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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9

9장 3일째 저녁

189.

 마동은 아파트 밑으로 내려와 달빛을 받으며 몸을 풀었다. 달빛은 마동의 어떠한 심리적 방해로부터 방어막 같은 역할까지 해주었다. 다리의 스트레칭을 끈기 있게 했다. 체내의 혈류가 초현실적으로 움직였다. 세포의 분자가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 재배열되고 있었다. 기이했다. 빠르게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류가 팔과 다리를 통해서 흐르며 신경을 전부 긁고 지나갔다. 척추에서 전해져 오는 날렵하고 무서운 서늘함이 순식간에 머리로 올라왔다.


 마동은 주먹을 쥐어 보았다. 자신의 손처럼 보이지 않았다.


 상당한 기분. 헤모글로빈 수치가 오르는 것이 온몸을 통해서 느껴진다. 18, 19, 20, 30, 50.


 여름밤 대기의 산소가 폐 속으로 훅하고 엄청나게 들어옴과 동시에 혈관을 타고 산소의 운동도 빨라졌다. 마동은 다리를 풀어주고(다리를 뻗어서 근육에 텐션을 가할 수 있을 만큼) 목을 움직이고 손목을 돌리고 마지막으로 허리를 풀었다. 몸의 여러 관절을 차례차례 천천히 힘을 주어 텐션을 가했다. 근육은 제자리를 찾았고 자리에서 착실히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경주마처럼 한껏 고무되었다. 마동의 근육은 낮 동안은 공벌레처럼 쪼그라들어 있다가, 달이 떠오른 지금은 양껏 기지개를 켰다. 마동은 양팔을 접어서 등 뒤로 들어 올렸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등 세모근이 올라왔다. 치골이 드러났고 광배근 역시 확연하게 모습을 보였다. 가슴은 탄탄했고 자리를 잘 잡았다. 허벅지의 근육 역시 말처럼 갈라졌다.


 근육의 변이도 일어났다.


 더 이상 신기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동은 자신의 신체 변이에 놀라고 있었다. 병원에서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의사에게 변이에 대한 이야기를 또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대부분 변이를 거치고 있다고 했다. 지구라는 이 거대한 별도 하나의 생물체라고 친다면 지구 역시 늘 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생활하는 모든 생물은 당연히 변이를 하는 것이다.


 오후에 의사는 마동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그 속도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세대를 건너 또 세대를 지나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죠. 지구에 있는 생물체는 모두 변이를 거쳤고 여전히 변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생물체를 이분법으로 나뉜다면 인간과 그 이외의 생물이겠죠. 인간과 후자가 다른 점이 뭔지 아십니까. 다른 생물체의 변이는 생존에 관한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몇 만 년을 아니, 몇 십만 년을 거쳐 변이를 했습니다. 밀림에 살고 있는 나방의 애벌레가 포식자들의 틈 속에서 살기 위해 꼬리의 무늬가 뱀의 얼굴처럼 변이를 했어요. 덕분에 포식자들은 애벌레의 꼬리를 보고 자신의 천적인 줄 알고 도망을 갑니다.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모든 생물체에 변이가 일어났는데 제가 볼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이 꽃입니다.”


 “꽃이요?” 마동은 물었다.


 “네, 특히 난초인데 다윈은 난초에 관한 연구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도킨스라는 학자의 ‘지상 최대의 쇼’라는 책에 아주 잘 나타나 있어요. 야생의 양동이 난초는 자신의 포자를 퍼트려야 하지만 바람에 의존할 수만은 없었지요. 그래서 벌을 꾀어 들게 하기 위해 냄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 냄새에 수컷 유글로신 벌은 난초가 뿜어내는 냄새를 따라 찾아옵니다. 이 수컷 벌도 암컷 벌을 꾀려면 향수를 제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난초의 냄새물질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난초에게 와야 합니다. 벌이 양동이처럼 생긴 난초의 가장자리에 내려앉아 말랑말랑한 향수 물질을 긁어내어 뒷다리의 주머니에 담습니다. 그런데 양동이 난초의 가장자리는 무척 미끄러워요. 벌은 양동이 난초의 중앙에 빠지고 그 속의 액체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양동이 난초의 기둥은 미끄럽기 때문에 벌이 기어 올라올 수가 없어요. 벌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양동이 옆면에 벌만 한 크기의 구멍이 있는데 그곳으로 벌이 이동을 합니다. 구멍은 벌의 크기에 꽉 끼고 벌이 움직일수록 빡빡해집니다. 그때 양동이 난초는 양동이 모양의 잎이 수축이 되면서 벌을 사로잡습니다. 난초는 벌을 먹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난초는 벌을 잡고 있는 동안 화분괴(polinia) 두 개를 벌의 등에 붙이죠. 화분괴의 풀이 굳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벌어야 하는 행위를 양동이 난초가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양동이 난초의 턱이 다시 느슨해지며 벌을 풀어줍니다. 그러면 벌은 화분괴 두 개를 등에 붙인 채 날아갑니다. 어디로 날아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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