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1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6

9장 3일째 저녁

186.


 [3일째 저녁]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지닌 의사는 알고 있었다. 굳이 검사를 거치지 않아도 마동의 신체적인 변이와 무의식적 변이에 대해서 짐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합병원에서 특수적으로 복잡하게 이뤄지는 어떠한 검사도 마동의 변이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병원의 기이한 수면실에서 유리병에 든 음료를 마시고 몇 시간 꿈같은 잠을 자고 집으로 왔다. 꿈속에 분홍 간호사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소피가 나왔다. 현실이 장막처럼 내려오고 꿈에서 깨어났지만 동통을 느끼는 페니스는 그녀들을 놓지 않으려 했다. 수면실에서 나오기 전 마동은 옆에 놓인 병을 집어 들었다. 병 밑에 소량의 음료가 침잠되어 있었다. 마동은 그것을 들고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지구 상에 이런 맛을 내는 음료가 있다는 게 놀랄 따름이었다. 음료가 혀에 닿는 순간 척추에서 찌릿하며 자극이 왔다.


 이 음료는 무엇일까.


 수면실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물은 아니었다. 이온음료 같은 것도 아니었다. 과즙의 맛과도 달랐고 탄산은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 마셔보는 음료였고 음료는 진한 맛이 났다. 철분이 가득한 약수처럼 진했다.


 아마도 약이었을까.


 음료의 맛은 낯선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사라 발렌샤를 안고 있었을 때 들었던 감점이었다. 그리고 소피의 동그란 얼굴이 생경하게 떠올랐다. 어색했다. 소피는 거짓 가슴을 달고 꿈에 나타났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골도 분홍 간호사의 길쭉한 손가락의 감촉도 떠올랐지만 모두가 어딘가 일그러져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마동의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나더니 몇 분 전에 본 것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곤 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포식의 본능을 지닌 너구리의 얼굴로 변했다. 너구리의 얼굴이었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잇몸을 드러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마동은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찌릿하며 아파야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었다.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혼란스러운 것이 정상이다.


 는개가 순간 떠올랐다. 는개의 의식도 분홍 간호사와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처럼 읽히지가 않았다. 는개와 손가락이 닿았을 때 깊고 거대한 침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의 울음소리 같은 우레가 울부짖는 굉음이 는개와 손끝이 닿을 때 보였다.


 는개도 느꼈을까.


 오래된 어둠이 순간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찰나는 긴 시간의 영겁이다. 매혹적인 모습에 빠져들어 자신의 몸이 잡혀 먹히는 모습까지 봐야 하는 수컷 사마귀처럼 ‘순간’은 주체아로 있었고 마동은 주체가 되었다. 마동은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는개와 손끝이 닿았던 여흥이 아직 남아있었다. 병원의 수면실에서 잠이 들었을 때 는개가 꿈속에 발가벗고 나타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을까.


 무더운 공기는 밤에도 지속됐다. 무더위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점점 달아오르는 열대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 더위를 식히려고 했다. 마동은 이미 트레이닝복을 입은 상태였다. 마동은 조깅을 하기 위해 몸을 풀었다. 다리를 풀고 어깨를 풀었다. 목을 돌리고 발목과 손목도 차례로 돌렸다. 무릎도 풀었고 각 관절을 잘 풀었다. 오늘 밤은 어제보다 그제보다 더욱 최고의 몸 상태였다. 낮에 수면실에서 3시간 동안 잠이 들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