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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8

9장 3일째 저녁

188.

 마동에게 또렷한 의식으로 오늘 밤 조깅을 하러 오라고 전달한 존재에 대해서 심증이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오늘 가서 확인을 해 볼 요량이다. 마동은 그 모습을 심상했다. 그 소리의 의식이 누군지 짐작이 갔고 어떠한 변이를 겪고 있는지 의문도 가졌다. 그 존재는 마동 안의 무의식적인 초자아를 알아차린 것이다.


 마동은 천천히 혼신의 힘과 기를 다해서 몸을 풀었다. 굳어있던 근육이 풀어지고 텐션을 가할수록 몸은 그 반응을 더욱 뇌에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낮에 마신 걸쭉한 음료 덕에 오늘 밤은 더욱 활기차고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하늘을 날아간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파트의 옥상에서 건너편 아파트의 옥상으로 뛰어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번 해볼까.


 그런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다. 실패한다면 당연히 낭패지만 성공을 한다고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파트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뛰는 것이 영화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 역시 낭패다. 평범함에서 벗어나면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사유가 빠져버려 타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한다.


 무릎부터 서서히 스트레칭을 한 다음 발목을 풀었다. 병원의 수면실에서 나와서 마동은 완구 도매점에서 사라진 사장의 빈 공간을 느끼고 만두가게에서 만두 모녀의 부재가 남긴 공허도 느꼈다.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의 어떠한 부분을 지그시 눌러주는 마음속의 작은 마음 하나가 느껴졌다.


 작은 마음이 나의 초자아일까.


 완구점의 사장, 만두 모녀 그리고 이스터 석상의 모습은 마동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가 되었다. 마동 속의 또 다른 자신은 그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본 것이다. 무엇일까. 병원에서 나와 천천히 그 풍경들을 스치고 지나쳐 도로가의 이스터 석상을 닮은 주차요원을 찾았다. 완구점 사장과 만두 모녀는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졌지만 이스터 석상의 턱을 가진 그는 그곳에 늘 있었다. 이스터 석상의 모습은 전혀 변함없이 본인의 일에 충실했다. 예전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입을 계속 오물거리며 자신의 구역 안에 주차되어있는 자동차들의 주차시간을 모두 꿰고 있었고 자동차에서 시동을 거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이스터 석상의 턱을 지닌 주차요원은 멋을 지니고 있었다. 외모적으로 어떨지 모르겠으나 마동의 눈에는 그 멋이 보였다.


 모자람도 없고 넘쳐남도 없는 모습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에 마동은 대단함을 느꼈다. 마동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다른 존재가 있다 해도 이스터 석상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보는 이스터 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에게 어떠한 관념도 느끼지 못했지만 마동은 달랐다. 마동은 이스터 석상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두려움도 느꼈다. 마동은 잠깐 이스터 석상과 눈이 마주쳤다.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는데 그 눈이 ‘고통의 깊이에 따라서 사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 얕은 고통은 깊은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했다.


 이스터 석상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 그 이외의 것들은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하나를 제대로 얻으려면 여러 개를 완벽하게 버려야 하고 그러기까지 이스터 석상은 고통을 이겨내 왔다. 우리는 그 이념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스터 석상은 매일매일 꾸준하게 변함없이 그것을 지켜내고 있었다. 반복되는 이스터 석상의 행동에서는 ‘타인을 배려한 사유’가 있었다. 날이 갈수록 이스터 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은 까맣게 변해갔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변한다. 저러다가 숯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세상이 완전히 변하더라도 이스터 석상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모습을 지키며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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