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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90

9장 3일째 저녁

190.


 “냄새가 나는 다른 양동이 난초?”


 “그렇습니다. 그들은 생존의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이죠. 벌은 또 다른 양동이 난초로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다른 양동이 난초에서 양동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등에 붙어 있는 화분괴가 떨어지면서 두 번째 난초의 암술머리를 수정시키는 것이죠.” 의사는 의자를 뒤로 돌려 서적이 많은 곳에서 하나의 도감을 꺼냈다. 책을 펼쳐 마동에게 자신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야생의 난초가 벌에게 화분괴를 묻히기 위해 변화된 모습들이 차례로 있었다. 새삼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것을 자연계의 공진화(coevolution)의 사례입니다. 다른 종과의 협력에 의해서 유전자가 조작되는 것이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세월과 함께 시간을 거쳐 변이를 합니다. 다윈은 그것을 찾아내고 발견했습니다. 생물들 간의 일어나는 현상으로 서로 협력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냈습니다. 몇 십만 년에 걸쳐서 말이죠. 그런데 공진화는 상대방에게 이득을 얻지 못하는 종들 사이에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포식자와 먹이 또는 기생자와 숙주 같은 경우입니다. 이를 두고 학자는 ‘무기경쟁’이라 했습니다. 인간에게도 무기경쟁의 변이가 일어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만 신체적 뿐만 아니라 내제적인 변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마동은 지금 자신의 몸 안에 기생하는 무엇과 무기경쟁을 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 무엇과 공진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몸 안에 기생하는 무엇이 어떤 식으로든 마동의 변이를 꾀하고 있다.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와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현관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아차린 아이처럼 마동은 말 같은 근육의 신체를 느끼며 잠시 멍 해졌다. 마동에게 일어났던 변이의 양식을 떠올리면 지금 근육의 변이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자신의 근육 양과 세세한 근육의 갈라짐을 보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이와 무기경쟁과 공진화 현상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몸은 다 풀었다. 천천히 달리며 아파트 입구를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해안의 조깅코스를 달려 장군이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숨이 막힐 만큼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에 무더웠지만 현실감을 상실한 마동에게는 무더운 공기가 와 닿지 못했다. 마동은 천천히 달려 아파트 입구를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을 때 누군가 뒤에서 마동을 불렀다. 마동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최원해가 서있었다. 펄럭이는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대학교 과 티셔츠를 어디서 구했는지 입고 있었다. 티셔츠의 목 부분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 있었고 이미 조깅을 한 번 하고 온 것처럼 늘어난 라운드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인상을 풍겼다. 운동화는 평소 그의 구두와 비슷한 취향으로 조깅 슈즈가 아닌 그저 운동화였다. 운동화의 이름과 모습만 빌린 그런 신발이었다. 저런 운동화를 신고 50분 이상 달리면 발바닥에 무리가 전해질 수 있다. 기능을 잃어버린 운동화의 발목 위로 지정할 수 없는 색감의 양말이 한껏 올라와 있었다.


 어째서 최원해가 이곳에 있을까.


 “이 이봐…… 혹시나 했는데 말이지. 자네 낮에 볼 때와는 정말 다르군.” 최원해가 말과 의식이 동시에 전해졌다. 그는 마동의 모습을 보며 다우트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원해는 심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그의 시선은 비교적 정확함을 넘어 적확했기에 낮과 밤의 다른 마동의 모습을 본 최원해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최원해가 봐왔던 마동은 회사를 속인다거나 일탈적인 행위가 없는 인간이었다. 어떤 면으로 자신과 비슷하다고 최원해는 생각했다. 요 며칠 마동의 상태는 분명 걷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바로 오늘 낮에 봤을 때에도 마동의 모습은 암 말기 환자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최원해의 눈앞에 서있는 마동의 모습은 낮에 봤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트랙에서 달리기 준비를 하는 육상선수 같은 육체가 최원해의 눈앞에 서 있었다. 최원해는 마동의 모습을 보며 짧은 시간 혼란스러워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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