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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7

9장 3일째 저녁

187.

 며칠 만에 ‘잠’ 다운 잠의 세계에 빠졌다. 어떤 인디밴드가 부른 가요에서 ‘잠’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하루가 지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고민과 한숨에서 얕은 잠이 스쳐간다고 했다. 힘든 하루의 끝에서 잠은 그렇게 다가와서 옆에서 스쳐 지나가 버린다. 잠은 동반자다. 잠은 어떻든 혼자 드는 것이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같이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잠이 드는 순간 깨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척추가 깨어나고 혈관이 깨어나고 뇌가 깨어난다. 사물을 생각하고 물질을 보는 세계관의 가치가 깨어난다. 잠이란 그런 것이다. 잠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였다.


 변이가 시작하기 전에도 마동은 깊이 있는 잠의 세계에 빠져들지는 못했다. 잠이 들었어도 미미한 움직임을 전부 감지했다. 눈을 감고 잠의 세계로 떨어졌지만 공기의 흐름이나 여름밤의 에어컨에서 나오는 연약한 소리와 새벽의 소음이 잠결에도 세세하게 들렸다. 잠이 푹 들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잠이라는 것은, 자 이제 잠을 청해볼까 하며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지 못한다. 어느 순간 잠, 그 속에서 잠시 있다가 무섭게 생긴 누군가에게 끌려 나왔을 때처럼 어느 시점에 잠에서 깨어나 버리고 만다.


 매일 비슷한 반복으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깊은 수면은 느끼지 못했다. 병원의 수면실에서 3시간을 자고 일어났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생활하면서 들었던 잠은 완벽한 잠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동은 깨닫게 되었다. 잠들지 않으면 그 시간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가 늘 있었지만 수면실에서 제대로 된, 질 좋은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마동에게 잠이라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심도 있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하나의 세계이자 현상이었다.


 마동은 집을 나서기 전에 소피가 혹시 있나 하며 트위터에 접속을 했다. 저녁 7시가 이곳의 시간이니 아마 소피는 지금쯤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역시 타임라인에 소피는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소피에게 디렉트 메시지를 넣은 다음 조깅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그레이트데인 장군이를 산책시키는데 같이 달리자는 장군이 주인의 제의를 받았다. 또 반드시 오라는 이질적인 의식의 전달도 있었다. 바닷가의 수많은 사람들의 어지럽고 희미한 이명 속에 또렷하게 마동의 의식에 벌처럼 날아와서 전달된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 소리는 살아있었다. 뱀이 움직여 먹이를 아가리에 삼키듯 우아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요리조리 피하며 뚫고 와서 마동의 무의식을 콱 깨물었다. 다른 이들처럼 떠돌아다니는 의식이 아니었다. 마동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무의식을 움직여 그 파장을 마동에게 보내준 존재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대나무 공원 벤치에서의 교접 이후 분홍 간호사와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들이는 얼굴을 가진 의사, 그리고 는개와 손끝이 닿으면서 느꼈던 기형적 현상과 마동의 무의식에 의식을 전달하는 존재는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마동은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변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동의 무의식의 존재에 대해서 모두가 얽혀 있었다.


 또 다른 초자아가 자각을 하고 기존의 자아를 밀어버리고 투신으로 나오는 것이라면 초자아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변이를 일으켜 초자아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는개가 끼어있는 것일까.


 는개와 저녁 약속을 했으니 질문을 던질 요량이었다. 평소에 마동의 눈에 보이는 는개는 일 잘하고 예쁜 동료였다. 이전에 손끝이 닿는다거나 옷깃이 스치는 일이 있어도 기이한 경험은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마동 자신 앞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무의식이 아직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고요한 파동의 수면 밑에 잠들어 있는 고대 화석처럼 초자아는 긴긴 겨울잠을 내면의 거울 속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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