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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8. 2020

7월의 해변에서는

바닷가 에세이

7월 17일의 해변



7월이 오고 난 후 15일 만에 하루 종일 해가 쨍쨍하게 났다. 그간의 여름을 주억거리며 떠올려보면 본격적인 여름이 도래하는 7월의 초가 이렇게나 흐리고 비가 오며 심지어 춥기까지 했던 나날은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7월보다 6월이 더욱 무더웠고 폭염의 나날이 며칠 있었다. 여름에는 여름답게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게 좋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15일 만에 맑은 날이 오고 뜨거운 해가 하루 종일 떴다. 그런데 마치 5월의 날씨 같다. 물론 태양 밑에 있으면 해가 뜨겁다고 느끼지만 습기가 전혀 없어서 그늘에서는 또 써늘한 맑은 날이다. 이런 날은 실내의 에어컨 바람이 밉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아직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여름인데 이럴 수가 있나.


어떻든 오랜만에 백사장에 나와서 뜨거운 태양 밑에서 책을 좀 읽었다. 늘 여름이면 이런 생활을 했기에 7월을 꼬박 채워서 이런 생활을 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여기서 나고 자랐기에 어린 시절에도 여름이면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가 음악과 책을 몹시도 좋아하는 줄 안다. 책과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단지 덜 좋아하거나 책 보다 더 좋아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나도 음악과 책을 아주 좋아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단지 흥미를 느낄 다른 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책이나 음악보다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허비, 낭비 수준으로 갈아치웠다. 하지만 가난이 온 집에 내려앉았던 그때 나의 부모는 마냥 아이가 좋아한다고 덥석 덥석 사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계가 있었는데 그런 기미를 알게 된 것이 ‘프란다스의 개’라는 동화책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인사성이 아주 밝은 아이였다. 동네의 같은 아줌마를 3번 마주치면 3번 인사를 했다. 똑같은 인사로. 안녕하세요! 라며 허리를 구부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배웠다. 공부 빼고는 배운 대로 잘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칭찬을 했다. 착한 아이로구나. 착한 아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어린이였던 나를 마치 그런 아이로 만들었다.


그런데 프란다스의 개를 읽으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현실의 어른들은 늘 착하게 살아라, 착하게 행동해라,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프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착한 네로와 착한 네로의 할아버지, 착한 파트라슈는 모두 죽고 만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파트라슈를 거둔 네로는 지극정성으로 키우지만 착하기만 한 네로의 할아버지는 돈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그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에 네로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그림도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눈을 맞으며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도 도둑으로 몰려서. 그것도 그렇게 좋아하던 아로하의 아버지가 네로를 도둑으로 몬다. 이게 뭔 아름다운 동화야. 왜 착한 사람이 이렇게도 비참하게 죽어버리는 걸까. 착하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현실의 어른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 같았다.


미술대회에 왕왕 나가곤 했던 어린이였던 나는 그 후로 그림에서 이상하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잔혹동화를 알게 되고 난 후 집의 가난을 생각하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슬슬 멀리하게 되었고 흥미로운 것이 없었다. 그 사이에 음악과 책이 있었지만 책을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읽고 나서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나는 이상하게도 학창 시절에도 지금도 그렇지만 책이라는 건 시간이 나서 자유한 시간에 마음 놓고 읽어봐야 읽히지 않는다. 시간을 내서 빠듯한 시간 속에서 책을 읽거나 열약한 환경 속에서 읽은 책이 꽤 재미있었고 기억의 끝을 오래 끌고 갈 수 있었다. 요컨대 고등학교의 한문 시간에 한문책 사이에 책을 끼워서 읽었다. 한문 선생님 코 앞에서 읽고 있어도 한문 선생님은 알지 못했다.


긴장되지만 한문책 사이에 끼워놓은 책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이다. 한문 선생님으로 말하자면 나이가 69세나 68세쯤으로 돋보기를 끼고 있고 예전 서당에서 하는 방식으로 사자성어를 읊은 다음 학생들이 따라 읽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어떤 한문 시간에 선생님이 세로로 사자성어를 쓴 다음 누군가를 지목해서 밑에 음을 달아라고 했다. 그때 영진이라는 녀석이 앞으로 나가서 한자 밑에 음을 달았다. 영. 웅. 본. 색.


한문 선생님은 다른 짓을 하는 아이들을 눈치 못 채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껌을 씹는 아이는 귀신같이 찾아냈다. 참으로 능력자였다. 천천히 오물거리는데 그걸 찾아서 집어낸다. 그러면 껌을 한문 선생님 자신의 손바닥에 뱉으라고 한다. 손바닥 위의 껌을 자신의 손으로 죽죽 펴서 학생의 머리, 가르마에 딱 붙인다. 공포다. 한문 선생님은 저 더러운 손으로 책을 만지고 분필을 만지고 교탁을 만졌다. 그러는 스펙터클한 환경 속에서 소설책을 한문 책 사이에 끼워서 읽었다. 아마도 한문 시간에 읽은 책이 무진기행이나 젊은 날의 초상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썩 보지 않았다. 그때는 친구들이 있었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어울렸기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책을 덜 읽었다. 그래도 사진 부여서 친구들과 떨어져서 사진부 암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선배들이 빠져나가고 혼자 있을 때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때부터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또 읽고 계속 읽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소설은 지루하지 않고 질리지 않는다.


당시에는 어디를 가든 음악이 있었다. 요즘도 어디를 가든 음악이 있다. 그런데 요즘의 음악이라는 건 히어링 개념의 음악이다. 듣기 싫어도 계속 들어야 하는 음악이 있었다면 예전에는 우리가 늘 가던 곳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서 들었다. 그 대부분을 차지한 곳이 음악감상실과 레코드샵이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레코드샵의 주인은 우리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주로 듣는 음악을 알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음반이 나오면 그 정보를 알려 주었다. 음악잡지책을 권해 주기도 했다. 그 잡지에서 음악평론가 박은석의 평론을 읽었고 지금 평론계의 방탄인 임진모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레코드점은 모두 사라졌어도 음악 감상실은 불과 10년 전까지도 다운타운에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소멸했다.


음악 감상실은 딱 우리가 원하는, 아니 딱 내가 원하는 곳이었다. 음악을 하루 종일 들을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며 읽고 싶은 책을 한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졸리면 침대보다 편한 소파에 파묻혀 잠이 든다. 몸이 구겨져 영혼이 탈출하려 할 때 으으 하며 일어나서 음료를 한 잔 마시고 또 음악을 들으며 책을 좀 본다. 디제이가 바뀌어있어서 뉴에이지 음악이 계속 나온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자인 학원을 몇 달 다녔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그 몇 달은 꽤 좋은 경험이었다. 색채나 디자인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었다. 대학교에 디자인과를 가고 싶었으나 돈이 많이 든다는 말에 건축과를 갔다. 디자인 학원 몇 달을 다니는 동안에도 돈이 많이 들었다. 일단 집에서 모르게 다녔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돈을 격하게 아껴야 했다. 건축과 역시 돈이 많이 들었다. 건축과에서는 술값이 많이 들었다. 걸핏하면 과 단골 주점에 가서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러고 나면 조금씩 돈을 내는데 꼭 누군가는 술이 되어서 나 몰라라 하게 된다.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이 늘 더 내게 되었다. 그 나머지 아이들 속에 나는 늘 껴있었다.


계절적으로 보면 여름이 가장 책을 읽기 좋다. 편견이지만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뜨거운 해가 솟아있고 열을 발산하면 그에 맞게 홀라당 벗고 백사장에 앉아서 소설을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굉장한 폭염이면 1시간 이상 있으면 피부가 상하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되지만 폭염이 아닌 다음에는 벌러덩 누워서 읽고 싶은 대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올해는 가장 찬란해야 할 칠월이 스산하다. 게다가 내일은 장맛비가 온다고 한다. 이러면 개인적으로도 손해지만 코로나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해안가의 상가들 역시 1년을 준비해온 행사와 장사를 망치게 된다. 중순을 넘긴 오늘의 날씨 또한 흐리고 비가 오려한다. 7월을 이렇게 보내면 8월이 아무리 여름의 카타르시스라 해도 말복을 넘기면 바다에 들어가기는 힘들 정도로 차가워진다.


여름이니까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음악을 실컷 들으며 책을 좀 읽겠다는 사소한 소원도 쉽지 않다. 인간의 삶이란 정말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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