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전 앞 독서실에서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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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이렇게 잔인하게 흘러간다. 삼월과 다르고 오월과도 다르다. 여긴 구역 사거리. 많은 부분 변화되었지만 변함없는 건물도 있다. 나 어릴 때 여기 함월초교를 나와서 고등학교 다닐 동안 이 동네에서 살았다. 예전에 함월초교 옆 건물에 독서실이 있어서 고등학교 때 얼마간 거기서 먹고 자고 했다. 옷 갈아입으러 잠자리가 바뀌면 뒤척이거나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데 그때는 독서실에서 용케 잘도 잤던 모양이다.


독서실 생활이라고 해봐야 학교에서 자율학습이 끝나면 밤 아홉 시, 집으로 오면 열 시가 되니 바로 독서실로 가서 잠을 자는 게 더 나았다.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지만 나의 성적이나 뭐 이런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단지 친구와 같이 있고 싶어서 독서실을 다녔다. 단지 친구와 같이 있고 싶어서 독서실을 다녔다. 독서실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독서실에서는 취사가 안 되었지만 자정 넘어 휴게실에서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자글자글 졸인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끓여 먹는 라면 냄새와 침낭에서 자고 일어나고 하는 냄새, 그런 냄새들이 다 섞인 독특한 냄새가 있다. 휴게실은 여학생 남학생이 같이 사용했기에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때 독서실 지킴이 대학생 형이 있었다. 무서운 형이었다. 독서실은 자정이 되면 문을 폐쇄했다. 그 형 때문에 절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했다. 독서실 주인은 그 형이 아르바이트 일을 하러 오면 독서실 모든 부분을 맡기고 퇴근을 했다. 그만큼 형은 독서실에서 수문장 역할을 잘 해냈다. 자정이 넘으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했다.


물론 사정이 있으면 열어 주지만. 무서운 대학생 형이었지만 어쩌다가 친해지고 말았다. 계기는 메탈 음악이었는데 생략하자. 그러면서 자정 넘어 형과 술을 한 잔 하게 되었다. 술은 금방 떨어졌고 자정 넘어 몰래 나가서 술을 사 와서 카운터에 앉아서 형과 홀짝홀짝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친구 누나의 과 친구들과 형과 형 친구들 미팅 주선을 하게 되었다. 삼대삼 미팅이었다. 그때가 딱 이맘때였다. 바야흐로 잔인한 사월. 거리는 온통 봄꽃이 흩날리고 낮에는 바람이 코를 간질이는 그런 토요일 오후에 성남동 마로니에 카페에서 만났다.


마로니에 카페는 1939년에 일본인이 지은 주택으로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가 87년부터 마로니에 카페로 운영 중이다.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지만, 새로운 로컬 카페가 주위에 많아서 그런지 손님은 없다. 마로니에 카페는 일본식 건축 양식의 모습을 유지하게 있다. 2층에서 미팅을 했다. 우리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서 시켜준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아마 제일 비싼 파르페 뭐 그런 음료일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다니 생각만큼 재미는 없었다. 우리는 음료만 다 먹고 나왔다. 정말 날이 좋았다. 모두가 얼굴에 행복 꽃이 피었다. 형은 그 뒤로 우리에게 독서실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게 해 주었다.


자정이 넘어 구역전 근처에서 술과 안주를 사 와서 자주 마셨다. 역시 술은 몰래 숨어서 마실 때가 맛있었다. 독서실 형과 친구들은 친구 누나와 누나 친구들과 가끔씩 만나는 모양이었다. 모두 울산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울산 대학교 앞 바보 사거리는 대학생들로 항상 붐볐고 거기서 만남을 가지고 저녁에는 함월초교가 있는 곳으로 와서 독서실을 지켰다. 오월을 지나 유월이 되니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자정 넘어 형이 몰래 문을 열어 주었다. 우리는 몰래 나가서 술과 안주를 사 오려고 했다. 그전에 라면을 먹으면서 친구가 먼저 한잔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의 도로는 그야말로 한산했다. 특히 오래된 동네에고 초교 앞이라 자동차도 잘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술에 취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휘청휘청 걷고 있었다. 우리는 술과 먹을 사 오다가 그 남자를 피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우리를 향해 욕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듣기에 거북한 욕설이었다. 친구가 듣고 화가 났다. 친구도 술이 약간 취해있었다. 나는 말렸지만 친구가 그 남자에게로 가서 따져 들었다. 남자는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지만, 친구는 살짝 피해서 얼굴을 가격했다. 남자는 뒤로 벌렁 자빠졌다. 남자는 포효했다. 다 죽인다며 난리를 피웠다. 그때 아, 이거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지만 이러다가 사람들이 올 것만 같았다. 친구를 끌어서 빨리 들어가자고 했지만, 친구는 씩씩거리며 남자에게 조용히 집으로 가라고 소리쳤다. 친구를 끌고 독서실로 올라왔다. 뛰어서 와야 하는데 친구가 걸으며 남자에게 소리치느라 남자가 우리가 어느 건물로 들어갔는지 보게 되었다. 남자는 독서실까지 올라와서 굳게 내려간 철문을 두드렸다. 독서실 안은 전부 겁에 질렸다. 형은 학생들에게 가만있으라고 하고 조용히 있었다. 남자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 나오지 않으니 지쳐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욕을 마구 했다. 그런데 십 분 뒤 퍽 하며 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가 어디서 돌멩이 큰 걸 들고 와서 밑에서 독서실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 창을 깨버린 것이다.


창은 큰 창으로 시트지 때문에 와장창 깨지지는 않았지만, 거미줄처럼 푹 꺼진 것처럼 깼다. 2층의 모든 창을 그렇게 깨 놨다. 그 일로 대학생 형은 그만뒀고 우리는 독서실에서 쫓겨났다. 그 뒤로 지나다니며 독서실 유리창을 보면 푹 깨진 채 그대로 붙어있기를 일이 년 이어갔다. 그러더니 독서실도 폐쇄되고 말았다. 대충 들리는 이야기는 주인은 독서실 운영이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시트지에 붙은, 깨진 유리창은 몇 년 내내 그렇게 붙어 있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집도 그 동네에서 나와 이사 갔다. 어린 시절의 모든 추억을 전부 가지고 있던 동네였는데, 근래에 지나오면서 보면 거의 전부 바뀌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던 동네 그 자리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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