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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5

8장 3일째

185.


 눈을 뜨니 수면실 침대 위였다. 떨어지는 것은 꿈이었다. 기하학 문형의 벽지는 그대로이고 천장도 그대로였다. 침대 옆의 테이블에는 마동이 마신 음료의 병이 비워진 채였고 천장은 제 높이를 찾아갔고 자주색 연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손목시계를 봤다. 세 시간이 흘렀다. 마동은 세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도입단계라든가 중간단계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동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랫도리의 동통이 싸하게 느껴졌다. 꿈속의 일들이 현실처럼 다가왔다. 소피까지 꿈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번에도 분홍 간호사가 왔다 간 것일까.


 어떤 식으로 잠의 세계에 빠져들어 갔는지 구분도 없이 꿈의 세계에서 마동은 사정을 했다. 흔적은 속옷에도 바지에도 없었다. 그대로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동통이 느껴졌고 바지가 벗겨졌다는 것은 의심만 있었지만 사정을 한 기억은 확실했다. 이제 마동은 논리에서 점점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수면실의 어둠은 마동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꿈에서 격렬한 섹스를 했지만 잠에서 깨어나니 몸은 상쾌했다. 편안한 몸의 상태를 수면실의 어둠은 유지시켜 주었다. 수면실을 채우고 있는 검은 어둠은 보통 해가 떨어지고 우리 곁으로 내려앉은 어둠과 비슷한 안온감이 있는 어둠이었다. 질척하고 축축하고 기분 나쁜 어둠은 더더욱 아니었다. 흉가에서 봤던 암흑에 어울리는 어둠, 태고에 탄생된 우주의 블랙홀처럼 잔인한 어둠이 아니었다. 거대한 고래 뱃속에서 맞이하는 어둠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안의 어둠은 공포스럽지 않았고 군대 시절 야간 근무에서 달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 달이 어깨를 두드려주듯 수면실의 어둠은 마동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질퍽한 어둠 속에서는 자신의 한 손을 들여다봐도 손이 보이지 않는다. 공포의 어둠은 손을 삼켜 버린다. 수면실에 깔린 어둠은 질이 다른 연약하고 부드러운 어둠이었다. 어찌 되었던 수면실 안의 어둠은 흉가에서 만났던 어둠과는 다른 어둠이었다. 비논리적이지만 마동은 그것을 경험한 것이다. 싫었지만 마동은 세미나의 담력시험에서 만난 어둠을 떠올렸다. 그동안 애써 피하려고만 했던 어둠, 그것을 생각했다. 가끔씩 보이는 어떠한 상상 속에서 그 기분 나쁜 어둠은 세상을 먹어 버렸다. 냄새나고 더럽고 질척거리는 어둠은 마동의 등을, 손을 집어삼켜서 바늘처럼 손바닥과 몸을 찔렀다. 바늘의 촉이 어디에서 날아올지 몰라 두려운 어둠에 대해서 생각했다.


 세상에는 그런 어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동의 몸은 낡아서 뭉툭하고 잘 들지 않는 칼에 몸이 잘리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어둠을 경험했던 기억에 확신이 모호해졌다. 마동을 제외한 네 명의 직원은 그 날의 기억을 점점 잊어갔고 열심히 경청하던 몇몇의 다른 직원들도 앞으로 시간이 나아가면서 그 일에 대해서 시큰둥해졌다. 네 명중 세 명은 복통의 시달림으로 회사를 차례대로 그만두었고 한 명은 아직도 원인 모를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은 마동의 눈으로 투사한 어둠이 한 짓이었다.


 어디서 기생하다가 나타난 어둠일까.


 만약 앞으로 질척하고 소름 끼치는 어둠을 만난다면 뇌 속이 포비아로 가득 차서 점점 부풀어 올라 머릿속의 생각들을 전부 하나씩 야금야금 먹어 치울 것이다. 그다음 단계의 공포로 차곡차곡 속을 채워 놓는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질퍽하고 기분 나쁜 어둠의 공포가 서서히 무섭게 마동을 향해 엄습해 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공포를 지닌 어둠이 마동의 앞에 온다면 정녕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야 모든 것이 균형이 잡힐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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