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내가 나를 찾아왔다

1부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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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곳으로 친구의 아내가 찾아왔다. 나를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가끔 이렇게 찾아오면 커피나 한 잔 같이 마셔주세요]


마셔 달라니? 그건 무슨 의미일가?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죠? 저 누구에게 이렇게 부탁해 본 적이 없어요]


이유 없이 커피를 같이 마셔 달라는 친구의 아내가 처음에는 이상했다.


나를 떠 보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뭘 떠 보려고 하는 걸까?


이전에 봤을 때 그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편견 때문에 내가 가진 모습이 그녀의 모습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친구의 아내 모습은 아니었기에 놀랐다. 그러나 놀란 모습을 얼굴에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나는 되도록 이면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이 저의 이야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해요. 별거 없어요. 나를 완벽하게 모르는 점 집이나 점성술사에게 가려고 했자만, 그런 곳에는 돈이 많이 들어요. 저에게는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말이에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아이 넷이 떠올랐다. 친구와 친구의 아내는 아이 넷을 낳아서 키우고 있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찾아오면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에게는 비밀로 했다. 이야기를 한다고 했지만, 주로 내가 듣는 쪽이었다.


[양심의 가책 같은 거 느낄 필요가 없어요. 남편이 알 리도 없지만, 이렇게 차 한 잔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진 않아요. 특히 당신과 함께 있다면 말이에요]


친구의 아내는 큰 키에 아이 넷을 낳았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관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때가 일 년 하고도 육 개월 전이었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나를 불러 달라고 했다. 나가보니 친구의 아내였던 것이다. 머리를 묶었다가 풀었는지 웨이브 진 머리에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친구의 아내는 내가 일하는 건물 8층에 있는 제빵학원에서 수강생으로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중간에 껴서 가끔 만나거나 했다. 건물에서도 아주 가끔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찾아온 것이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는데 몸매가 드러났다. 친구의 아내는 웃음기 걷힌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런 표정과는 달리 손에는 제빵학원에서 들고 온 빵이 잔뜩 들려 있었다. 친구의 아내는 많은 빵을 만들어서 사무실 식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회사 내 상담실에 자리를 마련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들어보니 친구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이야기였다. 남편에게 배신감이 들고 분노가 올라와서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곧 들어가야 해요. 애들이 우르르 학교에서 오거든요. 막내에게 배운 실력으로 빵을 만들어 주기로 했어요]

그녀는 아이들 이야기할 때와 남편 이야기를 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이후 일주일에 삼사일은 제빵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내려오다가 사무실로 왔다. 그녀는 항상 사무실 사람들 먹으라고 만든 빵을 잔뜩 들고 왔다. 연습용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아주 맛있었다. 무엇보다 식빵이 근처 베이커리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촉촉하면서 달지 않은데 먹고 있으면 질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설탕이 꽤 들어가니 많이 먹지는 마세요]


덕분에 직원들은 굳이 간식을 사 먹지 않아도 되었다.


[혹시 저 때문에 사무실에서 눈치 보는 거 아니에요? 만약 그렇다면 카페에서 만날까요?]


[아니에요, 만들어준 빵 덕분에 오히려 그 반대예요. 직원들이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상담실에 커피포트까지 구비해 놨어요]


친구의 아내는 날이 갈수록 점점 예뻐졌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랬다. 학원에서 밀가루를 만지고 나온 것 같지 않았다. 물론 묶은 머리 자국과 빵 냄새를 풍겼지만 허리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 같았다. 옷도 잘 입었다. 아무리 봐도 아이 넷을 두었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는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예쁘게 가꾸고 차려입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마음을 돌리겠다는 것보다 미운 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어서 매일 봐야 하기에 그렇게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건 그저 나의 추측일 뿐이다.


친구는 외도하는 장면을 아내에게 현장에서 발각되었다. 무너진 부부 관계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친하지만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다. 같은 학교를 다닌 탓에 얼굴만 알고 있었다. 그 친구와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달랐다. 보통 남자들은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과는 관계를 죽 유지하지만,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것만으로는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갔고, 군대 제대 후 직장을 잡아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친구와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친구는 결혼을 해서 아이 넷을 얻었다. 친구는 인터넷 사진 동호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사진 동호회는 지역 동호회로 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인터넷 사진 사이트 중에서 상위권이었고 전시회나 바자회 같은 행사도 자주 열고, 출사도 매주 나가는 동호회였다. 친구는 사이트에 직접 촬영한 아내의 사진으로 인기가 꽤 높았다. 나는 동호회 모음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동호회 사이트에 사진을 업로드하면 회원들의 관심을 받았다. 사진이 독특하다는 이유였다.


내가 촬영한 사진에 풍경 사진은 없었다. 주로 캔디드 사진으로 순간포착으로 담아낸 사진이었다. 사진 동호회에 올라오는 사진은 감동보다는 감탄이 많았다. 감탄이 터져 나오는 사진은 인기를 얻는다. 해가 솟아오르는 사진이나 오메가를 뿜는 사진, 좋은 망원렌즈로 담은 새나 꽃, 지는 노을의 붉은 색감과 봄날의 하늘을 수놓은 사진이 많았다. 내가 업 로드한 사진은 샐리 만, 엘리엇 어윗이나 노순택 작가의 사진을 많이 닮았다. 감탄은 나오지 않지만 감동이 있을 수 있고, 이상하네 같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열 명이 보면 열 명 전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진이 내가 올리는 사진이었다.


독특하다는 이유로 나를 따로 찾아오는 회원들도 있었는데, 그 회원들 중 친구가 섞여 있었다. 친구는 동호회에서 오래전부터 활동하고 있었다. 큰 동호회에서 상위에 랭크된 회원 영향력이 크다. 요컨대 모임 할 때에도 장소 섭외가 수월했다. 야경 촬영을 위해 높은 빌딩의 옥상 개방도 가능케 했다. 그래서 회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호회 안에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동호회는 자유스럽게 보였지만 그 안을 잘 파고 들어가면 비합리와 부도덕이 판을 치고 있었다. 친구는 동호회 속에서 권력을 누리는 자에 속했다.


거기에 예쁜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동호회 가족란을 장식하고 있어서 새로 들어온 회원들은 레벨이 높은 회원 옆에 붙어서 다니기를 바랐다. 카메라 기기들 공동구매를 할 때에도 상위레벨의 회원과 친하면 아무래도 이득이 있기 마련이다. 또 상위레벨의 친구 역시 그 점을 잘 이용하면 뭔가가 생기는 생리를 잘 알았다. 그 사이에서 신입 회원들과 술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친목을 다졌다. 신입 회원들 중에는 여자 회원도 있었다. 그러다가 특이한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알고 친구는 나를 찾아왔고 이후 가깝게 지냈다. 그렇다고 친구와 함께 출사를 가거나 사진을 함께 촬영하지는 않았다.


친해지긴 했지만, 어느 선까지만 이었다. 친구는 우경화가 심했다. 언어습관 중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이 짙었다. 극우에 가까웠기에 듣기 거북한 언사가 억지춘향 식으러 나왔다. 말을 하다가 자신의 말에 자기가 열받아서 점점 소리가 커졌다. 주위에서 쳐다볼 정도였다. 자기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점만 아니면 꽤 잘 맞았다. 친구의 아내 역시 그 문제로 고심을 앓고 있었다. 친구와는 술도 같이 마시고 재미있게 보냈다. 친구는 극우적 성향에 반하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적대시했다. 사진 동호회 안에서도 그 성향이 가끔 드러나서 무서워하는 회원들이 있을 정도였다.


어느 주말 다른 지역으로 동호회에서 출사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친구는 입원하게 되었다. 병문안을 한 번 갔다. 병실에 누워 아파할 거라 생각했지만, 많이 나았는지 아님 애초에 크게 다치지 않고 보험금 때문에 입원을 했는지 휴대폰을 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친구는 나를 보더니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입원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친구는 같은 병실의 다른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줄줄 했다. 동호회에서 출사 갔다가 사고 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친구는 같은 병실의 환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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