]
친구는 동호회에서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아내가 동호회 회원이기도 했고, 회원들이 친구보다는 친구의 아내에게 더 친밀하다는 걸 친구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다. 뭔가가 트리거가 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친구는 그 여자 회원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아내 몰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입원하면서 문제는 확실하게 터지고 말았다. 폰으로 동창들과 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한 동창을 만났다. 물론 여자 동창을. 여자 동창은 친구와 말이 잘 통했다. 무엇보다 같은 우경화였다. 반가운 마음에 시작한 채팅은 늪처럼 친구를 빨아 당겼다. 결국 아내 몰래 만나기도 했다. 동창생이니까 아내보다 다섯 살이나 많지만, 나이나 몸매 그런 문제는 친구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의 행동과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아내는 친구를 유심히 관찰했다. 여자의 직감이란 묘한 구석이 있다. 아이가 넷이나 있어서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야 하는데, 폰을 자주 들여다보며 채팅에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남편의 폰만 볼 수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폰을 보는 건 불가능했다.
친구가 아무리 아닌 척 평소처럼 행동하려 해도 질질 흘려 놓은 것들이 아내의 눈에 전부 보였다. 어느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려 했지만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다음으로 미뤘다. 아내는 그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친구 몰래 미행을 하니 동창을 만나고 있었다. 집에서는 늘 굳은 표정이었는데 입을 헤 벌리고 히죽히죽 웃으며 동창생을 만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간 남편의 폰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아내가 보니, 보고 싶으니 빨리 채팅방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였다. 아내는 못 본 척 증거를 잡으려고 기다렸다가 주말에 현장을 덮쳤다. 두 사람이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폰으로 촬영했다.
친구의 아내가 무엇보다 화가 났던 건 자신보다 훨씬 못생기고 살도 많이 찐 동창생에게 온 마음을 열어서 만난다는 점이었다. 결혼을 하면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건 어렵다. 사랑은 식어버리기 마련이고 생활을 위해 몸을 굴리다 보면 서로 이를 드러내고 많이 싸우게 된다. 특히 아이 넷을 키우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꼴도 보기 싫어진다. 아내나 남편 이외의 이성을 만나서 불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결혼한 모든 이들이 바람을 피우지는 않는다. 내가 병문안 갔을 때 싸한 느낌은 그런 것 때문이었다. 남들에게 쉽게 꺼낼 수 없는 비밀 같은 이야기가 부부에게만 존재한다.
모든 부부가 그 비밀을 둘 만이 알고 있지만, 한쪽에서 깨버리면 걷잡을 수 없어지기도 한다. 친구는 아내에게 여자 동창생을 만나는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시간이 좀 지나 친구의 아내가 내가 일하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나에게 뭔가를 딱히 해결해 달라고 온 건 아니었다. 아내는 나 말고 친구의 진짜 친구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 죽고 못 사는 친구들에게 가지 않았다.
[남편의 친구들은 제 말은 겉으로만 들을 뿐이에요.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완전히 남편 편이에요. 전부 동창들이라는 거예요. 거기에 모두가 우경화예요. 결속력이 대단합니다. 마치 어떤 조직 같아요. 구청장이나 시의원 출마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선거운동을 합니다. 그게 대단해요. 옆에서 보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예요. 바람피운 여자 동창생도 우경화예요. 보통 남자들은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남편은 달라요. 이념이 같으면 단결은 잘 되지만 떨어져서 도면 그 모습이 무서울 때가 있어요. 다른 말은 전혀 듣지 않으니까요.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그것대로 힘이 생겨 공격적이 되거든요. 그들끼리의 세계 속에 점점 깊게 빠져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 세계에서 만남이 있고 모든 게 해결되니까요. 외모 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친구의 아내는 일 년 가까이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남편이 만나는 외도녀에 대해서 세세하게 말해 주었다. 외도녀를 보지 못했지만 마치 본 것만 같았다. 친구의 아내는 나에게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술 한 잔 마시고 싶어요. 오늘 밤은 아이들 둘은 학교 수련회에 갔고, 둘은 친정에 있고 남편은 친구들과 있어요]
술을 마시러 다운타운에 있는 포장마차로 갔다. 친구의 아내는 소주를 연달아 세 잔을 마셨다. 한 병쯤 들어가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가끔 잘 있던, 늘 옆에 있던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특히 립밤 같은 제품이요. 아직 많이 남았고 늘 놔두는 곳에 놔두었는데 일정량 사용을 하면 사라지는 거예요. 아껴주고 조심스럽게 다뤘지만 어느 날 보면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되죠. 사랑도 그런 거 같아요. 어느 날 사랑은 사라져 버려요. 립밤과 다른 점이라면 사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와서 앉아 있어요. 시간의 균열이 깨져 버린다고나 할까요. 깨진 균열 사이로 사랑은 빠져나가고 대신 다른 무엇인가가 들어와요]
[이를테면?]
[글쎄, 뭘까요?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모두가 살면서 느끼잖아요. 다른 여러 가지요]
그게 뭘까? 나는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알 수 있었다. 사랑 대신 그 뭔가가 들어와서 사랑의 공백을 메꾼다. 나는 소주를 한 잔 마시고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제 남편은 사라졌어요. 옛날로 돌아오지는 못할 거 같아요. 남편도 그렇고 저도 이제 곧 사리질 것 같아요. 어떤 면으로요. 그동안 준비를 했거든요.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그동안 털어놓으면서 준비를 차곡차곡해 왔어요] 나는 계속 들었다.
[모두 사라지잖아요. 어린이의 모습에서 사라져 어른이 되고, 결혼 후에는 결혼 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이에요]
술이 많이 들어갔는지 친구의 아내는 자주 웃었다. 어쩌면 억지로 웃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웃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넷이 있으니까 마음처럼 이혼으로 행동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서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를 가장 크게 분노케 한건 배신이었다. 배신이라는 걸 한 번 당하고 나면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떤 쪽일까, 잠시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남편이 룸살롱에 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일상을 공유하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상대가 아내가 아니라 여자 동창이라는 것에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건 모욕감이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다. 자칫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만 같아서 나를 걱정을 했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목숨을 끊는다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단지 우리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뿐이에요]라고 했다. 그녀는 술이 많이 들어갔지만 차분했다.
[한 집에 같이 살되 없는 사람 취급을 할 거예요. 식사를 제대로 차려주지 않을 거예요. 이제 나가서 뭘 하든지 디태치먼트 할 거예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실컷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정말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술의 힘을 빌려야만 했어요. 이해하시죠?]
이후 친구의 아내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점점 동호회도 쇠퇴기를 맞이하다가 운영의 문제로 서로 다툼이 있다가 사라졌다. 친구는 하던 일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 역시 나를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친구의 소식은 동호회 회원이었던 사람에게 가끔 듣는다. 그가 우리 고객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아이 넷은 잘 자랐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얼마 전에 근처에서 바쁘게 어딘가를 가는 친구의 아내를 봤다. 모습이 많이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했지만 아내가 맞았다.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어쩌면 내가 알던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